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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Jan 28. 2023

친구가 없는 초등학생 둘째

날라리와 오타쿠 (2)

둘째는 새 학교로 전학와서 5학년을 시작했다.


그리고 반 년이 지나도록 친구가 없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이고 교실에서는 모든 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 같은데, 학교 밖에서 따로 만나 같이 놀 친구가 없다. 우리 아이의 성격이 모난 것 같지는 않다. 열심히 분석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지금 우리가 사는 동네에 동양인이 별로 없고 어려서부터 이 동네에 살던 아이들이 아주 작은 학교를 다니는 터라 (5학년 전체가 32명), 아이들이 이미 다 편을 먹은 다음이고 새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


(2) 우리 둘째는 (친구의 기준이 낮아서 적당히 같이 놀 수 있으면 일단 끼어들어 놀아 보는 첫째와는 달리) 마음속에서 친구의 기준이 높다. 영혼의 단짝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와 비슷한 점, 공유할 것이 많은 아이를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아이가 임자 없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학년 초에는 우리 아이에게 다가오는 급우들도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그들과 친구하고 싶지 않아 했다. 이미 교실 안에서 인기 없고 친구 없는 아이들이 우리 애한테 다가온 것이라서 아이는 쩌리들끼리 그룹을 만드느니 차라리 혼자이고 싶어했다. 그 중 한 명은 몇 번 같이 놀았는데, 내가 보기에도 남들과 같이 놀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막무가내인 애라서 그 애랑 노느니 차라리 혼자이고 싶을 만했다.


한창 친구들과 노는 게 좋을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친구가 없다니 그 마음을 과연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마는, 친구가 없으니 좋은 점도 있다.


우선, 싱가폴에서 친구가 많을 때에 비하면 전화기 사용시간이 압도적으로 줄어들어 전화기가 필요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4학년만 되어도 채팅방에 하루에 몇백 개씩 의미없는 챗이 난무하고, 특히 남아들은 "같이 논다 = 각자의 디바이스로 게임을 한다"였는데, 전화기 사용이 거의 0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과 에너지의 여유가 생기니 본인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학교 숙제를 제외한 별도의 공부는 일체 안 시킬 테니 매일 하루에 한 시간 운동하기를 목표로 하자고 아이에게 제안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영, 두 번 주짓수, 두 번 테니스, 이렇게 일주일에 6일 운동한다. 상당히 강도높은 훈련인데 빠지는 일도 거의 없고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는 일도 없다. 그냥 꾸역꾸역 간다.


다른 할 일이 없으니까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아이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안스럽다. 아직은 친구들이랑 아무 생각 없이 한창 뛰어놀 나이인데, 혹시 괜히 심각하게 자아 개념을 고민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학교 숙제가 거의 없어서 운동을 하고도 시간은 많이 남는다. 아이는 그 시간을 '자기의 관심사를 연구하는 데' 쓰고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연구는 유튜브로 한다. 어떤 관심사에 꽂히면 한동안 온갖 유튜브 비디오를 섭렵하며 그 주제를 파고, 아마존에서 온갖 관련 제품을 비교한다.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임이나 채팅보다는 낫겠지. 그런데 결국 이 연구도 실제 생활로 연결되지 않고 본인의 머릿속, 그리고 인터넷 안에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지난 5개월 동안 아이가 꽂혔던 첫 번째 주제는 낚시였다. 이 학교에 전학와서 동네 개울에서 낚시를 접한 후로, 아이는 한동안 낚시에 빠져 온갖 낚시 동영상을 섭렵했다. 좋은 취미라고 여겨져서 우리 부부도 열심히 장비를 사주고 개울이며 호수에 데려가며 지원했지만, 낚시는 동영상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낚싯줄이 끊어졌을 때 매듭짓는 법부터 동영상으로 잘 배워지지 않으니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봄이 오면 낚시 과외선생님을 인터넷으로 찾아봐야 할 판이다.


두 번째 주제는 강아지였다. 원래는 강아지를 싫어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관심이 생겨, 아이는 한동안 강아지 키우는 법에 대한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이것도 이론과 실제를 연결시켜 현실세계의 경험으로 구현하려면 강아지를 키워야 하는데, 지금은 마당이 없는 월세집에 살고 있어 강아지를 키울 수가 없다. 외로운 아이에게 친구를 대신하고 눈과 머리가 아닌 손과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강아지 쯤이야 키우고 싶지만, 당장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실제 세상과 연결이 안 된 채로 아이의 관심사는 인터넷 속에서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세 번째 주제는 PC 조립이다. 아이는 게임용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고 싶다며 유튜브와 아마존을 매일 파고 있다. 문제는 부모 둘 다 컴퓨터 조립에 문외한일 뿐 아니라 관심마저 없어서 아이를 도와 줄 수 없다. 부품비로만 $1,000 정도는 들어갈 비싸고 복잡한 취미를 아직 손끝도 야무지지 않은 5학년 어린이더러 너 혼자 해보라고 하면 실패할 것이 뻔해서 그래 맘껏 해보라고 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정보가 들어찬 머리는 복잡하고 공동의 관심사를 나눌 마땅한 친구가 없으니, 아이는 기회만 있으면 아무나 붙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절댄다. 원래도 조리없이 횡설수설 이야기하는 아이인데, 그걸 영어로, 생뚱맞은 정보를 맥락 없이 늘어놓으니 나는 알아들을 길이 없다.


이런 게 오타쿠인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관심있어 하지 않는 주제에 혼자 꽂혀서 몰두하다가, 딱히 내놓을 결과물은 없이 머릿속에서만 성을 쌓고 허물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기회가 되면 신나게 떠들어 대는데 그 또한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면서 친구가 없다. 얌전한 우등생과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오타쿠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아들을 보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다만 이 시간도 잘 지나갈 것이라고, 외로움이 좋은 스승이 되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마음 맞는 지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때까지 몸과 마음을 튼튼히 키우는 데 힘써야지. 지금은 외로운 오리새끼 같지만 백조처럼 멋진 소년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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