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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쟁이 Dec 20. 2020

4. 연애만 글로 배우나요? 집 짓기도 글로 배웠어요!

- 집 짓기 전에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어쩌겠나. 일단 책부터 사고 본다. 뭔가 잘 안 풀릴 때도, 새로운 생각들이 솟구치거나 재미있는 꿍꿍이를 해볼 때도 맨 처음 하는 짓이다.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서도 동생들과 얘기하는 것과는 별개로 난 홀로 바삐 움직였다.

'책을 너무 여러 권 사지 말자'고 다짐부터 한 후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최근 '미니멀 라이프'를 외치며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1/3 정도 줄이면서 맨 먼저 나누고 버린 게 책이다. 거실 한쪽 벽면의 책장에 쌓여있던 책을 15박스쯤 비워내고 나니 조금은 헐렁해졌다. 몇 번의 고심 끝에도 남겨진 책 중에 집에 관한 책이 3권 있었다.


<협동조합으로 집짓기>,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 <집>

이 세 권의 책은 모두 2015~2016년 사이에 산 것들이다. 한살림에서 근무한 지 4,5년차 때였고 한창 협동조합 공부에 재미가 붙어 이론을 넘어 '직접 사람을 모아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고 함께 살 공동체 집을 짓고자 하는 욕구'가 꿈틀거릴 때다. 성미산마을에 견학을 다녀온 후였나. 공유부엌을 비롯한 공용 공간들을 잘 갖춘 공동체주택을 직접 보고,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구나, 벌써 실현하고 있었구나' 싶어 반갑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협동조합으로 집짓기/홍새라/한겨레출판/2015

<협동조합으로 집짓기>를 보며 책 속 '구름정원집'처럼 당장이라도 집을 짓고픈 마음에 들떴다. 소설가인 저자를 포함해 여덟 가구가 모여 협동조합으로 집을 짓는 과정을 세세하게 쓴 책인데 여러 갈등상황까지도 고스란히 기록했다(물론 여러 번 정제시킨 것이겠지만^^).  그즈음부터 친하게 지내던 한살림 조합원 중에서 나와 형편이 비슷한 몇몇을 염두에 두고 은근슬쩍 떠보거나 부추겨보기 시작했다. 몇 년을 두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그러니까 우리, 땅 사서 같이 집 짓자' 했다. 그들에게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너네랑 했으면 아마 나는 지금쯤 뒷골 '땡겨서' 쓰러졌을지도 몰라!"

지금이야 동생들이니까 거리낌없이 말하는 것들을 훨씬 더 많이 속으로 끙끙거리며 삭혀야 했을 테니까. 서로의 다른 생각들이 얼마나 많이 부딪쳤을까. 그러면서도 나는 못내 아쉽기도 하다. 협동조합을 꾸려 해보고 싶던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다시 꿈꾼다. 동생들과 집을 다 지은 후 우리 동네로 지인들을 끌어들여보면 어떨까. 괜찮은 마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우리 동네로 이사와!"

요즘 다시 이 말을 시작했다!


@ 집/전남일/돌베개/2015

<집의 공간과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 집>은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 책이다. 별 일 없이 출판단지에 들러 좀 걷다가 별 일 없이 행간과 여백(돌베개출판사 1층의 북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책 한 권을 사서 나오는 걸 좋아한다. 아마도 어느 가을날 그렇게 들러 픽한 책이었을 거다. '여기서 이런 책도 나왔었나?' 싶었다.

막 읽히는 재미는 덜하지만 흥미진진한 책이다. '집'이 궁금했던 내게 많은 답을 안겨줬다. 시골에서 태어나 살다 소도시 하숙과 자취생활, 서울 셋방살이를 경험하고 결혼 후 월세, 전세를 거쳐 세 번째 집이자 대출 70%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살던 하우스푸어인 나에게 '집'은 언제나 중요했고 숙제였다. '집'이라는 것의 구조적인 공간 변화만이 아니라 '왜' 그렇게 변해왔는지에 방점을 둔다. 거기에는 남성, 여성의 중심이동이 있고,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있고, 편리와 필요 등 세상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다.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 '사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이 두 속표지 제목이 마음을 끌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어디에 살고 싶은가?'를 가끔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아, 그래서 이렇게 되었구나' 싶을 때다 많다.

건축가가 지은 책이라서, 직접 그린 드로잉들이 곳곳에 들어있어 더 좋다. 난 건축가들이 직접 그린 도면이나 스케치들이 참 좋다.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마이클 폴란/펜연필독약/2016

'펜연필독약'이라는 이름의 출판사가 있는 것도 신기한데, 아주 작은 나무 오두막을 직접 짓는 과정을 400쪽 넘는 책으로 그림도 거의 없이 글로만 쓴 작가가 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저자로 알고 있는 마이클 폴란. 그러니까 작은 오두막을 짓는 과정을 쓴 책이 <주말 집짓기>이고,  <잡식동물의 딜레마>도 그 작은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신기해라! 연도가 이상해서 보니 내가 2016년에 초판으로 만난 책이지만 사실 미국에서는 1997년에 발행된 거였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과정에 작은집건축학교가 있다. 일주일 정도 합숙하면서 5평짜리 집을 협업으로 짓는 과정이다. 퇴사를 하면 거기 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산 책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때는 또 그 작은집건축학교가 간절했다. 한참 들떠서 신나게 얘기했다가 남편이 "에이, 별로야!" 하는 바람에 김 빠졌던 기억이 난다. 목공일도 해보고 목조주택 짓는 일도 해본 남편에겐 당연히 별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벽돌 하나하나 쌓아 집을 직접 지어보고 싶었던 내겐 얼마나 멋진 일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좋은 집'이라는 건 모든 사람에게 다른 것 같다. 저 사진 속 작은 숲속 오두막이 마이클 폴란에겐 더없이 아늑하고 창의력을 뿜뿜 솟는 공간이었을 텐데 어떤 사람에겐 1도 궁금하지 않아 그냥 지나쳐버리는 곳일테니. 내가 요즘 집을 짓는다고 막 떠들고 다닐 때 반응들을 봐도 그렇다. '너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은연중에 '아파트 팔고 가서 나중에 값 떨어지면 후회할텐데'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매들과 함께 살아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자매들이어도 함께 살면 오히려 관계가 안 좋아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모두가 맞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잣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니까. 그 말들을 새겨는 듣되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거다. 그 길은 힘은 들어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을 거다.

그래서 책은? 막 재미있지는 않지만 집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적당히 흥미롭고 적당히 재미있다!


여기까지는 있던 책 중에서 집 짓기를 시작하며 다시 들춰본 책들이다. 이젠 검색으로 선정한 책들을 소개한다.

우리가 짓는 집은 형태적으로는 상가주택이고 법적으로는 다가구주택, 의미로는 공동체주택 정도 된다. 그래서 책을 딱 두 권만 사겠다고 결정했다. 앞으로 집을 지을 때 구조적으로나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책 한 권, 함께 하는 의미를 찾고 갈등을 조율해가기 위한 책 한 권. 인터넷으로 찾은 책 너뎃 권을 사지 않고 우선 도서관에 가서 대략 훑어봤다. 상가주택에 관한 책은 한두 권 있었는데 별로였고, 공동체 주택에 관한 책은 서서 읽다가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직장인, 겁 없이 상가주택 짓다>, <마을을 품은 집, 공동체를 짓다>

두 권을 구입했다. 앞으로 집짓기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전체적인 과정이 너무 궁금해서 첫 번째 책부터 봤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은 틈틈이 천천히 읽어갔다.


@직장인, 겁 없이 상가주택 짓다/진하빠/주택문화사/2019

살까 말까 한참 망설였지만 나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 책이다. '월급 받고 월세까지 받는 건물주 되기 플랜' 이런 말들이 난 참 거슬린다.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니,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다 건물주'라느니 하는 말들이 도는 세상이다 보니 '건물주'라는 말 자체에도 거부감이 좀 있다. '집'을 '돈의 가치'만이 아닌 '의미'로 좀 생각하면 안 되나.  

하지만 집짓기를 시작하면서 당장 나 스스로도 뭐부터 해야 할지 초반부터 헤매고 있었다. 땅을 사고, 설계를 의뢰하고, 도면이 나오면 시공 계약을 하고. 그러고 지으면 되는 거 아닌가? 너무도 단순한 말과 글들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집 짓는 과정에서 대출은 언제쯤 받을 수 있는 거지?, 우리땅이 80평인데 대체 몇 평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걸까?, 평당 시공비는 얼마쯤이면 어느 정도로 지어지는 건지?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니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내가 갖고싶었던 것은 넓은 대지에 여유있는 마당을 가진 전원주택이었기에 상가주택이라는 게 좀 못마땅한 마음도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내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부터 꼼꼼이 책이 읽었다. 완전히 알지는 못해도 집 짓는 전체 과정, 특히 우리가 지어야 할 상가주택의 특징이나 주의해야 할 부분들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임대세대', '주인세대'의 구분과 평당 시공비의 어마어마한 차이들도 처음 알게 됐다. 실제로 모든 과정을 진행해 본 건축주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 실질적인 도움이 컸다. 가만 보니 저자가 관련 업계(출판쪽?)에 근무하는 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집을 짓는 모든 사람이 내가 살 집이다 생각하고 집을 짓는다면, 얼마나 좋은 집이 지어질까?'

금방 실현되지 않을 것 같은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집은 90% 아니 95% 이상 집을 짓는 사람과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다르다고 한다. 소유자와 거주자만 다른 것이 아니라 대부분 지어서 파는 형태인 것이다. 옛날엔 시골 작은 오두막 하나도 내가 혹은 내 이웃이 살 집이었기에 정성을 들였었나보다. 재료가 좋지 않아도 제법 견고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문득 아파트 입주 청소를 하던 날, 보이지 않는 곳에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숨겨져 있던 게 생각났다. 청약에 당첨되고 3년을 손꼽아 기다린 집이었다. 주변을 오가며 혹은 종종 일부러 들러서 아파트가 올라가는 걸 지켜보며, 아 저기가 우리집이구나 어떻게 지어질까 생각했었는데 그 숨겨놓은(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쓰레기를 보면서 씁쓸하던 기억. 부디 우리집은 잘 지어봐야겠다. 고급스럽게가 아닌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곳 답게!


 @마을을 품은 집, 공동체를 짓다/류현수/도서출판 예문/2019

꼭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오랫동안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건축운동가 류현수의 기록이다. 지난 해에 나왔을 때 살까 하다가 넘어갔는데 도서관에 가서 쓱 넘겨본 다음 곧바로 주문했다. 줄 쳐가면서 읽어야 하니까.

앞서 소개한 책이 진행하는 데에 도움이 컸다면, 이 책은 중간중간 나의 마음을 다잡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왜 모여살기로 마음먹었던 거지?'

'그저 모여 살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벅찼는데!'

사실,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하기에 앞서 진지하게 소행주에 문의하고 함께 해볼까도 고민했었다. 공동체 주택을 짓는데 이만한 의미와 노하우를 가진 곳은 없으니까. 심지어 책 속에는 우리처럼 자매들이 모여 사는 소행주도 있었다. 나는 짧지만 깊은 고민 끝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일단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는 점, 또 제부들에게 그 의미를 각인시키고 긍정적인 답변을 끌어내기 쉽지 않겠다는 점 때문이다. 현실적인 면에서도 수많은 만남과 소통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이유로 찾아가보지 않은 소행주가 내내 아쉽기도 하다.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 바로 그것이니까.

다시 대안을 생각한다. 역으로 입주 후에 하나씩 해나가보자.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우리만의 소행주를 만들어가면 되니까.


"내가 다 가지려다보니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만다. 내 이웃과 더불어 조금이라도 공간을 나눌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면 사실 난 그 공간은 다 가진 거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건물이나 돈이 아닌 추억을 물려주고, 게임기와 스마트폰이 아니라 평생 함께 갈 수 있는 친구와 이웃을 만들어주느냐는 소행주의 끝이다."


마음이 심란한 때마다 밑줄 그어 놓은 이 문장들을 다시 본다. 우리가 함께 집을 짓는 이유, 그것은 건물로서의 집보다 더 큰 의미를 짓고자 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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