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소복을 입은 너는 누구냐?
강한결 군은 대학원 1년 차 때 연구실 앞에 있는 연구실 창고 309호에 입주하게 되었다.
자취나 하숙을 할 형편이 없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연구실 사람들이 주로 연구실에서 먹고 자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 별도로 방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집에 안 가고 연구실에서 먹고 자기 시작하자,
창고의 선반을 밀고 공간을 만들고 스티로폼을 깔아 그 위에 모포를 올려 제법 그럴싸한 환경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인간이 환경을 개선하며 삶의 터전을 바꾸는 동물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1년 차 여름 즈음,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한다는 소식을 들은 필자의 자형은 야전 침대를 하나 선물했다.
야전 침대를 309호 창고에 가져다 놓고 설치를 하고 모포를 깔아 놓았다.
이 침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그런데, 그 야전 침대에서 자면 귀신이 자주 나왔다.
한 번씩 벽에서 머리와 얼굴을 내밀어 자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었고,
가위에 눌린 것처럼 일어나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다.
사람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비슷한 형상의 귀신이었다고 한다.
흰 소복을 입고 머리가 긴 그런 귀신이었다.
가끔은 칼을 물고 피를 흘리는 형상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특히 이진수 군은 귀신을 많이 보았다.
나중에는 귀신이 너무 자주 나타나서 무서움보다는 오히려 짜증 나고 귀찮게 느껴졌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서 정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귀신이 나오지 않게 된 사연이 있다.
강한결 군이 자고 있는데 드디어 그 귀신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귀신은 강한결 군을 조우한 뒤로 어떤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지만, 그 이유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그 야전 침대는 잠깐 눈을 붙일 때나,
바닥이 아닌, 조금 나은 환경에서 잠을 청하려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잠자리가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야전 침대의 특성상 누운 부분이 푹 꺼져서 몸을 꽉 조이게 되고,
그로 인해 가위에 눌린 것처럼 느껴진 것 같다.
필자의 군 시절에는 장교들이 야근을 하면서 야전 침대를 사용할 때
야전 침대 위에 제법 두께가 있는 합판을 올리고,
그 위에 모포를 깔아서 잠을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필자는 장교의 잠자리를 챙기는 병사의 역할을 했다.
생각해 보면, 군대에서 배운 많은 야생의 삶에 대한 지식들이
대학원 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어진 것들이 많았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여기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필자에게 야전침대를 선물했던 그 자형은 여러 번의 항암치료를 받아서 잘 견뎌 내었는데,
최근에 항암치료의 부작용인지 하체를 못쓰고 병원에 있다.
자형의 쾌유를 마음속 깊이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