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작이 반이다 VS 시작은 시작일 뿐이다
- 대출상담과 설계상담을 동시에 진행하다
'시작이 반이다. vs 시작은 시작일 뿐이다.'
최근 이 두 상반된 문장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뭐, 둘다 너무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시작이 있어야 반도 있고 끝도 있으니 나는 전자에 좀더 무게를 싣기로 했다. 설사 시작만 해놓고 끝난다 하더라도, 시작을 하지도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주의랄까.
열다섯 명(실질적으로는 어른 여덟 명)이 모여 사는 것에 동의하고 땅도 찜해놓았지만, 1차 관문은 그걸 무사히 우리 땅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용감하게 저지르고 나서 번뜩 조바심이 났다.
'우리가 이러는 사이 땅이 홀랑 팔려버리면 그만 아닌가?'
상상만 해도 너무 허탈해서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이틀 뒤 급히 시간을 내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오전 휴가를 낸 넷째와 함께. 화요일 휴무인 막내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아침 일찍 대출 알아보러 가서는 점심시간쯤 겨우 우리와 만날 수 있었다. 부동산 만큼이나 대출도 중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우리 넷에겐 여윳돈이 거의 없다! 각자 결혼생활 9~15년 정도 되었는데, 결혼할 때 집을 사서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작고 열악한 전셋집에서 신혼을 보내고 한두 번 더 이사해서 전셋집 살다가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오래된 아파트를 샀다. 딱 2년 전 막내가 김포의 타운하우스를 분양받아 이사할 때 좋아하면서도 대출이 너무 많다며 다같이 걱정하기도 했다.
다들 대출 갚기 바쁜 상황이니 땅 사고 집 지을 여윳돈이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 누가 들으면 우리의 결정이 '용기'가 아닌 '무모함'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현실성도 꼼꼼이 따져가며 한 발씩 나아간다.
우선은 땅 구입하는 것만 생각하자. 땅 구입부터 집을 팔아야 하면 너무 힘들어지니 우선 땅 구입은 어떻게든 여기저기 돈을 끌어모아서 해보자. 그리하여 전문직 대출이 가능한 막내가 먼저 은행으로 달려간 거다. 깐깐한 은행은 다행히도 일주일 후 막내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늘려주었다. 후유~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규제가 심해졌으니 우리로선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부동산과 상담하니 땅 구입은 가능했다. 땅 주인은 집 지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동네에 여러 필지의 땅을 사놓고 건물을 지어 팔아 넘기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 건축업자라고 했다. 부동산마다 이런 건축업자 2~3명씩 끼고 협업으로 일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우리가 땅을 사고 이분에게 건축을 의뢰하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그러니까 대부분 상가주택의 미래주인은 부동산을 통해 땅을 사고, 소개해준 건축업자에게 의뢰해 4층만 복층으로 잘 지은 상가주택을 지어 꼭대기 층에서 살거나 통으로 임대를 놓는다고 한다.
아~ 처음에 '7~8억이면 건물은 짓는다'는 말을 그제서야 이해했다. 찾아보니 1~3층은 임대놓는 집이라 건축 자재나 공법, 인테리어 등등 모든 것을 '임대용'으로 했다. 4층만 '주인세대용'으로 모든 것들이 달랐다. 그러니까 평당 건축비가 1~3층과 4층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거다. 그 일반적인 현실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우리는 주인세대가 4개가 되는 거고 전체 건축비는 7~8억으로 어림도 없다는 결론!
동생 중에서 제부가 좀 반대를 하는 집은 "3억이 안 되는 돈으로 30평 넘는 집을 지어서 들어갈 수 있다"는 말로 꼬드겼다는데 어쩌나. 에이 뭐 그건 다음 일이고~ 일단 마음이 바뀌지 못하도록 '얼른 땅을 사야해!'로 결론 내리고 우린 부지런히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
동생과 함께 처음 부동산에 방문한 날이 9월 8일이니 딱 5일 후 가계약을 하고 그 후 다시 6일 후에 정식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현장을 열 번도 넘게 간 것 같다. 상가와 상가 사이 비어있는 그 땅에 상상 속으로 건물을 올리고 주변을 살펴 보고, 내려다 보고... 열다섯 명이 전재산을 모아 집을 짓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야 하는 집터에 혹시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이 땅이 남아있는 것이 다행인지, 혹 다른 땅보다 비싸다는 이유 말고 아직 팔리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 건물들의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을 여러 장 떼가며 비교해 보고 가늠해 보고.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로 검증했다. 그 다음엔 밀어붙이기! 좋은 집으로 만드는 건 우리들의 몫이니까.
토지 가계약을 하자마자 설계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동산에서 소개해주는 건축업자에게 우리집을 의뢰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20세기 말(^^) 처음 우리집을 짓고 싶었던 그때부터 제대로 설계를 맡겨 작업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즈음 건축잡지에서 2년 남짓 취재기자로 일하며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고 인터뷰하며 그들의 세계를 곁눈질했다. 내가 직접 공부를 해볼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건축은 상당히 매력 있는 작업이었다. 당시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취재기자나 밤샘을 밥먹듯 하면서 박봉이라고, 서로의 일을 3D라며 위안삼곤 했다. 그때 그 초짜들도 지금은 베테랑이 되어있겠지. 어쩌면 힘들어서 그 일을 그만 둔 사람들도 많겠지. 잠시 그때 만났던 이름 있는 소장님 몇 분을 찾아가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고심 끝에 두 군데를 골라 미팅을 잡았다. 세 군데 이상 만나고 선택하는 것보다는 신중하게 두 군데를 고르는 데 집중했다.
첫 번째 선택은 오래 알고 지낸 나의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 H1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큰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취업해 살다가 돌아와 대학교수가 되었다. 따로 건축사사무실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협업하는 팀이 있어 종종 일을 맡아 하는 걸 봤다. 전화로 연락하니 기꺼이 맡아주겠다고 했다. 서로 소통해가면서 작업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몇년 전 신랑 회사에서 지은 건물의 시공을 맡았던 분에게 추천을 받았다. 세 군데 건축사사무소를 추천받아 만나지는 않고 자료를 뒤져 하나를 골라 연락했다. 작업했던 결과물들이나 성향들을 자료로만 보는 것이 다소 조심스러웠지만 나름 신중하게 우리의 작업과 더 잘 맞을 것 같은 곳을 선택했다. 나 혼자서는 애매하니 동생들에게도 살펴보라 했고, 비슷하게 한 군데를 골랐다. '보편적인건축'. 이름부터 살짝 끌렸던 그곳은 H2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두 부부가 운영한다 했다. 10월 첫주, 이틀 간격으로 미팅을 잡았다.
시작을 하니 진행이 된다. 시작은 시작일 뿐이지만, 어쨌든 시작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