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한결 Dec 30. 2024

제7화 - 고장나면? 고친다!

모니터 수리 대작전!

연구실 아폴로의 전설

연구실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전설적인 아폴로 모니터가 있었다.

아폴로 컴퓨터는 1980년에 설립된 그래픽 워크스테이션 최초의 제조업자 중 하나였고, 향후 1989년에 HP에 인수되었다. 


필자가 처음 대학에 입학해서 사용하던 컴퓨터가 플로피 디스크 2장짜리 XT PC였고, 다음에 AT 등을 사용했으니, 운 좋게(?) 거의 개인용 PC의 역사를 처음부터 경험해 볼 수 있는 시대를 딱 살아왔다.

아마도 서울은 더욱 빨리 보급이 되었을 것 같지만, 부산에서는 그 정도 시간으로 보급이 되었다. 


여하튼, 유물이었던 아폴로 모니터를 90년대 후반에 대학원 연구실에서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필자는 사실 적잖이 놀랐다. 사연은 사실 더 기가 막혔다. 

아폴로 모니터는 IBM PC와 RGB 표준이 맞지 않아 선을 잘라서 RGB D-sub 표준에 맞게 배열을 바꾸고 납땜을 해서 PC에 꽂아서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모니터의 밝기가 너무 낮아서 창문으로 햇살이라도 비치면 글자가 너무 보이지 않았다.

당시 이현진이라는 2년 차가 그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햇볕이 비치면 잘 안 보이는 바람에

달력으로 햇볕 가리개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었고, 점점 모니터와 얼굴이 가까워졌다. 

제발 바꿔 달라고 교수님께 청을 드리라 했지만, 그 친구는, 

"그래도 이건 컬러 모니터잖아요!"라고 말하며 계속 사용하였다.

그 속뜻은 나중에 내가 겪어보고 알게 되었다.

 

결국 모니터가 완전히 사망 직전이 되어서야 교수님은 마지못해 새 모니터로 교체해 주셨다. 

하지만 폐기될 줄 알았던 아폴로 모니터는 앞방 연구실 창고에 ‘유물’로 다시 모셔졌다.

아마도 부품을 떼서 사용을 하시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실 사람들은 모두는 그 모니터들을 빨리 없애고 싶어 했다.


NEC 모니터와의 첫 만남

대학원에 새로 들어오면서 필자는 NEC의 14인치 CRT 모니터를 배정받았다. 

처음엔 약간 작지만, 컬러 모니터를 받았다는 것에 조금은 신나 했다. 

그런데, 점점 모니터 주파수 문제로 화면 글자가 번지는 일이 잦았고,  

모니터 뒤의 수평해상도와 수직해상도를 드라이버로 조정하며 간신히 사용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모니터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꺼져버렸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교수님께 새 모니터 구매를 살짝 제안했지만, 

교수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한결아, 모니터를 화이트 테이블로 가져와서 분해하고, 부품들은 깨끗하게 먼지 청소해 놓도록 해라”

필자는 약간 뒷골이 땡기며, 뭔가 앞으로 일어날 불길한 일들에 대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릴 때부터, 분해는 잘하지만, 꼭 조립하면 부품이 몇 개 남거나 고장을 내기 일쑤였던 나의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여하튼 필자는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모니터를 도면을 그려가며 분해했다. 

조립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먼지는 에어 블러셔로 날리고, 솔로 깨끗하게 털어내고, PCB 회로의 먼지도 솔로 깨끗하게 닦아내고,

브라운관 먼지를 닦아내고, 그리고 케이스는 물로 씻어 말끔히 청소했다. 

어린 시절 흑백 TV를 완전히 분해했다가 부모님께 혼쭐이난 기억이 떠오르며 손이 떨렸지만, 

분해도를 그려가면서 차근히 분해를 했다.


고쳐 볼까?

“다 청소해 놨어?” 교수님이 불쑥 나타나셨다.

“그럼 같이 고쳐볼까?”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교수님은 오실로스코프를 꺼내시더니 전압과 파형을 확인하시고,

"이거 파워 TR이 문제 있는 것 같네, 이걸로 바꿔 달아 봐"

 

부품을 교체하고, 전원을 넣고, 스위치를 켜자. 

짜잔~! 모니터가 멀쩡히 돌아왔다! ㅠ.ㅠ 


더 좋아져 버렸어

"잘되지?"

귀신같이 나타나신 교수님은 뒤에서 피식 웃고 계셨다.

"그럼 피치와 선명도를 맞춰 볼까?"


이후 교수님은 작은 망원경처럼 생긴 돋보기를 꺼내 모니터에 대고 보시며 수평/수직 주파수, 선명도와 색상 등을 직접 조정해 주셨다. 


놀랍게도, 슬프게도, 모니터의 화질은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화면 색상도 훨씬 생생해졌고, 마치 새것보다 좋아져 버렸다.


그 뒤, 모니터가 고장나면 연구실 사람들은 모른척하고 구석으로 치우거나, 창고로 몰래 가져다 놨다.

고장 나면, 분해, 먼지제거, 하드웨어 디버깅 등을 교수님과 다정히(?) 앉아서 고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의 청계천 전설

그날, 교수님은 고등학교 시절 청계천에서 TV를 고치며 한번 고칠 때마다 쌀 한 가마니를 벌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는 TV만 고칠 줄 알아도 평생 밥 걱정은 없다고 생각했지.”

“방학 때는 공부 대신 청계천에서 텔레비전 수리를 하면서 보냈단다.”

"나중에 대학 갈 때는 형님이 공부하시는 걸 어깨너머로 배워서 대학을 갔지."


그 뒤에도 신제품, 중고제품, 고장 난 제품등 참 많은 전자전기 기기들을 분해하고 조립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 제자 맞습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대략 20년 가깝게 사용하던 LCD TV가 비디오는 나오지 않고, 오디오만 나오는 현상이 생겼다.


필자는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 뒤의 나사를 풀어 먼지를 청소하고 PCB 회로를 보고 테스트기로 찍고 있었다. 

이전의 기억으로는 PCB 회로를 잘 청소만 해도 고쳐지는 경우가 있었고, 

"아마도 파워 TR이 나간 것 같은데"라고 중얼대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부품들이 모듈화가 되어서 뭔가 손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뒷면을 닫고 조립해서 올려놓았다.


나중에 수리기사를 불렀는데, 수리기사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 텔레비전 내부가 왜 이리 깨끗해요? 

아마도 텔레비전을 뜯었다는 것을 들어서 인지, 수리기사는 파워 모듈을 깔끔하게 교체하고, 

우리 집 텔레비전도, 그전보다 지금 더 선명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