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스푼 Dec 08. 2022

커리어 vs 일자리

<커리어 그리고 가정>, 클라우디아 골딘 (2)

엄마가 몇 년 만에 재취업을 했다면 집안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질까? 외식과 배달음식이 늘고, 집안은 좀더 지저분해지겠지만 가족들은 불평 없이 집안일을 나눠 한다? 오랫만에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는 피곤하지만 생기가 돌고, 돈을 벌어오면서 자신감이 늘어난다?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집에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파트타임에 100% 재택근무다. 9시부터 3시까지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 동안에만 일하는데 그나마 재택이니 엄마의 빈자리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만 일하니 딱히 사회생활이랄 게 없고, 몸을 움직여 출근하지 않으니 아침마다 부리나케 정장을 챙겨 입을 일도, 회사 앞 까페에서 모닝 커피를 픽업할 일도, 동료들과 나가서 점심 외식을 할 일도 없다.


그냥 나만 바빠졌다. 낮에는 틈틈이 집안일을 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오후에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집에 데려와 간식 챙겨주고 운동 데려가고 다 못 끝낸 집안일과 회사일을 되는 대로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만나러 외출할 시간이 없고, 식료품을 제외한 쇼핑을 하러 돌아다닐 시간이 없다. 미국 최고의 명절이자 쇼핑철인 땡스기빙과 크리스마스를 맞아 온라인 쇼핑만 하고 있다. 몸은 하루종일 집에 앉아 있는데 컴퓨터를 줄창 바라보는 머리에는 과부하가 걸린다.


솔직히 편하다.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아서. 그리고 시간을 내 편의대로 쓸 수 있어서. 그렇지만 재택근무로 인해 잃는 것도 있다. 일단 혼자 일하면 심심하고 종종 집중이 흩어진다. 그리고 내게 일을 가르쳐주고 나눠 일할 동료직원과의 소통이 느리니 배우는 속도도 늦다.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뒤돌아서 묻고 보여주면 그만일 것을, 길고 긴 이메일이 몇 번을 오가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적은 시간 집에서 편하게 나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일하면서, 커리어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일자리일 뿐이다. 그러나 내게 무리되지 않게 적당히 바쁘고 가정생활에 손해나는 것 없이, 많지는 않아도 고정수입이 있고 보잘 것 없어도 경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기회에 감사한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는 커리어(career)와 일자리(job)를 이렇게 구분했다.


"커리어라는 단어는 '경주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전차(chariot)'나 '마차(carriage)'가 같은 어원에서 온 단어들이다. 커리어는 인생을 통해 진행되는 '과정(course)'이다. 결국 커리어란 단순히 취직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커리어는 꾸준히 버티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배우고, 성장하고, 투자해서, 그 결과를 누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커리어를 잠시의 일자리가 아니라 작가, 교사, 의사, 회계사 등 다른 사람들의 선망을 받고 당사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장기적인 직업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반면 일자리는 당사자의 정체성이나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않는다. 일자리는 보통 수입을 창출할 뿐, 확실한 성장의 지표가 있지는 않다." (p. 21 본인 번역 및 요약)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커리어는 결국 고등교육의 산물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커리어를 추구라도 해볼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백여 년 전의 일이다. 골딘 교수는 미국 여성들의 커리어 추구에는 다음과 같은 세대적인 패턴이 있다고 분석했다.


(1) 1800년대 후반 출생 - 1900~20년 대학 졸업

(2) 1900-20년 출생 - 1920~45년 대학 졸업

(3) 1920~45년 출생 - 1945~65년 대학 졸업

(4) 1945~60년 출생 - 1965~80년 대학 졸업

(5) 1960년 이후 출생 - 1980년 이후 대학 졸업


첫 번째 그룹은 처음으로 대학 교육을 받게 된 소수의 여성들이다. 당시의 사회적 압력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대학 졸업 직후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고, 극히 일부만 독신으로 남아 커리어를 이루었다. 이 세대의 특징은 '가정 또는 커리어 양자택일 (family or career)'로 요약된다.


두 번째 그룹이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에는 평균 결혼연령이 이전보다 조금 높아졌다. 그래서 이 시기의 대졸 여성들은 대부분 취직을 했지만, 몇 년 정도 일하다가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 세대의 특징은 '취직 이후 가정 (job then family)'으로 요약된다.


세 번째 그룹이 사회에 진출할 때는 세상이 조금 더 평등해졌다.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퇴사를 강요당하는 세상은 더 이상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키우다가,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라 손이 덜 가는 나이가 되면 다시 취직을 했다. 이 시기 미국에 인구가 급증하여 초등학교 교사가 많이 필요해졌고, 화이트칼라라고 불리는 사무직이 급증한 덕에 대졸여성들을 소화할 수 있는 노동시장이 형성된 덕이다. 그러나 이들의 우선순위는 여전히 가정이었고, 느지막히 복직해서 너무 치열하지 않게 일하다 보니 이들의 행보는 커리어 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에 가까웠다. 골딘 교수는 이 세대의 특징을 '가정 이후 취직 (family then job)'이라고 요약한다.


네 번째 그룹은 우리가 생각하는 치열한 커리어우먼들이 대거 등장한 세대이다. 이들은 엄마 세대의 희망과 좌절을 보고 자라며 야심을 키웠을 뿐 아니라, 때마침 피임약의 등장으로 연애 및 성생활을 누리면서도 출산을 미룰 수 있는 첫 세대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결혼과 출산을 그 이후로 미루었던 이 세대는 '커리어 이후 가정 (career then family)'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네 번째 그룹은 출산을 뒤로 미룰 줄만 알았지 여성의 가임능력이 나이가 들면 퇴화된다는 걸 잘 몰랐기 때문에, 커리어를 충분히 다진 후에 출산을 원했을 때 난임 및 불임으로 고생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걸 보고 자란 다음 세대 여성들은 더욱 야심만만해졌고 동시에 신중해졌다. 커리어도 가정도 놓치고 싶지 않아 동시에 두 가지를 다 추구한 첫 세대가 바로 다섯 번째 그룹이며, 골딘 교수는 이 세대를 '커리어 그리고 가정 (career and family)'이라고 요약한다.


내가 다섯 번째 그룹의 여성으로 자랐다. 가정에서 여자라고 해서 차별받기는 커녕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격려받으며 자랐던 세대. 학교에서 남자애들에게 밀려 본 적 없으며 마음껏 공부 잘하고 야심을 키웠던 세대.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고 똑똑하게 선택하면 여성도 "having it all"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세대.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진부한 다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미 엄마랑 다른 세상에서 자라고 있었으니까.


나는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나는 시대별로 형성된 거대한 지층의 자갈 하나, 아니 모래알 하나에 불과했다. 개인의 능력과 기회와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실은 내가 속한 환경과 시대적 상황이라는 종횡의 그물로 더 잘 설명되었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그렇게 다섯 번째 그룹으로 자랐던 나는 이민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세 번째 그룹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가정 이후 취직 (family then job).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라 손이 덜 가는 나이가 되자 나의 고학력과 자격증을 사용할 수 있는 적당한 사무실에 취직해서, 여전히 가정을 중심에 두고서 너무 치열하지 않게 일하며 일자리를 유지한다. 첫째 출산 후 교직을 떠났다가 막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교단으로 복귀한 우리 엄마랑 똑같은 행보가 아닌가. 엄마가 교원 자격증이 있었다면 나는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 결국 한 세대 동안 학력만 더 높아졌다.


아쉬움은 별로 없다. 아니, 좌절도 고민도 많이 했는데 뾰족했던 돌이 다 닳듯이 둥글둥글 괜찮아졌다.


교육을 못 받은 것도 아니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여성이 커리어와 가정을 둘 다 자연스럽게 성취하며 직업인으로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둘 다 마음껏 잘할 수 있는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다. 내 그릇 되는 데까지 시도하다 실패한 나는 어쩌면 다음 세상으로 전진하다가 중간에 전사한 보병일지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내 자신을 증명해야겠다는 그 절실함이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새 지쳐서 내려놓은 것인지, 아니면 딱히 가능성이 안 보이니 얼른 그만두고 정당화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그동안의 과정에서 이미 내가 나 자신을 납득했으니 더 이상 누구 보라고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커리어가 골딘 교수의 표현대로 '배우고, 성장하고, 투자해서, 그 결과를 누리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특정 직업이 아닌 내 인생에서 그걸 누리고 있다. 더 이상 남의 눈에 보이는 성장을 원하지 않는다. 내 자아는 이미 실현되어 여기 있기 때문에 커리어를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말에도 마음이 울리지 않는다.


40대 내내 고민해서 잠시 이런 균형에 머물러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