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조사관에게 불복이란?
세무사 시험 준비를 할 때 '불복청구' 부분이 이해가 잘 안 됐던 기억이 있다. 수험서에서는 화살표를 그려가며 요래 요래 단계를 거친다고 그림을 그려놨지만 썩 와닿지 않아서 그냥 닥치고 외웠다. 조사국에서 불복 대응을 하다 보니 이제야 불복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과거의 나처럼 불복청구를 마냥 외우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끄적여본다.
불복청구란?
세법에 따른 처분으로서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을 받았거나 필요한 처분을 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권리나 이익을 침해당한 자(또는 대리인)는 그 처분을 취소 또는 변경을 청구하거나 필요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출처: 납세자 권익 24
쉽게 말해서 세금 고지서를 받았거나 경정청구를 했는데 거부당한 경우 억울하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일종의 소송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불복청구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
과세전적부심사
이의신청
심사청구
심판청구
실무적으로는 위 네 가지 중에서 심판청구를 가장 많이 하는데, 왜 그런지 살펴보겠다.
국세기본법에서는 100만 원 이상 고지서를 날리기 전에(고지서가 비행기도 아닌데 늘 고지서는 날린다고 한다) 과세예고통지를 하도록 되어 있다.(국기법 제81조의15)
과세예고통지를 받은 납세자가 과세에 동의할 수 없으면 30일 이내에 과세전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보통은 세무대리인을 선임해서 하는 편인데, 과세전적부심사 청구서를 서면으로 작성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없이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할 수는 없고, ‘사실관계가 이러하고 적용되는 법령과 유사 판례가 이러한데 이래저래 해서 처분이 부당하다'라고 쓰는데 세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직접 쓰기가 어렵다.
과세전적부심사청구가 접수되면 조사팀에서 그에 대한 답변서를 쓰고, 지방청 납보 또는 본청 납보에서 이를 가지고 국세심사위원회 심사를 개최한다. 위원은 국세청 내부인도 있고 외부인도 있어서 무조건 조사팀 편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과적에서 '인용'이 되면 납세자의 청구가 인용되었으니 과세가 되지 않고, '기각'이 되면 납세자의 청구가 기각되었으니 과세가 된다. 가끔 '재조사'가 나오기도 한다. 재조사 결정이 나면 다른 조사팀이 그 쟁점에 한해서 다시 조사를 한다.
과적에서 기각 결정이 나서 과세가 되면 납세자는 다음 단계로 이의신청/심사청구/심판청구 중에서 하나를 신청해서 불복청구를 계속할 수 있다.
그림에서는 이의신청 후에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를 할 수 있게 그려져 있는데 이의신청이 필수 단계는 아니어서 실무적으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심사청구는 국세청(또는 세무서)에 하거나 감사원에 할 수 있는데 감사원 심사청구도 본 적이 없고 심사청구도 본 적이 별로 없다.
심사청구는 국세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하는데, 아무래도 위원님들 다수가 국세청 사람들이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을 거라는 생각에 그래도 제3자인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실무적으로는 심판청구를 가장 많이 한다. 몇 천억짜리 과세부터 몇 천만 원짜리 양도세까지 다양한 종류의 다툼이 조세심판원에 접수된다.
납세자가 심판청구서를 심판원에 접수하면 조사팀은 그에 대한 답변서를 써서 제출한다. 그걸 보고 납세자가 항변서를 제출하면 조사팀은 또 답변서를 쓴다. 그렇게 몇 차례 의견서가 오가고 나면 심판원에서 심판관 회의를 개최해서 납세자와 조사팀의 의견진술을 듣고 최종 결론을 내리는데, 시간이 꽤나 소요된다. 분명 국기법에서는 90일 이내에 결정하여야 한다고 되어있으나 실제는 2년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금액이 큰 사건일수록 그렇다.) 심판원에 근무 중인 사무관님 말로는 조세심판원은 양들이 뛰어노는 평온한 들판 분위기인데 양들이 몇 천마리라고 하는데, 그만큼 사건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심판청구에서 '인용'결정이 되면 과세를 취소해달라는 납세자의 청구가 인용되었으니 과세가 취소된다.
'기각' 결정은 국세청이 이겼으니 과세가 유지된다. 이 경우 납세자는 다음 단계로 행정소송을 90일 이내에 신청할 수 있다.
'재조사'도 자주 나오는 결정인데, 사실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재조사하라는 주문부터, 일부분만 다시 재조사하라는 주문까지 다양하다. 원래 조사팀이 아닌 다른 조사팀에서 재조사를 하게 되는데, 주문 성격에 따라 과세 일부를 취소하기도 하고, '당초 정당'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심사청구나 심판청구에서 납세자가 진 경우('기각') 납세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행정소송부터는 조사팀이 아니라 지방청 송무국에서 업무를 담당한다. 행정소송에서 납세자가 이긴 경우 처분청에서 항고해서 2심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납세자가 진 경우 납세자가 항고해서 2심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2심은 고등법원, 3심은 대법원에서 진행된다.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어서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해서 과세를 취소하라고 조사팀으로 공문이 오는데 귀속연도가 2012년인 경우도 있었다. 심판청구→1심→2심→3심까지 거의 10년이 걸린 셈이다.
22.7.22 하반기 국세행정운영방안 발표 시 직원별 패소율을 산출해 과세품질 상위자에 대해 표창을 수여하고 전보 우대나 상여금 가산 등의 혜택을 주는 대신 하위자에 대해선 특별승진이나 표창을 제한하고 상여금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내부 반발이 거세지자 보완방안을 마련한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관련기사: 국세청 "정당한 과세 과정서 패소한 직원 불이익 없다"… 기존 상여금 삭감 입장 선회)
지금도 과세품질 하위자에 대해서는 본지방청 전입 제한이라든지 불이익이 있다. 다만 과세하기 전에 과세사실판단위원회 등에서 과세 적정으로 판단받은 사항에 대해서는 불이익이 없다. 그러나, 길지 않은 조사기간 내에 각종 위원회에 회부해서 판단을 받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서 어찌어찌하다 보면 위원회에 상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그렇게 과세된 사건이 나중에 패소했는데 공교롭게도 승진할 타이밍이거나 본지방청 전입해야 할 타이밍에 걸리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사실 패소하려고 과세하는 국세조사관은 없다. 법령과 기존 판례, 예규 등을 고려해서 과세논리를 세우고 과세를 하는데 금액이 크면 클수록 그냥 넘어가는 납세자가 없다. 납세자 입장에서도 불복청구를 하게 되면 세무대리인에게 고액의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데, 불복청구를 해서 승소함으로써 아낄 수 있는 세금과 수수료를 비교해보고 불복청구를 진행할 것이다.
특히 외국법인에 대한 과세가 많은 국제거래조사국에는 고액 불복청구가 많다. 금액도 크거니와, 외국법인 입장에선 본사로부터 문책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또는 본사가 외국납부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한국에서 어쩔 수 없이 낸 세금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불복청구를 하기도 한다.
불복이 진행되면 답변서를 쓰는 일이 큰 부담이다. 기존에 진행되고 있는 조사도 있는데 답변서는 답변서대로 써야 하니 낮에는 조사를 하고 밤에는 답변서를 쓰는 일이 부지기수다. 조사가 끝나고 몇 달, 몇 년이 지나서 답변서를 쓰려니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혹은 당시에 조사를 했던 조사관이 퇴직해서 같은 팀이었던 조사관이 이어서 답변서를 쓰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난감하다.
불복에 대한 부담이 커서 어지간하면 불복은 피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과세논리로 과세를 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국부유출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과세를 포기할 수 없어 뻔히 보이는 가시밭길을 아얏 아얏하면서 걷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