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nn_, ‘난빤쓰만입고도멋진생각을해‘ 감상기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하지만 크게 언짢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당황시키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유치해서든, 사춘기 애들의 조금 변태 같은 발상이든, 저질스러워서든, 어쩐지 유쾌하게 당황스러운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면 그 말장난 같은 일을 조금 해명해주고 싶어지고는 한다. 아니, 어떻게든 멋들어지게, 마치 그게 의도한 멋짐을 담고 있는 위대한 작품인 마냥.
quinn_(인스타를 보니 쿠인이라고 읽는 것 같다)의 ‘난빤쓰만입고도멋진생각을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장난 같은 매력이 있어서, 유치해 보이는 발랄한 가사가 힘을 한껏 빼 어쩐지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하는 몽롱한 목소리와 만나, 무진장 해석을 해주고 싶은 매력이 있는 노래다. 유튜브 뮤직의 디스커버리 믹스로 만난 정말로 어쩌다 들은 오늘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개 이런 경우 정작 창작자는 해석을 어느 정도 거부한다. 아무 의미 없다는 식으로.
사실 ‘난빤쓰만입고도멋진생각을해’는 해석을 피하기엔 내적인 내러티브가 꽤 정밀하게 짜여 있는 노래다. 그게 좀 단순해서 깊은 해석까지는 필요 없다 싶어도,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은근히 ‘빤쓰’라는 모티프의 의미가 복잡하다.
‘빤쓰’는 ‘나’의 생각에 사실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는 빤쓰를 입든 안 입든 멋진 생각을 해서 본인이 멋지다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빤쓰라는 단어를 어떻게 입에 올리냐며 ‘나’를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젠 빤쓰만 입기엔 조금 춥다고.”
‘나’는 빤쓰를 입든 말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 왜 사람들이 빤쓰를 입는지가 궁금하다. 이때 ‘나’가 궁금한 건 “그걸 왜 불편하게 숨기는 걸까요?”이다. 그러니까, ‘나’는 빤쓰의 역할을 알고 있는데, 가사 중에는 ‘under things’로 표현되는 성기를 가려주는 역할이 바로 속옷의 역할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지만 그것의 필요성에는 여전히 의문을 표한다.
왜 우리는 성기를 부끄러워하고, 입에 담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걸 가리면 무언가 바뀐다고 착각하고, 그걸 가리는 게 더 불편한데 굳이 굳이 그걸 숨기는 걸까. 언더웨어의 아래에 가려지는 게 꼭 성기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질스럽다 싶어서, 좀 바보 같은 말이라서, 어떻게든 여러 겹의 포장지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두고 들 수 있는 궁금증이다.
키치한 것들, 유치한 것들, 원초적이고 변태적인 것들이 종종 예술의 이름으로 포장되고 그게 불편한데도 어쩐지 거기에 우리들이 끌리는 이유는 결국 위의 궁금증을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저마다 빤쓰 속에 가리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아니면 가리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데 모두가 숨기길래 덩달아 숨기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빤쓰를 입든 말든 그 생각은 늘 멋있는데, 그냥 벗어버리면 안 될까. 춥지만 않다면.
노래는 빤쓰를 입든 말든 그게 자신을 바꿀 수 없다면 ”다음엔 한번 기저귀를 차볼까 해“라고 말하며 끝이 난다. 해석의 과잉을 막고 싶어 굳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능한 설명들을 옮겨 적지는 않으려 하지만,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히 다른 빤쓰와 기저귀의 미묘한 차이가 의미심장하다.
신나고 레트로한 비트에 무기력한 톤, 재밌고 이상한 말장난 같은 가사와 몽롱한 목소리. 처음으로 접한 쿠인의 노래는 꽤 재밌었고, 앞으로도 종종 마주하는 가수가 됐으면 좋겠다. 찾아보니 사운드클라우드로 유명한 가수였다고 하고, 데뷔곡으로 뭘 고를까 고민하다가 확실하게 각인되고 싶어 이 노래를 골랐다고 한다. 어그로를 잘 끄는 법을 알고, 그게 마냥 미끼인 것만도 아니라는 점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