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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Jan 19. 2024

둘째의 수학경시대회

부모는 같이 뛰려 하지 말라.

지난 3년 동안 띄엄띄엄 쓴 브런치 글들을 되돌아보면 첫째 관련해서는 '얘가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 둘째 관련해서는 '애가 똑똑하지만 뭘 하려고 들지 않는다'가 일관된 주제였다. 특히 둘째에 대해서는 언제나 동기부여를 고민해왔다. 가장 큰 두려움은 똑똑한 아이가 뭐든지 쉽게 잘하는 것에 익숙해서 끈질기게 노력하는 습관을 키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첫학기에 아이는 전과목에 95-98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 최우등생 명단(High Honor Roll)에 올랐다. 기쁘고 놀라웠다.


미국 학교는 한국에 비교하면 공부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공부를 잘해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잘 보면 성적은 문제없는 한국 학교에 비해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 때는 그랬었다), 미국 학교는 모든 출석과 수업준비와 숙제와 퀴즈와 프로젝트를 매일 매번 성적에 반영한다. 그래서 포인트를 긁어모으듯이 성적을 관리해야 한다. 공부도 잘해야 하지만 뭐 하나 놓치면 포인트가 깎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각 과목을 관리하며 학교를 다녀야 한다.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는 의지와 자기관리능력이 없다면 6학년 어린이에게는 쉽지 않다.


아이가 그 어려운 일을 부모 손 하나 타지 않고 다 해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이가 뭐든지 할 때마다 상당히 높은 기준을 갖고 자기 자신을 다그쳐가며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특하면서도 안스러웠다.


거기 더해 둘째는 이번에 Mathcounts라는 중학생 대상 수학경시대회에 학교팀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학교마다 4인1팀이 출전할 수 있는데 교내 경쟁에서 6학년으로는 유일하게 선발되었다. 우리 학교가 동양인이 많지 않아 수학 인재가 드물고 경쟁이 덜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부모가 권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매스클럽에 들어가 매주 연습하다가 선발시험까지 도전했다니 이번에도 기쁘고 놀라웠다.


아이가 좋은 결과를 갖고 왔을 때는 부모 손을 타지 않고 혼자서 이렇게 한다니 이 아이는 아무 걱정을 하지 않고 놔둬도 되겠구나 싶지만, 그런 느낌은 언제나 순간이다.


수학경시대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일주일에 한 번 학교 매스클럽에서 내주는 심화문제 종이쪼가리를 들여다보는 걸로는 부족하다. 미국 수학경시대회 준비의 정석과도 같은 AOPS (Art of Problem Solving) 시리즈를 공부해야 한다. Mathcounts는 학교 대표로 챕터 대회에 나가보겠지만, 학교 전력이 약하니 아마 올해는 거기서 끝일 것이다. 주 대회, 전국 대회까지 개인이든 팀이든 진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도전해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수학경시를 한다 하면 올해는 늦었지만, 내년 7학년에는 AMC 8 대회에 나가야 한다. 올해 여름방학은 수학적으로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좀 이른데, 2025년 여름방학에는 Mathpath 같은 한 달짜리 기숙형 수학캠프에 보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물론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까다로운 선발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은 그냥 알아서 하게 놔둬도 괜찮은데, 내년 이맘때까지 이렇게 헐렁하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올 봄, 늦어도 여름부터는 수학 선행과 심화학습을 동시에 하면서 맹렬히 뛰어야 하는데 본인이 과연 이런 현실을 알고 정신차려 공부할런지.


아이가 한 발짝 떼어놓으면 엄마 마음은 벌써 저 멀리 뛰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겪은 바로는 이 아이는 내 마음이 앞서가면 본인은 의욕을 잃는 것 같다. 브런치 글만 봐도 증거가 수두룩하다. 학교 수학우수반 숙제를 내가 관리, 감독하던 2021년 2월, 피아노 급수시험을 치르고 콩쿨대회에 나갔던 2021년 11월과 2022년 3월, 그리고 집에서 수학문제집을 풀리던 2023년 3월의 글을 보면 언제나 패턴이 똑같다.


아무 기대 없이 두면 아이가 뭔가 뾰족하게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 --> 그래서 생긴 기회를 그냥 보낼 순 없지, 내가 나서 관리하기 시작한다 (당연하다, 겨우 초3이다) --> 얼마 지나 아이는 그걸 더 이상 하기 싫어한다. 3학년 때도, 4학년 때도, 5학년 때도 그걸 반복했다. 아이가 끈기 없으니 부모가 더 확실하게 잡아 끌어야 하는가, 아니면 여러 번 겪었으니 이젠 아이에게 맡기고 부모는 정말로 관심을 끊어야 하는가.


아이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생각해보면 첫째도 6학년부터는 학교 일은 다 본인이 알아서 하고, 무엇에 열정, 시간, 관심을 쏟을지도 스스로 결정했다. 그런데 첫째는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다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둬도 괜찮았는데, 둘째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는 게 문제다. (최소한 학업적으로는 그렇다.) 아이에게 가능성이 있고, 시간과 기회는 유한하다는 생각에 내가 조바심이 나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확실한 것은, 내가 앞서가면 아이는 주인의식을 잃는다.


물론 옆에서 뒤에서 밀고끌고 다그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가 혼자 힘으로 끝없이 뻗어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앞서가지 않아도 아이는 좀 하다가 슬그머니 의욕을 잃고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가 열정적으로 개입할 경우 아이가 100% 의욕을 잃는데, 부모가 뒤에서 응원만 할 경우에는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계속 끌고 갈 확률이 50대 50이라면 부모는 뒤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잘 되든 안 되든 아이가 경험치라도 올릴 테니 말이다.


애를 빡세게 훈련시키면 상당한 성과를 보일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래도 이건 내 영역이 아니라고 과감히 놓아야 한다. 어떻게 그걸 아냐고? 내가 중학교 때 그런 아이였다. 공부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부모님과 선생님이 '너 같은 아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한다면 대단한 성과를 낼 수 있을 텐데'하고 안타까워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잘 되도 못 되도 내 성적, 내 인생인데 내가 도움을 청하기 전에 다들 나보다 앞서가서 다그치는 게 너무 싫어서 청개구리처럼 버팅기며 손을 놓곤 했다.


내 자식이 나랑 똑같은 아이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아이의 성취는 본인 몫으로 남겨두고 부모가 같이 뛰려 들지 말아야겠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하면 될 것 같은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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