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탈피 프로젝트 시작되다
지루한 여름은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듣던 영어수업도 휴강, 일주일에 한 번 배우던 목공수업도 기약 없는 휴강, 사람을 만나고 어딘가를 가느라 늘 빼곡하던 나의 다이어리 일정표가 텅 비어버린 날이 끝내 오고야 말았다. 모든 일상이 멈춰버린 순간.
햇살 쏟아지는 아파트 거실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다 문득 통유리 안에 스스로 갇혀버린 듯 울컥해졌다.
"우리 백석에서 대화역 사이 자유로 인근에 땅 사서 집 짓고 셋이 같이 살자!"
김포와 고양에 사는 두 동생에게 이렇게 단톡을 보냈다. '살면 어때?', "살아 볼래?'가 아닌 느낌표 팍 찍은 '살자!'. 내 마음은 그만큼 절박했다.
8월 30일, 그러고 보니 여름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날 동생들과 셋이서 하루 종일 틈틈이 톡을 했다. '자유로 인근'으로 시작한 집 지을 장소 후보지는 평소 자주 산책을 다니던 파주 운정신도시 우리집 근처 공원 상가주택 부지로 옮겨간다. 내친김에 훌쩍 공원으로 달려가서는 잔디밭에 인접한 그 빈 땅을 멀건히 쳐다보다가 사진을 찍어 단톡 방에 올렸다. 인터넷으로 부동산 매물도 확인했다. "딱 여기야!"
다음날에는 단톡에서 빠져있던 수원 사는 셋째까지 불러들였다. 2년 전 김포 타운하우스에 입주한 막냇동생은 아무래도 합류하기 무리일 것 같았고, 넷째와 나 둘이서는 역부족이지 싶었다. 그러고는 얼른 단톡 방 이름을 '집을 짓자!'로 붙여 저장했다.
너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내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동생들은 긴가민가를 넘어 살짝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좋은데, 내 직장이 너무 멀고.... 대찬성인데, 애들 학교는 어쩌지.... 가고 싶은데, 입주한 지 딱 2년 된 우리집은.... "
동생 셋의 상황을 하나하나 따져보니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겠다.
"내가 다 해결해줄게. 일단 현장을 와봐. 우리집터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공공도서관이 있어. 애들한테 완전 좋겠지? 더 가까운 곳에는 수영장 딸린 체육관이 있어. K(막내 남편)는 수영장 딸린 집 갖고 싶어 했잖아. S(넷째 남편)는 400미터 트랙 보면 엄청 좋아할걸. D(셋째 남편)는 넓은 집 살고 싶댔잖아."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읊다 보니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1층에 공용공간을 두고 스터디 카페처럼 꾸미는 거야. 재택근무하는 어른들은 거기서 일하고, 아이들 온라인 학습도 모여서 하고. 내가 좀 봐줄 수도 있잖겠어?"
가뜩이나 집집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 답답함을 호소하던 터라, 돌아오는 주말에 일단 모두 와보기로 의기투합했다. 솔깃한 내용들은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안다. 결혼 전 이미 우리 넷이 모여 살았던 그 시간들의 수많은 추억들이 한몫했으리라는 걸.
토요일 오후, 온 세상을 집어삼킨 코로나 19로 한참을 못 만난 네 자매가 뭉쳤다. 그것도 우리 동네 공원, 그냥 우리끼리 마음으로 찜해놓은 빈 상가주택 부지에서. 엄마 따라온 조카들은 만나자마자 어찌나 뛰어다니며 잘 노는지 금세 땀범벅이다. 집에만 갇혀있던 녀석들이 뛰어다니는 걸 보니 우리도 숨통이 다 트이는 것 같았다.
놀라운 일은 지금부터!
강남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넷째가 현장에 와보고 마음을 돌렸다. 편도 1시간 30분~2시간은 족히 걸릴 통근거리의 높은 벽을 넘어선 것이다.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간 후 예기치 않게 막내네도 합류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입주 2년 된 타운하우스, 거기다가 부부 둘 다 직장이 김포, 이웃들과도 너무 잘 지내고 있다는데! 심지어 다음날 K는 영 시큰둥해한다는 S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까지 했다.
"S 형. 형네 가족 안 들어오면 우리끼리만 지어서 재미있게 같이 살 거예요!"
소외당하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S의 틈새 공략 작전이 제대로 먹혀든 것일까. 네째네도 합류 결정!
수원 사는 셋째네는 토목 일을 하는 D가 문제였지만 어차피 2~3년 만에 한 번씩 옮겨 다녀야 하는 직종인지라 오히려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 현장이 멀어져 집에 자주 못 오게 될 때 자매들과 함께 살면 오히려 덜 불안하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둘째인 나 우리집은? 뭐, 함께 사는 두 남자(남편과 중2 아들)는 아주 오래전부터 집 타령을 해온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따라와 주기로 진즉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그러니까 우린, 내가 처음으로 말 꺼낸 지 딱 일주일 만에 네 자매가, 아니 네 자매의 가족 열다섯이 모두 집을 짓고 모여사는 것에 합의했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