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링 Oct 13. 2023

진짜 왕을 위한 팡파르를 울려라

무례하고 막돼먹은 나여도

요한 계시록을 묵상하는 밤이 이어진다. 읽으면 읽을수록 오묘한 천국의 향연. 세 번을 꼭꼭 씹어 음미하고 그 의미를 고심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나 싶어 주저주저하고 있다.


진정한 뜻은 모르겠으나 글은 읽을 줄 아니 일단 쭉 읽어나갔는데,  그 와중에 은혜가 되기는커녕 자꾸 불편한 마음이 드는 장면이 생겨버렸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이십사 장로들과 네 생물이 찬양하는 장면이었다. “장로”가 내가 아는 장로님의 장로가 맞나 싶지만 어찌 됐건 장로까지는 익숙해서 괜찮았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네 생물들의 존재가 마치 외계 생물처럼 기이하게 느껴졌다. 각각 사자와 송아지, 사람의 얼굴, 그리고 독수리의 모습인데 날개는 여섯 개씩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eyes)이 달렸다니. 나를 더 기함하게 만든 건 이 모든 낯선 존재들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린다는 것이다!


어, 이상하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아 마땅하신 분이 맞는데, 내가 읽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인데. 이게 틀린 게 아닌데 나는 왜 틀린 것처럼 느껴질까. 생소한 이장면이 마치 어느 매체에서 스치듯 본 교주와도 같은 이미지가 그려지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내가 익숙하게 바라본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 아니던가. 이 땅에서 집 한 채 없이 머리 둘 곳 없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시다가 결국 십자가를 짊어지고 모든 질고를 받아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숨을 거두셨던. 물론 부활의 예수님이시며 하늘 위로 올라가 그 보좌 옆에 계신다고는 했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찬양을 받으시다니!


복잡미묘한 마음과 깨달음이 오갔다.


첫째로는 하나님은 타인의 인정이 필요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분은 온전하시고 완전하셔서 24시간 내내 찬양을 받고 계시니. 다른 존재로부터 더 깊은 사랑과 인정이 필요하지 않으신 자존 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 이러한 하나님에게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사랑 고백을 받은 예수님이시니 이 땅에서 한낱 유대인들과 바리새인의 모욕을 들은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타격감 제로일 수밖에. 그래서 예수님은 늘 여유로우셨구나. 인간에게 기대하지 않으시고 그저 사랑으로 긍휼로 아껴주신 그의 힘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나보다 높으신 하나님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무서운 마음이고 부끄러운 마음인데, 왜 나는 늘 내가 최고여야만 한다고 여기는 건지. 하나님을 믿어왔고 여전히 믿음의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느새 또 왕이 되어있더라. 말도 안 되는 질투. 아찔했다. 미처 깨닫지 못한 내 안의 추악한 죄의 본성을 마주하고는 두려웠고 답답했다.   


이럴 때 나는 나 스스로가 무섭다. 하나님 보다 높아지려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날 때 말이다. 선악과를 향해 침을 질질 흘리는 나란 인간이, 아담이 아니면 내가 기필코 따먹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이제는 허탄스럽다. 답이 없으니 기도하기로 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_ 요한계시록 4장 11절 말씀


차분히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은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제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질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 당신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당신의 권능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해 주시고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창조주이십니다, 저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지 않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다.

나는 그의 손에 의해 태어난 피조물일 뿐이고.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진리를 깨닫게 하심에 감사했다. 회개를 할 수밖에 없는 진리였다. 내가 또 선을 넘었구나.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잊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나보다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며 살았구나. 간단명료하게 알려주시니 감사했다. 무미건조한 성경 묵상시간이 뜨거운 부흥의 시간으로 변화되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맛보게 하시는 순간. 그의 포도주는 참 달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살기 위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니 나는 참 무례하고 막돼먹은 삶을 살았구나 싶었다. 육신의 아버지를 미워했고, 아버지의 약점이 보일 때마다 끊임없이 판단하며 정죄했다. 하나님께서 세워두신 가정 안에서의 질서를 나는 무참히도 짓밟으며 살았나 보다. 그리고 남편이 떠올랐다. 나를 마음 다해 사랑해 주고 나 또한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그를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가장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존경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결단해야 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인정하길 원합니다. 제 삶의 방식이 바뀌어 하나님을 진정으로 인정하길 원합니다. 제가 남편부터 존경하며 따르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가장으로 세워주신 우리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는 지혜를 주시고, 아내의 자리를 지킴으로 우리 남편이 한 가정의 리더로서 든든히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리더로 세워지기 전에 가정의 리더로 존중받으며 성장하도록, 그 은혜를 가정에서부터 부어주시옵소서. 가정에서의 질서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인생을 살게 해주세요.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보이는 남편을 나보다 높게 대해주리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마치 잘 차려주신 영양밥을 먹듯, 꼭꼭 씹어먹으면 달고 맛도 좋다. 내 입맛에 잘 맞지 않는 말씀도 결국 나의 영혼을 위한 따뜻한 밥 한 그릇이구나.


오늘 받은 은혜를 남편에게 울먹울먹 종알종알 나누어주었다. 주의 깊게 들어주는 사랑스러운 나의 남편.


회개의 밤은 참으로 평안하다.


사진출처_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코 빠지지 말고 잠을 코 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