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옹, 애옹…. "
불현듯 들리는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고 작지만 점점 또렷하게 들리는 소리 쪽으로 집중해 발길을 옮기니 바로 옆 물이 흐르는 도랑 끝쪽에서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
"야옹, 야옹!"
새끼 고양이었다. 살아 있는.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출근 후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을 좀 일찍 먹은 우리는 날이 좋아 잠시 산책을 하다가 돌아가고 있었다. 갈 때만 해도 조용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녀석을 본 순간,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산과 들로 둘러싸인 마을이라 길고양이는 워낙 많았지만, 녀석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돌로 된 가파른 벽을 오르려고 애쓰고 있었다. 작은 두 손과 발로는 몸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웠는지 자꾸만 다시 떨어졌고 아래 있는 도깨비풀 때문에 온몸이 이미 바늘 투성이었다.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는, 1미터보다 조금 더 높아 보이는 돌담을 그냥 내려가자니 우리도 위험했고, 다른 길을 찾자니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떡해, 쟤 어떡해."
발을 동동 구르며 우리가 옆쪽으로 자리를 조금 옮기자 녀석도 우리를 발견한 건지 우리가 옮긴 자리 쪽으로 필사적으로 따라오며 다시 돌담을 오르려고 안간힘이었다. 그러다가 또 아래 있는 도깨비풀에 떨어져 구르기를 몇 차례. 그 옆은 바로 물이 흐르고 있었고, 비라도 온다면 물이 차올라 그대로 잠기거나, 잘못 떨어져 물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밑으로 내려가기에는 위험해 보여 위에서 손만 뻗어 녀석을 잡아 올리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언덕이 높았는지 아래까지 닿지 않았다. 우리의 노력을 알았는지 녀석은 다시 한번 돌언덕을 오르려 발버둥 쳤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낸 건지 중간쯤까지 올라온 순간 옆에 있던 주은쌤이 그대로 녀석을 잡아 위로 건져냈다. 건져 올린 녀석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눈이 빨개진 채로 퉁퉁 부어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눈에서는 고름이 흘렀다. 온몸은 도깨비풀에 구른 후 붙은 가시가 수없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쩔 도리가 없던 우리는 고양이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녀석은 다시 그 도랑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조금만 더 간다면 다시 굴러 떨어질 것 같아 급하게 녀석을 다시 들어 올렸다. 도랑 옆은 바로 차도였다. 애를 다시 보니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을 대체 어떡하지? 그때 산책을 하던 다른 부서 과장님과 계장님이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오셨다.
"어제 여기 지나가는데 얘랑 비슷한 애가 차에 치여 죽어 있더라고."
비슷한 애는 이 녀석의 형제였을까? 엄마가 주위에 있었다면 죽은 아이가 그렇게 쉽게 사람 눈에 띄었을까? 이 아이 역시 오랫동안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방치됐던 것처럼 상태가 엉망이었다.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이 애의 엄마도 사고로 죽었거나 애가 아파 버렸거나.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 어떤 결단이든 내려야 했지만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도저히 이곳에 녀석을 다시 두고 갈 수 없었다. 나는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녀석을 감쌌다. 얘를 데리고 일단 사무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카디건 안에서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울어대는 녀석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얘를 살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