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에디토 Nov 18. 2020

시작의 기억들_#01

그때의 스타트 라인에 건배


맞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동안은 과연 잘 한 선택일까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4년 동안이나 공부한 것을 뒤로하고, 그것도 전공과는 갈 길이 너무나도 다른 패션 디자인을 시작해 보겠다고 마음을 정한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무모함은 어떨 때는 큰 용기를 주기도 한다는 걸 난 아마도 그때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일단 한번 해보는 거지 뭐, 안되면 그건 그때 생각하면....."


그때의 그 자신감은 뭐였을까?

지금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쿨했고 당찼으며, 그런 내가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에 지치고 다쳐서 어딘가 마음을 위로할 만한 창의적이면서도 약간은 감성적인 무엇이 하고 싶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취미로 시작해본 패션 일러스트가 어쩌면 그리 신기하게도 잘 맞았는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이었어...!!"


돌이켜보니 우연히 발견한 나의 취향의 발견, 그것이 시작이었다.






맞다.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낭만적인 직업, 제일 멋있는 작업이라는 생각, 나랑 너무 잘 맞는 일이라는 자기 최면.

이렇게 패션 디자인 공부를 하는 2년의 시간이 나를 행복하게, 그리고 나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밤을 새우며 디자인을 하고, 디자인 수업을 듣고, 옷을 직접 만들고 이런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그냥 좋기만 했던 때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니 이미 24살, 다시 패션 디자인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하면 27살이 되는 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나이가...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없진 않았다.



디자인을 하면서 "잘한다, 진짜 예쁘다"라는 말을 적잖이 듣게 되면서 아마도 나의 자존심과 콧대가 알 수 없게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티스틱 한 감성을 흠뻑 지닌 내가 되는 것 같아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해 주는 것 같아 위안과 안심이 되기도 했다.


늘 머릿속을 지진 나게 만들었던 화학 공식을 4년 내내 외우고 다녔던 내게, 디자인이라는 세계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어쩌면 나의 숙명이라고, 그렇게 뭐든 멋지게 멋지게 생각하던 시기였다.






맞다.

현실은 늘 상상을 뛰어넘는다.

현실은 현실일 뿐 드라마나 영화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은 거다.


.

.

.


맞다.

꿈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

현실이다, 이게.


.

.

.


나이가 너무 많은 막내 디자이너.

그것이 나의 첫 직장에서의 내가 느낀 내 모습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부터 머리가 복잡해졌다.





_magazine  

나를 닮은 디자이너  //  D.EDITTO. 2020.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