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북클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ca Apr 25. 2023

단 하루의 찬란함이 낯설지 않도록

니콜라이 고골의 찬란한 <외투>


    

그리고 더 이상 뻬쩨르부르그에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누구의 보호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흔한 파리 한 마리조차 놓치지 않고 핀으로 꽂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자연 관측자의 관심마저 끌지 못했던 존재가 사라졌다. 동료 관리들의 조롱을 아무런 저항 없이 참아 내다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도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한 존재가 이제는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버렸다. 비록 생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이긴 했지만, 그에게도 외투의 모습을 빌린 인생의 소중한 순간이 찾아와 짧은 시간이나마 그의 고달픈 삶을 비춰 주기도 했고, 견딜 수 없는 불행이 엄습하기도 했다. 그 같은 불행이 닥칠 때면 황제도, 세상을 호령하는 통치자도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법이다.
<외투> p.94


우린 누군가의 외적인 모습으로 쉽게 그를 판단한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모습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과 이미 알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지식을 투영해 그의 내적인 모습도 외적인 것과 함께 저울대에 올린다. 비천하게 사는 사람의 외투가 허름하다고 비웃고, 새 외투는 어울리지 않는 과소비라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오랫동안 그들의 시선을 가볍게 웃어넘기고 내적인 충실함에 가치를 두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절별로 두세 벌의 옷을 번갈아 입고 다니다가 새로운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면 계절이 어느새 바뀐다. 소비적인 행동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며 스스로 대견해했다. 쏟아지는 트렌드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의 옷도 최대한 적게 샀다. 집에서만 옷을 입는 어린 시절엔 유난히 무릎이 잘 헤어지는 아들들의 내복을 천을 덧대서 수선해서 입혔고 지인들에게서 받은 옷도 많이 입혔다.  아이들은 새로운 옷이 생기면 이건 어떤 이모가 준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아서 양말을 자주 깁지만 형 옷만 입히던 막내에게 새 옷을 사 입히면 그 아이에게서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아이의 밝은 내적인 모습은 똑같지만 그 미소는 반짝인다. 그 뒷모습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고 왠지 뿌듯한 나의 마음속에선 알 수 없는 뭉클함이 걸어 다닌다. 낭만적 사실주의를 이끌었다고 전해지는 니콜라스 고골은 소설 속에서 아까끼가 새 외투를 상상하는 동안 "웬일인지 생기가 돌았"고 "때때로 눈에서 불꽃이 보였"으며 "뻔뻔스럽고 대담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라고 묘사한다.  지나친 걸까?


비천하고 냉대받는 삶을 살던 아까끼는 헌 외투를 고칠 수 없다는 재단사의 이야기를 듣고 늘 마시던 차를 끊고 단식까지 하면서 생활비를 아낀다. 국장이 예상보다 많이 지급한 보너스까지 모아 마침내 새 외투를 사고 그 옷을 입고 출근한 후 관리의 파티에 초대받는다. 초대받은 계장 대리의 집을 가는동안 마주친 동네는 자기가 살던 곳과는 다르게 사람도 많고 활기를 띠고 있었으며 깨끗하고 정돈된 마차와 가게가 즐비하다. 아까끼는 가게 안에 한쪽 다리를 드러낸 여자 그림을 보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미소 짓는다.


그의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저자는 밝히지 않는다. 다만 외투를 잃고 죽음에 이르며 고급 관리의 외투를 훔치는 유령이 되었다는 결말은 그의 마지막 소중했던 하루의 절실함을 짐작케 한다. 찬란함을 경험한 아까끼는 다시 찢어지고 구멍 난 외투를 고쳐달라고 사정하던 이전의 그로 돌아갈 수없다. 새 외투는 그의 삶을 짧게 끝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저자의 말처럼 황제도, 세상을 호령하던 통치자도 불행을 피해 갈 순 없다. 외투는 그의 불행한 죽음의 단서가 아니다. 외투를 비난하기보다는 좀 더 잦은 기쁨의 경험을 하지 못한 아까끼의 삶의 태도와 그를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든 경제적, 사회적인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가 최상의 옷감을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 파티에서 그와 그의 외투는 금세 외면받는 존재가 되었지만, 단 하루의 찬란한 하루는 그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주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고 에드 다이너가 말했다. 소시민도 자신을 위한 작은 사치로 예술도 자주 경험하고 아까끼처럼 소중히 모은 돈으로 적당한 가격의 외투를 사 입고 파티에 가는 삶을 꺼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찬란한 그 하루가 주어졌을 때 지나치게 낯설지 않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두 번째 이름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