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마른 체형이었던 적이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현재 키(182㎝)에 이르렀는데, 그 이후 대부분을 과체중-비만으로 살았다. 그나마 최저치는 군대에서 첫 외박 나왔을 때다. 85㎏으로 입대했는데 77㎏이 되어 나왔다(전역할 때 83㎏으로 컴백한 건 안 자랑). 반면 최고치는 대전으로 이직해서 본가에서 살기 시작한 30살 때다. 매일 집밥에 디저트에 회식에 정줄을 놓았던 시절이다. 8개월 만에 8㎏이 늘면서 무려 93㎏을 찍었다(ㄷㄷㄷ).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이러다 100㎏도 찍겠다는 위기감이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당연히 쉽지는 않았다. 다이어트 ⇨ 요요 ⇨ 재다이어트의 무한 루프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을 방불케 하는, 밀고 밀리기의 반복이었다. 결국 11년의 장기전 끝에 77㎏에 복귀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것도 bmi 기준으로는 과체중이었다. 하지만 더는 뺄 자신이 없었던지라 그쯤에서 그만두었다. 이제 다시 80㎏대로 돌아갈 일은 없으리라 여기며, 적당히 먹고 적당히 빼면서 유지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역시 다이어트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의 “적당히 먹고 적당히 빼면서”라는 나이브한 생각을 비웃듯 살은 다시 찌기 시작했다. 하루에 두 끼만 푸짐하게 먹어도 2㎏이 확 늘었다. 그래도 78, 79㎏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80㎏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게는 심리적 저지선이었다. 1㎏ 차이라지만 앞자리가 바뀌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BC가 AD로 바뀌는 것과 같다. 그렇게 79와 80㎏을 위태롭게 오가는 일상을 보내던 중,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오랜만에 캠핑 가서 마음껏 먹었더니, 그게 고스란히 살로 킹반영되어, 81㎏을 뚫고야 만 것이다.
결국 또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다. 이쯤 되면 다이어트가 인생의 반려자가 아닌가 싶다. 다만 이번 다이어트는 체계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아내가 요즘 핫한 스위치온 다이어트라는 걸 배워 왔기 때문이다. 부부가 함께하면 효과가 더 좋을 것 같아 당장 시작했다. 다만 나는 다이어트의 제목만 알 뿐,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모른다. 식단과 규칙은 그저 아내가 정해주는 대로 따라만 할 뿐…(뭔가 사육되는 느낌) 아무튼, 이 다이어트는 기본 4주 코스로서 탄수화물과 당과 술을 끊는 게 핵심이다. 단백질과 채소를 주로 먹어야 한다. 중간중간에 24시간 단식도 필수 코스로 들어간다.
사실 시작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나처럼 평생 초딩입맛으로 살아온 헤비 슈가보이가 당을 끊는 게 가능할까 싶어서다. 그래도 작심삼일일지언정 한 만큼은 이득이라는 생각으로 저질러 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할 만했다. 며칠 안 먹는 습관을 들이니,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늘 달고 살았던 음식들 - 특히 간식과 디저트 - 은 먹고 싶다는 실체적 욕망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 먹기로 규칙을 정하고, 실제로 안 먹으니, 별 어려움 없이 안 먹게 되었다. 요컨대 그것은 식욕이 아니라 몸속에 프로그래밍된 습관에 가까웠던 것 같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4주 만에 체중이 81㎏에서 75.6㎏까지 내려왔다. 즉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bmi 기준 “정상” 체중에 진입한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20년을 훌쩍 넘는 나의 과체중-비만 시대가 드디어 끝났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스샷도 찍었다. 이렇게⇩
고백하건대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는 건강보다는 옷태에 있다. 물론 내가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거나 옷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깔끔하게는 입으려고 한다. 어디 가서 아내나 딸아이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내가 자주 입는 스타일은 흔히 말하는 비즈니스 캐주얼이다. 다른 옷들도 그렇지만 이 스타일은 말라야 태가 난다. 살찌면 안 입느니만 못하다.
몇 년 전에 해외 직구로 산 셔츠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것이다. 그런데 사이즈가 국내 기준과는 달라서 내 실제 사이즈보다 작은 걸로 사버렸다(…). 그게 어쩌다 보니 체중 관리의 기준점이 되어버렸다. 살이 조금이라도 찌면 못 입는다. 이번에 다이어트를 하고 입어봤다. 그랬더니 이 셔츠가 비로소 태가 난다. 아주 만족스럽다. 가을이 완전히 가기 전에 나도 남친룩을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