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스푼 Dec 24. 2023

파리, 25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마음의 고향

70대 부모님과 40대 딸이 셋이서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다. 5박6일 여행이었다.


무얼 기대해야 할지 몰라서 준비하기 어려웠다. 아빠는 몸이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을 것을 두려워했다. 엄마는 유명 관광지를 찍듯이 도는 게 싫다며 에펠탑, 루브르, 베르사이유는 가지 말자고 했다. 미술관 박물관도 다 빼라고. 아니 도대체 파리에서 어딜 가란 말인가!


부모님은 80년대 초반에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던 우리 자매를 데리고 파리를 다녀온 적이 있다. 40년 만이니 내가 보기엔 파리 처음 가는 거랑 마찬가지인데, 당신들 생각에는 볼 건 다 보고 왔다고 여기시는 듯 했다. 그래서 컨셉을 잡아드렸다. "파리 여러 번 와 본 사람처럼 파리여행 시켜드리겠다"고.


파리 6구 생제르맹 데 프레 구역에서 묵었다. 파리에서 숙박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역이다. 6구는 영화나 문학작품을 통해서 상상하는 파리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소설가와 철학자, 화가들이 드나들었던 까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골목길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강 쪽으로 10분만 걸으면 퐁네프 다리가, 반대쪽으로 10분만 걸으면 뤽상부르 정원이 나온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센 강변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


미술관은 싫다고 하셨으나 그래도 파리인데 정말로 하나도 안 갈 수는 없었다. 파리의 3대 박물관인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중에서 딱 하나, 오르세 미술관을 골라서 한국인 미술사 선생님과 가이드투어를 했다. 오르세 가이드투어가 매우 성공적이었어서, 며칠 후에는 오랑주리와 로댕 미술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로댕 미술관을 또 다녀왔다. (오랑주리는 우리가 머무는 일정 동안 이미 입장권이 매진이었다.)


로댕미술관의 프랑스식 정원


그리고 또 뭘 했던가? 파리는 하염없이 걸어다녀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도시인데, 안타깝게도 11월의 날씨는 싸늘하고 비가 자주 왔다. 그래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숙소를 좋은 위치에 잡아서 낮에는 다시 한 번 호텔에 들어와 휴식 및 낮잠을 청하고 오후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낮에는 이렇게 쉬면서 다니시는 분들이 왜 아침에는 내가 늦잠을 자면 배가 고프다, 시간이 아깝다며 빨리 나가자고 성화셨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산책은 엄마랑 같이 퐁네프 다리를 건너 사마리탄 백화점에 갔다가,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 군밤장수에게 군밤을 사먹은 것이었다. 군밤 알이 굵고 실했다.


퐁네프 다리 건너 사마리탄 백화점


저녁마다 와인을 곁들여 가볍게 먹는 식사도 별미였다. 가족끼리는 서로의 식성과 식사량을 잘 아는데다가 모두가 한 주머니이기 때문에 눈치보지 않고 셋이서 적절하게 나눠먹을 만큼의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파리는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와인도 매우 저렴한데, 파리에서 마시면 취하지도 않는 것 같다.


파리에는 친한 친구 둘이 살고 있다. 한 명은 파리 소재 국제기구에서 십 년째 일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국내 방송국의 파리 특파원으로 나와 있다. 오랜만에 셋이 같이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역시 관광지를 조금 벗어나 현지인들이 고르는 레스토랑은 훨씬 맛있고 또 저렴하다. 이렇게 헤어지기 아쉬워서 마지막 날 한 친구와 다시 만나 커피를 마셨다.


어느 새 나는 미국 생활이 18년째고 다른 친구는 프랑스 생활이 십 년을 넘어간다. 긴긴 근황을 나누다가 내가 물었다.


"너는 파리 살아서 뭐가 제일 좋아?"

"음.... 이렇게 대답하면 웃기지만, 아침에 출근하는데 길에서 사람들이 불어로 얘기하는 거. 사람들이 불어로 얘기하는 걸 들을 때 아, 행복하다 생각해. 그러는 너는 미국 살아서 뭐가 제일 좋아?"

"나도 좀 웃긴데... 나는 미국이 넓어서 좋아. 싱가폴 살면서 그 생각을 많이 했어. 넒은 게 다 내 땅은 아니지만, 호연지기랄까? 넓어서 뚫리는 듯한 마음이 있어."


내가 처음 파리에 온 것은 1998년이었다. 부활절 무렵이었으니 아직 싸늘한 봄이었겠지. 프랑화를 쓰고 종이 지도를 들고 다니며 잠은 유스호스텔 단체 방에서 잤다. 아침은 호스텔에서 주는 조식부페를 든든히 먹고, 몰래 빵 한 조각이나 바나나 하나를 들고 나왔으며, 점심은 길거리에서 사먹거나 대충 굶었던 것 같다. 까페에서 커피까지는 마셔봤지만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거나 와인을 마시는 건 생각도 못 했다. 돈도 없었고 와인은 마셔본 적도 없었다.


두 번째 파리에 온 것은 2008년 5월이었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과 놀러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으로 호텔 예약하는 게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미국의 동네 도서관에서 프랑스 여행 책자를 뒤지다가 거기에서 적당히 위치 맞고 가격 맞는 호텔 이름을 찾아 팩스를 보내서 호텔을 예약했다. 별 세 개 또는 두 개짜리 호텔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 비하면 호텔방이 너무 작아 남편이 기겁을 했다. 요즘같은 벽걸이도 아닌 박스형 TV가 벽에 높이 달려 있었다. TV 놓을 자리가 없어서. 그 때 묵었던 호텔도 생제르맹 데 프레 구역에 있었다.


세 번째 여행은 2016년 8월이었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그 때 만으로 7살, 4살이던 아이들도 데려왔다. 이젠 형편이 폈고 씀씀이도 커져서 생제르맹 데 프레 구역의 자그마한 부티크 호텔에 서로 연결된 방 두 개를 잡았다. 호텔방의 꽃무늬 벽지에서부터 조식을 먹는 선룸 카페테리아까지 모든 것이 너무 예쁜 호텔이었다. 뤽상부르 공원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렸고, 에펠탑 옆 회전목마를 태웠다. 한여름의 더운 날씨에 시원한 노트르담 사원 안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딱딱한 나무의자에 누워 잠이 들었고, 그걸 다시 깨워 강 건너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까지 걸리니 뾰로통해졌다가, 그 옆의 까페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니 다시 얼굴이 밝아졌다.


2023년 11월의 이번 여행은 네 번째 파리행이었다. 겨울 파리는 안 와봤지만, 25년 동안 봄, 여름, 가을을 지나오니 어쩐지 한 바퀴 빙 돌아 마무리를 한 것 같다. 나도 참 파리를 좋아한다. 뭐가 제일 좋으냐면, 여기 오면 사람들이 불어로 얘기하는 게 제일 좋다. 불어는 내게 영원한 취미생활.


혼자서도 와 봤고, 동생하고, 남편하고, 아이들하고, 그리고 이제는 부모님까지 모시고 파리에 다녀갔다. 과연 여러 번 와본 사람처럼 부모님을 파리여행 시켜드렸다. 그런데 여행을 끝내고 보니 부모님은 당신들이 하시는 말씀을 믿지 말고 처음 와 본 사람처럼 파리여행 시켜드릴 걸 그랬다. 나는 괜찮다 손사래를 치셔도 에펠탑에 올라가고, 유람선을 타고, 개선문 앞에서 사진을 찍어 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헤밍웨이는 <파리는 언제나 축제>에서 젊은 시절 한때 파리에서 살아 보았다면, 그 경험은 남은 평생 축제의 기억으로 당신 곁에 머문다고 썼다. 안타깝게도 그 경험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파리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