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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18. 2021

너는 초짜도 못되잖아

고래처럼 춤추게 되는 그날을 고대한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몇 안된다.

일단 글을 써본 적 없는 생 초보인 나의 글쓰기 작업이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상관이랴. 

다들 의미 없는 응원을 몇 마디하고는

그들의 기억 속에선 금세 잊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의 쓸데없는 관심이 더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충고와 편집자적 칼부림으로 나를 산산조각 낼 것이 두려웠다.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엔 하필이면 독설가인 A가 있다.

친하기도 하거니와 거의 매일 연락하다시피 하는 그녀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이럴 땐 또 거짓말조차 못하는 내가 문제일 수도 있겠다.

눈 질끈 감고 말하지 말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A는 독설가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나를 응원할 것을 알고 있기에

충고는 쓰지만 달게 받기로 첨부터 쉽게 상처 받지 않기로 작정했었다.


글은 브런치 서랍에 고이 모셔두고 꺼내지도 못한 시절이었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책 리뷰나 소소한 들까지 그녀가 못 보게 막을 방법은 없다.

그것이 글쓰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라 솔직히 '글'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역시나 나의 블로그를 매일 꼼꼼하게 챙겨 본  A는 충실한 평론가가 되어

나에게 이런저런 오지랖을 보여준다.

내가 구태여 A의 고마운-처음엔 진심 고마웠다- 충고를

오지랖이라고 표현한 것은 오늘의 문자 때문이다.


A가 좋아하는 글은 A의 표현대로 하자면 

대중과 공감을 하면서도 힘을 뺀,

꾸미지 않은 쉬운 어휘를 쓰고

의미를 함축하지 않는 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글.

가독성 좋으면서 구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쉬운 책.

"너무 어렵다"라는 나의 말에 A는 " 어차피 너는 초짜도 못되잖아"

라며 결국 글린이의 자존감을 훅 떨어뜨리고야 만다.

그래도 열심히 하라며 파이팅을 외치는 걸 A는 잊지 않았다.


그래 말은 쉽다.

나 역시 그런 글을 특히나 너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정도가 되면 좋겠다.

그러나 A의 말대로 난 초짜도 못된다.

굳이 뼈 때리는 말로 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누구나 쓰고 싶지만 쉽지 않은 게 글이란 걸 비로소 펜을 들고서야 알았다.

이제 시작이니 부딪치고 깨지다 보면

언젠간 모난 부분들도 동글동글 나다운 글로 재탄생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써 내려갈 뿐이다.


오늘 A에게서 여느 때처럼 톡이 왔다.

자신이 아끼는 후배가 출간 작가인데 그의 블로그 글을 보라고 친절하게 링크까지 걸어줬다.

출간 작가이자 요리전문가, 전공은 미술이란다.

손재주가 너무 좋더니 글도 잘 쓴다고.

보지 않아도 얼마나 A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는지 나는 안다.

도통 칭찬 같은 건 잘 안 하는 A이기에 칭찬을 받는 그 후배라는 친구가 부러웠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후배의 출간 책을 조만간 빌려주겠다고 분명 나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 그래 땡큐"


나란 사람은 칭찬과 비난 둘 다에 약하다.

원치 않는 비난이나 충고를 받을 때면 한없이 쪼그라들어 금세 얼굴이 벌게져서는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티가 난다.

칭찬은 받을 땐 또 어떤가.

마치 얼라들한테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는 것처럼,

칭찬 한마디에 열정이 지나칠 정도로 넘쳐나는 오버 우먼이다.

이러니 대놓고 칭찬해 달라고 요구하는 거랑 뭐가 다를까.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그래서 나에게 충고를 하는 모험 따윈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나에게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얘기하는 A가 사실 고맙다.

홀딱 벗겨져 도마 위에 오른 나를 보이는 그대로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더 쿨하게 A충고를 받아들인다.

사실 발뺌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기도 하고.


A가 오늘 내게 보낸 그 후배라는 사람의 블로그 글을 보니 이해가 됐다.

내가 초짜도 못 되는 이유를.

후배의 글은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짜임새 있고 술술 읽히고 표현도 좋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사실인걸 어쩌랴.

굳이 A의 말을 곱씹고 곱씹어 나를 초라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만

전과 다르게 오늘 A의 배려는 오히려 사기를 떨어뜨린 것만은 확실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응원의 말이라도 해주면 어디 덧나나....

기회가 오면 똑같이 복수를 해주겠노라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문득 생각했다.

세상에 내 편은 나밖에 없음을 잊지 않기를 다짐하고 다짐하면서도

사소한 에피소드에 또 무너지고 있는 나를.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단순히 A의 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닌데

겨우 도움되라고 보내 준 후배의 글 하나에 나는 이리도 쉽게 좌초된다.

중요한 건 여전히 누군가의 관심과 질타 속에서도 내가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노를 젓고 있다는 것인데 말이다.

오히려 지금은 칭찬 한마디에 고래처럼 춤춰대는 자만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글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야 하는데 이런 소소한 말 한마디에도 흔들거려서야

담담하게 써 나겠다고 했던 초심을 잃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조금 더 나를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아직 세상과 마주하지 않은 그냥 날 것 그대로의,

말 그대로 초짜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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