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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판위의수도사 Mar 03. 2023

자판 위의 수도사

브런치를 시작하며

변호사로 출발했다. 공부하고 연수받던 때, 판사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이 의아했다. 난 아직 모든 게 불확실한데 너흰 어떻게 남을 판단하겠다는 거니. 사람들은 너의 판단을 받고 싶을까. 너무 건방진 거 아니니. 난 오만한 자리에 가지 않을 거야. 더 낮은 곳에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할 거야. 그런 마음으로 변호사가 되었다.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뿐 그들은 이미 자격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설프게 판단하며 스스로를 겸손하다고 여겼었다.


변호사가 되어 썼던 글들은 큰 틀에서 비슷했다. 의뢰인에게 돈을 받고 1명의 독자(=판사님)에게 상대방이 나쁘다고 설득하는 작업이다. 의뢰인에 대한 애정, 정의를 향한 사명감, 그리고 수임료로 받은 돈이 원동력이 되었지만, 끊임없이 비난받고 비난하며, 독자가 이해하는지 어떤지 알 수도 없는 글을 쓰는 일은 몹시 답답했다.


가끔씩 신문에 에세이를 썼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솔직해지려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변호사가 본업이었던 까닭에 나의 상품가치를 홍보하고자 하는 욕망을 겨우겨우 눌렀다. 때로는 내가 쓴 글은, 나라는 씨앗이 죽어서 싹튼 새싹이 아니라 내 손에 든 명품가방 같이 느껴졌다. 아쉬웠다.


그러자 출간작가들, 책을 내겠다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아를 죽여서 탄생한 생명 같은 책은 부러웠고, 가르치고 과시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책은 면역반응이 올라왔다. 나는 앞에서 떠드는 사람보다는 조용히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했지만, 실은 책을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변호사생활을 접고 회사에 들어가니 글 쓸 일이 없어졌다. 깊은 생각은 미뤄두고 일상의 대화로 채웠다. 변호사시절 비탄과 원망을 들으며 너덜너덜해졌던 나의 귀와 마음은 회사를 다니며 조금은 회복되었다. 물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회사에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제 다시 고독한 곳으로 왔다. 그리고 나의 생각창고에는 나의 이야기에 더해서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많은 사람들의 삶이 포도송이처럼 들어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자판 위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빚으려 한다. 내 글이 슬픔과 권태로 힘들어하는 독자에게 포도주 한 모금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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