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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랑땡 Sep 12. 2021

당신도 술을 사랑하십니까?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책 리뷰 - 1

1. 러브 스토리


애증의 관계는 이곳저곳에 숨어있다. 부모와 자식, 절친한 친구, 연인관계를 비롯한 전반적인 관계 속에 나타난다. 애증의 관계가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은 사랑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갖지만, 때론 무생물과 사랑을 하기도 한다. 사랑할 수 있는 무생물은 필히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 (마치 인간관계처럼) 술이라는 상품은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술은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라 이것에 대해 절제하고자 하는 감정도 생긴다. 인간적으로 사랑하지만,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계속해서 만난다. 이때 우리는 ‘애증의 관계’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술이란 사람과 그런 관계를 맺고 있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에도 이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


‘이 이야기는 러브 스토리다.’

나는 이 책이 이 문장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술은 필연적으로 대화의 장을 만들고 사회 전반에 걸친 긴장감의 사슬을 비집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나는 20대 초반에 술을 매개 삼아 사람들과 어울리는 순간을 좋아했다. 그들과 생각 없이 웃고 우정 혹은 사랑을 다질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래서 ‘술은 못 마시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를 사랑한다.’라고 흔히 이야기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20대 후반이 되어서 술은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딘가 억압된 나라는 존재의 빗장을 풀고 진정한 나를 찾아주는 열쇠가 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기에 나의 아버지가 마시는 술을 그토록 싫어했지만 결국 술은 나에게 구원의 열쇠가 되었다.


저자인 캐롤라인 냅은 폐암으로 인해 마흔넷의 나이로 요절한 작가다. 그녀는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에세이를 발간하여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이 책에서 훌륭하게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났음을 공표하지만 니코틴 중독으로부턴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녀의 이른 죽음은 생물학적으로 중독되기 쉬운 사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게 하는 단서다.


2. 술의 매력


저자는 결국 책을 통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기쁨, 벗어나야만 할 당위성에 관해 이야기 하지만 그전에 그녀가 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 기술해놓은 부분이 있다. 알코올 중독의 시작부터 탈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술의 매력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술의 매력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아는 알코올 중독자의 고백은 미식가의 고백과 같다. 그녀가 술의 매력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묘사한 앞부분은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고로 이 책은 역설적으로 좋은 술안주가 된다.


‘나는 술 마시는 느낌을 사랑했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그 특별한 힘을 사랑했고, 정신의 초점을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의식에서 덜 고통스러운 어떤 것들로 옮겨놓는 그 능력을 사랑했다. 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했다.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우정과 온기, 편안하게 한데 녹아드는 기분, 마음에 솟아나는 용기.’

술이 가진 힘, 소리, 온기까지 묘사한 위 문장은 술이라는 상품이 얼마나 인간과 비슷할 정도로 많은 감각을 깨워주는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캐롤라인도 술과의 관계를 ‘러브 스토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윌리엄 스타이런(미국의 유명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도 술을 마셨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술은 그의 정신이 “술 깬 상태에서는 다다를 수 없는 비전을 품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글쟁이로서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도 마시고 싶게 할 만한 문장이다. 나 역시 취한 상태에서 글이 훨씬 잘 쓰이는 경험을 여러 번 겪었다. (물론 퇴고는 멀쩡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 취했는데 글이 잘 쓰이는 이유는 나에겐 명확했다. 어딘가 묶여 일정 범위 이상 생각의 폭을 넓히지 못하는 낮과 달리 술이 들어간 밤엔 생각의 확장이 쉬웠다. 훨씬 대범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글과 함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시간을 술과 어둠이 가능케 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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