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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Bakha Mar 17. 2023

#불효자모니 : 실험

모니 만화일기









"낼모레면 내가 칠십이다"

아버지는 10년 전부터 나를 만날 때마다 이 말을 꼭 하셨다. 당신 눈에 너무나도 대책 없어 보이는 딸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듯 그 말을 하셨다.

"내 죽고 후회하지 마라."라는 말도 잊지 않고 매번 덧붙이시며.

그 말에 너무 조급하거나 압박받지 말아야지 스스로 다짐했지만, 그럴수록 아버지의 칠십은 내 뇌리에 새겨졌다. 그리고 드디어 작년에 아버지는 고대하시던 칠순을 맞이하셨다.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

작년 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25년 전부터 늘 하신던 말이다.

아버지의 칠순타령은 당신 어머니의 죽음타령과 꼭 닮아 있었다. 칠순도 지나가버린 이제는 만날 때마다 할머니처럼 말씀하시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 어르신들의 나이타령, 죽음타령은 언젠가부터 내게 "무섭다. 두렵다."라는 말로 치환되어 들렸다. 그제야 나는 무섭고 독단적으로 보였던 나의 아버지가 겁 많고, 여린...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 역시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엄마가 없는 세상은 어떨지. 그래서 겁이 난다. 유일한 비빌언덕 같았던 존재들이 없는 세상이. 하지만 우리 모두의 육신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깐, 오늘 하루 잘 살아 보는 수 밖에는 내게 도리가 없다.


70대의 걱정거리를 바라보았던 60대의 아버지가 조금 더 활력 있었던 60대를 충분히 누리셨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어쩌면 죽음을 바라보느라 오늘의 삶을 누리기 어려우실지 모르겠다. 70세 이후를 대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건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불안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던 아버지. 그것을 원망하기에는 그게 아버지가 하실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죄송하게도 나도 당신의 불안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10년이 지나고 보니, 그와 내가 원하는 방향은 전혀 달랐지만 그 갈등 속에서 화해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 같다.


아버지의 사소한 변화들이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식사 후에는 그릇을 열심히 치우고,

티브이를 보며 빨래를 너는 아버지.

입원한 딸 면회 와서 "우리 아가"라고 불러준 아버지.

살면서 처음 만나는 아버지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어색하지만, 싫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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