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시트콤 드라마"에 출연 중입니다만...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은 잘 나질 않는다.
가끔 엄마는 누군가를 만나고 오신 날이면 노란색 얇은 종이 위에 붉은 한자 글씨가 적힌 것들을 주셨다.
"이건 지갑에 넣고 다녀라.
요건 베개 밑에 두고 자야 해... 이건 차 속에..."
이렇게 한 번에 두서너 가지, 조그맣고 네모난 종이들이 깨끗이 잘 접힌 그것들을 고운 손으로 쥐여주시곤 했다.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얘기하시면서, 나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너는 시집을 늦게 간단다, 일에 미쳐서..
얘,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쫌...."
이어지는 엄마의 잔소리는 늘 함께 오는 덤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가끔 누군가와 상담을 하러 가는 정도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큰 지출도 때로는 필요한 비싼 상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디자이너들은 이상하게도 유독 용하고 미래까지도 잘 맞춘다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도 알고 있었다.
"용하다는 이 사람은 우리가 꼭~!! 한 번은.. 만나봐야 되지 않겠니?"
주로 이런 대화들로 웃고 떠들며 잠깐의 쉬는 시간에 이런저런 수다들을 떨곤 했다.
바쁜 토요일, 오전 근무를 끝내고 갤러리아 백화점 근처의 어느 한적한,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그런 카페를 수소문해서 용하다는 그분들을 만나러 다녔던 그런 날들이 기억난다.
한 명이 먼저 상담을 하면 그 옆에 앉아서 친구의 과거나 미래의 이야기들을 듣고서
"어떡해... 진짜?"
"그 미친 XXX, 나쁜 놈"
을 연발하며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그녀의 안타까운 미래의 연애사를 걱정하기도 했다.
딱히 족집게 같은 느낌도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없었는데, 무슨 연중행사를 하듯이 지금쯤이면 한번 볼 때라며 서로의 스케줄을 물으며 약속을 잡아놓곤 했었다.
5년 차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 즈음이던가, 기억에 남는 이런저런 일들이 떠오른다.
나랑 동갑이지만 연차는 4년 정도 더 많던 디자인실 팀장이 회사의 방침이 마음에 안 든다며 계속 툴툴거리더니 화끈하게도 그다음 날부터 출근을 안 하는 대찬 행동을 해버린 것이다.
워낙 이직이 많고 비슷한 회사 간의 스카우트 제안도 꽤 많은 직업이라 그날 당일은 여러 사람에게 멘붕이 오긴 했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업무는 바쁘게 돌아갔고 할 일은 늘 태산이었다.
그러면서 1~2주 후쯤이던가 디자인실에서 나이가 제일 많던 나에게 팀장급의 직함이 "뚝!!" 떨어졌다.
생각해보지도 않은 일이었다.
같은 디자인실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막내 디자이너로 시작해서 30살이 되던 해에 내게 주어진, 처음 갖게 되는 직함이었다.
디자인실에는 내가 막내 때부터 같이 일한 디자이너 선배, 그러니까 나보다는 나이가 적지만 연차는 2년 정도가 많은 디자이너가 한 명 더 있었다. 아마도 회사에서는 디자인실의 평화를 원했던 것 같다. 나이가 좀 더 있는 내가, 그래도 어린 디자이너들을 컨트롤하며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기대가 되기도 하면서 하면서 좋기도 하고, 부담 또한 온몸으로 느껴졌다.
회사는 엄청나게 성장해서 여성복 캐주얼 부문에서는 이미 매출이 상당했고, 디자인실의 식구들도 많아져서 9명의 디자이너가 바글바글 일하고 있는 나름 잘 나가는 브랜드의 디자인실이었다.
일도 많고 스트레스는 더 많은 나날들의 시작이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라며 바라던 일이 너무 빨리 온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긴장이 많이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 날 찾게 된 곳은 아주 용한 자가 있다는 그곳이었다.
매번 같이 가는 동료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그날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도 않고 혼자 찾아갔다. 별로 나의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가 않았던 것 같다.
한적한 상가, 어둑한 가정집이었는데 예약을 하고도 일주일 정도를 기다렸다. 아침에만 상담을 한다는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 인사를 하고 앉아 있었는데 내 앞에서 쌀 한 움큼을 집어 상에 툭 ~ 가볍게 던졌던 것이 전부이다.
"너는.... 무슨 일을 하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게 예쁜가 저게 예쁜가 보고 다니냐.
깃발이 흔들흔들, 해외에 가서도 백화점 같은 데서 이 컬러가 예쁜지 저 컬러가 예쁜지, 옷만 보고 다니면서 만지고 또 만지고... 이리저리 참 잘도 다닌다."
그분의 첫마디가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에도 너무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때는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여태까지 헛일을 하고 살았던 건 아닌 것 같은 위안감이 들었던 것 같다.
잘 되고 잘 안되고 가 별로 중요하진 않게 느껴지면서 내가 그래도 내 갈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건가 보다는 생각에 작은 위로를 받았다.
위로는 위로이고 현실은 현실이고, 똑같은 일 폭탄이 늘 기다리고 있는 매일매일이었다.
어느 날, 동료이면서 제일 친한 디자이너와 시장조사를 마치고는 그냥 눈에 보이는 간판을 보고 덥석 들어간 한 집.
우리는 또 처음 보는 어떤 아주머니 한 분과 이야기 중이었다.
"너는... 차는 최고급 세단인데, 가는 길이... 울퉁불퉁 이여.
고속도로를 달려야 되는데 그런 길을 달리고 있으니 지치냐 안 지치냐...."
그날은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맞는 듯, 안 맞는 듯 자꾸 나의 현실에 이미 울퉁불퉁한 길을 대입시키고 있었다.
"아... 고속도로...."
모르겠다, 아직도...
내가 달렸던 길들이 어떤 길이었는지.
모두 한때의 웃기는 기억들, 짧은 필름처럼 남아있다.
"인생은 우리 모두가 찍고 있는 한 편의 긴 시트콤 드라마"라고 늘 생각해왔다.
가까이서 보면 약간은 슬프지만 멀리서 보면 웃픈, 그래서 허탈한 드라마라고.
어쩌면 조금은 긴 시트콤 드라마.
약간은 덤덤하고, 약간은 슬프기도 하고, 약간은 기쁘고 행복한, 그래서 여전히 작은 기대도 되는...
그런 "긴 장편 해피엔딩 시트콤"을 꿈꾸며...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계속 찍고 있나 보다.
*cover image : 자살 토끼_The book of Bunny Suicides by Andy Riley 중에서
_magazine
나를 닮은 디자이너 // D.EDITTO.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