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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Oct 12. 2021

'독한 년'이란 말에 대한 고찰

당신의 잣대로 말하지 마세요.

'환불 원정대 화장법'

환불을 요구해도 찍소리 못하게 할 가히 당당하고 독한 언니의 모습로 변신하는 것을 방송으로 접했을때 이유 없는 실소가 나왔다. 사실 난 빨간 립스틱 정도 만으로도 연출 가능한 센 언니의 표정을 갖고 있다.

내가 그리 생각한 것은 어릴 적부터 줄곧 들어온 '독한 년'이라는 말 때문이다.


엄마에게 처음으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조신하지 못하고 나대는 성격에 어른들에게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나는 소위 울어야 할 때조차 울지 않는 '독한 년'이었다.


산업도로에서 술 취한 할아버지가 무단 횡단하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던 아빠는 생애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내셨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하셨는데 몇 달 뒤 돌아섰고 그 자식들은 교통사고 후유증이라며 아빠를 고소했다. 그리고 합의금을 요구했는데 그 과정 중에 아빠는 2주간 구치소에 계셨다.

엄마는 아빠의 구치소행이 결정되자마자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세상 아빠밖에 모르는 엄마는 차가운 바닥에 있을 아빠를 생각하며 보일러도 틀지 않았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동생들의 도시락도 챙기지 않았다.

머리를 싸매고 눈물바람을 하고 있는 그 모양이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생들의 방에 보일러를 켜주고 밥을 먹이고, 죽을 끓여 머리맡에 놓는 내게 엄마가 한 말은 '독한 년'이었다.


아빠가 저 지경인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독한 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며 온 힘을 다해서 나에게 악다구니를 했던 엄마를 대신해 그렇게 챙겨야 할 것을 묵묵히 해낸 내게 돌아온 말이었다.

나도 주저앉아 넋 놓아 울고 있으면 누군가가 대신 모든 것을 처리해 주었더라면 최소한 그런 소리는 안 듣고 살았으려나.

하지만 녹록지 않았던 내 삶은 늘 주어진 것들이 많았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느 구덩이로 빠질지 모르는 세상에서 내가 버텨낼 힘은 잠시 눈물을 잊고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해내는 것뿐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독한 년'이 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던 건.

저만한 사람들 없다는, 사람 좋다는 말을 안고 살던 부모님은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그로 인해 손해 보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난 그들의 환불 원정대가 되어야 했다.

마치 보호자라도 된 양 나는 본의 아니게 싫은 소리를 담당하게 되었고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 따윈 나올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독한 년'


말로도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다.

그래 그런 말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봐도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왠지 인상이 차갑다거나 독해 보였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가슴 한편이 얼얼했다.

아무리 담담한척해도 그 말은 나에겐 생채기를 남겼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왜 독하다는 말은 유독 여자들에게 많이 쓰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독한 년'은 많이 들어봤어도 '독한 놈'이란 소린 별로 들은 기억이 없다.

결국 어떤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여성에게 독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가장이라는 이유로 가족보다 일이 우선인 워커홀릭이 되어도 우리는 그 가장에게 '독한 놈'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아빠를 '독한 아빠'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등원을 챙겨주는 자상한 아빠로 인식한다.

행여 일이 실패해도 꿋꿋하게 재건하는 남자는 칭송받는다.

어렵게 육아와 일을 해내고 자기 관리까지 철저한 워킹우먼을 보거나, 멋지게 다이어트에서 성공해 워너비 몸매를 갖게 된 친구를 보면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독하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낸 사람에게 퍼붓는 비난의 화살이 얼마나 아픈지 시위를 당긴 사람은 알지 못한다.


독하다.

1. 독기가 있다.

2. 맛, 냄새 따위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고 자극적이다.

3. 마음이나 성격 따위가 모질다.


내게 퍼부었던 독하다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울음을 참아내면서 삶을 살아낸 것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이, 육아 독박에도 묵묵했던 워킹우먼이 마음이나 성격이 모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정작 모질었던 건 그들을 떠밀며 수많은 요구를 감당하게 한 세상일지도 모른다.

독한 세상 속에서 부러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욕지거리처럼 느껴지는 독한 년이란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정작 챙겨야 할 '나'를 챙길 여유가 없었을뿐인 나는 '독한 년'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웬만해선 환불을 하지 않는다.

필요 없는 것을 충동구매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환불할 때의 그 불편을 함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불 원정 화장은 내게 필요 없다.


하지만 무언가 원한다면 당당해야 한다.

당당함은 나대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기 위에 몸부림치는 것은 독한 것이 될 수 없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에게 붙여지는 수많은 수식어는 나를 다시 '독한 년'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행여 그들의 잣대로 맞춰진 기준에 어긋난다 하여 비난받는다면 기꺼이 나설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말들을 돌려받기 위한 '환언 원정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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