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청년이 망가지기까지
연구실에는 재은이라는 특별한 청년이 있었다.
완벽함의 대명사, 재언, 그의 별명은 '본승'이었다. (구본승이라는 가수를 지금 세대는 알지 모르겠다.)
외모도 외모지만, 그는 완벽함의 대명사로 더 유명했다.
재은은 언제나 깔끔했다.
옷, 머리, 책상, 심지어 나중에 결혼해서 아파트를 새로 사서 집수리에 쓸 타일을 고를 때 직접 타일 제조 공장에 가서 골랐을 정도였다. 완벽주의자 그 자체였다.
하지만 통신구조연구실에 발을 들인 순간, 재은의 그 완벽한 세계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마주한 건, 깔끔함을 따질 겨를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연구실의 현실이었다.
처음에는 새벽까지 연구실에서 작업하고 집에 돌아가면서 택시에서 잠깐 눈을 붙인 후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출근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결국 체력의 한계는 찾아왔고,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재은은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연구실에 머물기를 결정하였지만, 그에게는 청결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다.
연구실 바닥에서 대충 자야 할 상황이었지만, 재은은 그냥 자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는 스티로폼을 마련해 깔고, 개인용 침낭까지 준비해 자는 철저한 준비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스티로폼 위에 “머리”와 “발”이라고 적어 놓고,
스티로폼 위에서 머리와 발의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바랬다.
그런데, 몇일이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박사과정이었던 옥교수가 어느날 재은의 침낭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재은은 그 사실을 알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경악했다.
왜냐하면 옥교수는 연구실에서 뒤에 나올 ‘양말의 전설’을 만들 정도로 청결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의 양말은 주변 2미터를 오염지역으로 만들 정도로 상상 이상의 상태였다.
그래서 재은은 바로 침낭을 들고 세탁소로 달려갔고, 그 사건은 연구실의 또하나의 전설로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재은의 체력은 점점 더 바닥을 쳤고,
결국 연구실 바로 앞의 창고 309호 방으로 입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방에서의 첫 이불은 바로 옥교수의 전설적인 파란 모포였다.
그 파란 모포는 연구원 중에 아는 사람은 근접하기도 마다하는 옥교수 전용 모포였다.
재은은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정신적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
재은은 모포를 덮고 잔 다음날 그 사실을 듣고,
연구실 앞 등나무 벤치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먼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그 뒷모습이 생각난다.
그날 이후, 재은은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가 겪은 정신적 충격은 꽤 오래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은은 완벽한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본승’이라는 별명 답게 언제나 멋진 스타일을 유지하려고 애썼고,
학부생들에게는 여전히 ‘영원한 오빠’로 추앙받았다.
그 친구 덕에 헤어젤, 스프레이, 샴푸, 바디 클렌저, 드라이기 등 다양한 미용 용품이 있는 것을 나는 배웠고,
그는 연구실을 졸업 후에 스타트업의 CTO로 자리 잡으며, 깔끔한 그로 다시 돌아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완벽주의가 만든 강한 재은
재은의 이야기는 단순히 연구실에서 좌충우돌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완벽주의와 끈기는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그 경험들은 지금의 그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은 다른 연구실에서는 듣지 않을 정도로 매우 힘든 발표 수업이었고,
발표자를 정말 집요하게 공격하는 교수님이었다.
그의 생활에서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은 수업 발표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스스로 자신의 발표에 만족을 못해서 눈물을 흘리며 수업시간에 뛰쳐 나간 적도 있다.
그만큼 자신의 완벽을 추구하고, 스스로의 목표를 높게 잡는 그 성격이
지금의 인생에서도 높은 목표를 도전하는 스타일로 성장한 원동력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