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대청소를 했다.
엄마는 12월 31일에는 대청소를 했다. 먼저 창문을 열어 차가운 겨울 공기로 환기를 했다. 온 집안을 청소하고 우리를 목욕시키고, 엄마도 목욕하고 욕실 청소를 마친 후에 다 같이 TV 앞에 앉아서 연기대상 시상식을 봤다. 그래서인지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방법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대청소다.
2022년의 마지막 날에 나도 대청소를 했다. 아침 열 시에 시작했는데 청소를 끝내고 샤워를 마치고 내려오니 저녁 열 시였다. 다른 가족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나 혼자 했다. 처음부터 '아무에게도 청소하라고 잔소리하지 않을 테니 나를 방해하지만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사람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싶은 방식은 다를 테니까 말이다.
중간에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점심과 저녁을 차린 것도 나였다. 열두 시간 동안 비슷한 강도로 꾸준히 집안 정리와 청소를 하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아이들이 많이 컸다. 아침부터 밤까지 밥만 챙겨 주고, 하루종일 스크린을 붙들고 있지는 않도록 최소한으로만 간섭해도 하루종일 내가 일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길게 세밑 대청소를 해본 것이 첫째의 돌 무렵 후 처음인 것 같다.
2.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가족들 마음이 나와 같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해야 한다. 어린 시절 12월 31일에 우리 엄마는 대청소를 했고 남편의 엄마는 교회에 갔다. 내가 남편과 같은 마음으로 나서서 아이들을 챙겨 송구영신 예배에 갔다면 남편은 좋아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대청소가 먼저였고, 예배를 가려면 갈 수도 있었지만 혼자 하는 대청소는 시간 내에 끝나지 않았다. 남편은 혼자서 온라인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남편 또한 굳이 아침부터 한마음으로 도와서 내 청소를 일찍 끝낸 후 관심 없는 아이들을 다그쳐서 온 가족을 저녁에 교회에 데려가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평화롭게 각자 원하는 일을 했다.
3. 이런 마음은 청소년 딸을 키우면서 확실해졌다. 딸은 곧 14살이 된다. 너무나 귀엽고 잘 자란 아이지만, 나는 '내 딸이라면 응당 이래야' 싶은 두 가지를 이 아이에게 가르치는 데 실패했다. 책 읽는 습관, 그리고 또 정리정돈하는 습관. 이 두 가지는 내게는 너무나 중요하고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핵심에 닿아 있는 것이라서, 나는 내 자식은 당연히, 유전이 아니라면 환경의 영향으로라도 이것들을 몸에 익힐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의 유전자는 내가 보이는 모범에 반응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내가 뭘 잘못 가르치거나 때를 놓쳐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젠 더 이상 자책하지 않는다. 저 아이는 내 딸이지만 나랑 다른 사람인 것이고, 나는 내게 중요한 것이 왜 너에겐 그렇지 않느냐고 불만스러워하며 아이를 덜 사랑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4. 비록 가족들은 대청소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나는 평온했다. 하고 싶은 일을 혼자서 해낼 만큼의 체력과 의욕이 있었고 가족들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온 가족이 해야 할 일을 나 혼자 다 하고 있다는 억울함이나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가족들은 몰라준다는 서운함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까지 내가 혼자 해도 화나고 억울하지 않은지 그 균형의 느낌을 기억하려고 했다. 그걸 넘어간다고 느낄 때가 되면 청소 서비스를 고용할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가족들이 매우 게으른 것 같다. 실제로는 거의 매주 주말에는 다 같이 청소를 한다. 물론 그 주말 청소의 수준은 내 마음이 흡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요일에는 다 같이 교회에 간다. 12월 31일의 대청소는 내게는 어떤 의식(ritual)이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딱히 그 의식이 가족의 전통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가족의 연말 전통이 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열심이다. 11월 말 추수감사절, 늦어도 12월 첫 주말까지는 생나무 트리를 집안에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들은 쿠키를 굽는다. 산타가 우리를 찾아오지 못할까봐, 그리고 크리스마스 장식은 우리집이 최고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집에서 보내고 싶어한다.
한 달 동안의 축제를 마친 후 크리스마스 당일 낮에는 여행을 간다. 조금씩 말라가는 생나무 트리와 풀어헤쳐진 선물을 뒤로 하고 떠난다. 올해는 버몬트에 있는 킬링턴 스키장에 5박6일 다녀왔다. 처음 갔던 곳인데 운전하는 길도, 묵었던 산장도, 스키를 배웠던 슬로프도 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마 내년 이맘때 또 갈 것 같다.
가족들과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 어떤 것은 자연스럽게 착 붙어서 쉬이 반복되고, 어떤 것은 반응이 별로거나 아무리 멋진 경험이었어도 거창해서 되풀이하기가 쉽지 않다. 모두가 좋아하고 쉽게 반복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의 전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