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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랑땡 May 23. 2021

부끄러워, 문어숙회 먹긴 글렀다.

문어가알려주는 편견과 과방어적 태도의 문제

문어는 나에게 두려운 존재는 아니었으나 어딘가 모르게 못생긴, 많이 다른 존재였다. 다리가 여러 개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고, 눈알은 사람과 닮아 어딘가 모르게 기분 나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걸 왜 볼까?’


화면을 가득 메우는 거친 피부와 빨판들. 사람을 닮은 눈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단단할 것 같으면서 물컹거리는 생명체에게 나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둔다. 어디선가 이 다큐를 많이 본다고 하여 그냥 그렇게 보고 있었지만 좋지 않은 대면이었다. 문어가 그에게 손을 뻗기 전까진 말이다.


문어는 그와 완벽하게 교감했다. 정말 교감할 줄 안다는 생각이 든 건 단순히 문어가 손을 뻗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어는 그를 오랜 기간 조심하고, 지켜보고, 관찰하다 손을 뻗었다. 믿고 손을 뻗었다. 빨판을 뻗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그건 손이라 표현하고 싶을 만큼 다정했다. 온기를 받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고양이들도 관찰한다. 살기 위해, 단순한 호기심과 놀이로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찰한다. 관찰이 끝나면 (우리 집 고양이는 두세 시간이면 끝내는 듯하다.)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손으로 대상을 툭툭 건드린다. 문어가 그렇게 행동했다. 내가 보기엔 완벽히 같았다. 우리 집 고양이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킁킁 냄새를 맡을 때, 처음 손을 얹었을 때, 그 황홀한 느낌. 그 느낌을 ‘나의 문어 선생님’이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동물이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통해 사람의 무지함(오만과 편견)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미안함, 고마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있다. 이 감정은 쏜살같이 뒤섞여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이런 감동은 마주하기 어렵다.(굉장히 쉽지 않다.)


미안함, 고마움, 부끄러움. 세 가지 감정 중 이 작품에선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다. 문어가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라 생각하지 못한 점이 부끄러웠다. 그보다 더 부끄러웠던 건 믿고 손을 뻗는 용기가 나한테 없었다는 점이다. 문어는 그를 믿고 손을 뻗는 용기를 보여줬다. 나는 누군가에게 손을 먼저 뻗어본 적이 없다.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다림의 결과는 대부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손을 뻗을 수 없을 것이다. 손을 뻗는다는 건 내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약점을 드러내며 다가가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약점을 보여줄 용기가 없다. 그가 손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문어는 걱정하지 않았을까. 나라면 걱정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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