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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고양이 Nov 15. 2024

02. 0.6kg

사무실에 녀석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당황했는지 녀석은 계속 큰 소리로 울어댔고, 온 사무실을 돌아다니게 할 수 없어서 일단 큰 박스에 애를 넣어 놨다. 하지만 녀석은 밖으로 나오려고 박스를 긁어댔고 작은 틈 사이로 얼굴을 집어넣고 난리였다. 그래도 이런 힘이 남이 있는 걸로 봐서는 금방 죽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일단 병원에 데려가는 게 급했다. 도깨비풀에서 떨어진 가시들이 온몸에 박혀 있어 너무 아플 것 같기도 했고. 


휴가가 너무 조금 남아 고민이 됐다. 오늘 반차를 쓰면 12월에는 온전한 휴가를 쓸 수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 병원 가자."



결국 나와 주은쌤은 나란히 반차를 냈고 어렵사리 상황을 말씀드린 후 녀석이 든 A4 박스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동물병원으로 향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지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구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구조를 하기는 했지만 이제부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도 이런 애를 구조한 적이 있어. 걔도 아파서 병원비만 100만 원 넘게 들었는데 결국 죽었어..."



녀석을 구조해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계장님이 했던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돌았다. 



"우리 제대로 사고 친 것 같다...."



세상에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녀석을 살려야겠다는 마음과 의지는 있었지만, 그 이후에 발생할 일들은 생각보다 많은 돈과 시간, 노력,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나는 차가 없어 주은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병원을 데려가기 위해 사무실에 있는 A4 박스에 녀석을 넣어 이동했다.



병원에 도착한 녀석은 먼저 몸무게부터 쟀다. 체중계에 올려놓는 순간, 우리 집 고양이 열매가 맨 처음 갔던 동물병원에서 담요에 덮인 채 몸무게를 재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없이 병원을 드나들었던 것 같다. 



"0.6kg네요."



녀석의 몸무게는 1kg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게를 잴 수조차 없는 커다란 돌덩이가 가슴으로 떨어진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안을 제안해 주셨다. 당장 필요한 처치만 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법, 아니면 수용 가능한 보호소나 센터에 보내는 방법, 임시보호를 하다가 상태가 호전되면 입양을 보내는 방법 등이었다. 선택은 오로지 구조자의 몫이었다. 어떤 결정을 하든 구조자의 상황이나 가능한 경제적 여건 안에서 선택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설사 그 이상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선생님은 다른 구조된 고양이 사례를 사진과 함께 보여 주셨다. 교통사고로 다리 4개 중 3개가 갈렸고,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심하면 절단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구조된 새끼 고양이었다.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스럽게도 구조자는 결국 그 아이를 끝까지 품기로 결심했고, 지금은 세 다리 모두 기적적으로 완치되어 건강하게 잘 지낸다고 했다. 그 아이는 오늘 구조한 녀석보다 심하면 심했지, 더 나은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이 녀석도 정확하게는 정밀검사가 필요하겠지만, 외관상으로는 그랬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는 중에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고 선택의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병원에서는 임시보호나 입원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당장 애를 보호소나 센터에 보내더라도 가능한 곳을 알아보기 전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전체적인 검사는 하지 않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상태로 봐서는 치료가 필요했기에, 항생제와 소염제 주사를 놓았고 허피스 바이러스로 보이는 아이의 눈과 기관지를 낫게 하기 위해 안약과 가루약을 처방받았다.


약봉지에는 "길냥이"라는 텍스트가 찍혀 있었다. 이름도 없는 아이의 약봉지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열매 생각이 났다. 열매도 계속되는 구토와 설사 증세로 오랫동안 약을 복용 중이었다. 적게는 1-2주에 한번, 많게는 매주 병원을 갔고,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약값은 상당했다. 최근 들어 증세가 더 잦아져 조만간 종합검사를 받아볼 예정이었다.


열매와 길냥이.

그렇게 아픈 아이가 둘이 되었다.


내가 과연 이다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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