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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고양이 Nov 26. 2024

03. 모텔에서 첫날밤을

다음 문제는 오늘 당장 아이를 임시보호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을 같이 구조했던 주은쌤과 민주쌤 모두 집에 아픈 고양이를 데려가는 건 불가능했다. 주은쌤 집에는 이미 키우고 있는 강아지가 있는데다, 낮에는 내내 집이 비어 있어 아픈 녀석을 케어하는 게 어려웠고 민주쌤 역시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쉽지 않았기에 일단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우리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병원을 갈 때는 주은쌤 차를 탔지만, 집에 가려면 광역버스를 타야 했다. A4 박스에 녀석을 들고 이동하는 것이 불안해 일단 주은쌤 집에 들러 이동 가능할 만한 케이지를 찾아봤다. 하지만 당근으로 팔았던 건지 없는 것 같아서 담요만 하나 얻어 박스 안에 깔아주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긴장이 됐다. 거의 만석인 버스 안에서 혹시 아까처럼 애가 크게 울어댄다면 다른 승객들에게도 민폐였고 탑승을 거부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이 무상하게도, 녀석은 버스를 타고 오는 50분 내내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혹시라도 애가 잘못됐는지 걱정이 됐지만, 바로 옆에 승객이 앉아있어 박스 뚜껑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흔들리는 버스 진동에 아이가 조금이라도 힘들지 않도록 박스를 품에 꽉 끌어안는 것뿐이었다.


주은쌤 집에서 얻은 담요로 녀석을 덮어준 뒤 박스를 꽉 끌어안고 버스에 올랐다.


퇴근시간쯤 도착한 잠실역 환승센터에는 여기저기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일단 집으로 가야 했지만, 나에게는 더 큰 산이 남아 있었다. 부모님의 허락.


갑자기 길냥이를 집에 데려간다고 하면 보나 마나 안 된다고 할 텐데,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한담. 떨리는 마음으로 한참을 망설이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예상보다 더 격렬한 말들이 귓가를 때렸고 전화기 너머로 절대 안 된다는 아빠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10년 전 열매를 집에 데려갔던 날처럼 그냥 무작정 애를 데리고 들어갈 걸 그랬나. 너무도 완강한 반응에 일단 전화를 끊었지만,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어 잠시 뒤 한 번 더 전화를 걸어 단 하루이틀이라도 임보처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집에 이미 아픈 열매도 있는데 또 다른 아픈 아이를 데려오면 어떡하냐며, 지금 당장 돌아가서 구조한 곳에 애를 두고 오라는 말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으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니, 그럴 수 있을 만큼 애가 건강해 보였다면 아예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버스에서 내렸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당장 갈 곳이 없었다.



급하게 숙박 가능한 근처 모텔을 찾았다. 대실을 해야 할지, 숙박을 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숙박을 한다고 해도 당장 내일이 문제였다. 오늘 안에 임보처를 찾아서 아이를 맡기지 못한다면, 내일 다시 얘를 데리고 출근을 해야 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일단 숙박으로 예약한 모텔에 도착한 뒤 아이 상태부터 살폈다. 약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 이동 시간에 탈진을 한 건지 몸이 축 늘어져 있었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급하게 근처 다이소에 가서 반려동물 코너에 있는 물품들을 쓸어 담았다. 침대용 쿠션, 배변패드, 츄르, 습식 간식, 고양이용 우유, 식기, 화장실 모래, 케이지 할 만한 것 등등.... 그러다가 나 역시 갑작스러운 외박이라는 걸 깨달았다. 추가로 속옷, 양말, 로션, 화장품을 넣다 보니 금세 카트가 가득 찼다. 누가 보면 이사 가는 줄 알겠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본 녀석은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고, 눈 상태도 좋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고름을 화장솜으로 닦아주고 안약을 넣었다. 약부터 먹여야겠다 싶어서 츄르에 약을 타서 입에 갖다 댔다. 하지만 반응이 없어서 입가에 묻혀 주었지만 빨아먹지도 않았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손가락에 물을 묻혀 입가에 묻혀 주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뭐라도 먹어야 기운을 차릴 텐데 아무것도 먹지 않는 녀석에 애가 탔다.


구조 당일 저녁. 눈이 전체적으로 빨갛고 가끔씩 눈물과 고름이 섞여 흘렀다.


일단 다시 담요를 덮어준 뒤, 들어올 때 사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어떻게든 오늘이 가기 전에 며칠이라도 있을 곳을 구해서 녀석을 옮겨야 했다. 자취하는 친구, 결혼한 친구, 1년 만에 연락하는 친구(친구야 미안해), 같이 운동하는 체육관 사람들, 사돈의 팔촌까지(물론 진짜 사돈의 팔촌은 아니다) 백방으로 연락을 넣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비슷했다.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없어서, 집에 강아지가 있어서 등등.... 다들 각자의 사정으로 당장 하루이틀이라도 임보가 어려웠다. 우리 집 역시 마찬가지였고.


지인 찬스가 어렵겠다 판단한 나는, 단기 임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1주일 임대, 한 달 임대, 정 안 되면 월세라도 계약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알아보다 보니,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었고,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던 나는 당장 입실이 가능한 고시텔이라도 알아보려 24시간 응대가 가능한 곳에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반려동물은 같이 입실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려왔다.


다시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2시를 지나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 오늘 어디론가 다시 이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 내일은? 모텔 연박을 해야 하나? 휴가를 더 쓸 수도 없는데. 그럼 얘를 데리고 다시 출근을 했다가 내일 밤에는 다른 모텔로 가야 하나? 그러면 또 그다음 날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지나 도달한 끝은 모두 같았다. 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천사처럼 자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더 마음이 아팠다.


살면서 처음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내 집이 있었더라면, 아무 고민 없이 녀석을 안전하게 집에 둘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무력감이 덮쳐왔다.


녀석을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해 주고 싶어 구조했는데, 처음으로 아이를 데려온 곳은 담배 냄새나는 모텔이었고, 나는 결국 거기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무력감, 허탈감, 막막함과 온갖 두려운 감정들이 뒤섞여 눈물이 쏟아졌다. 딱 여기까지가 내 능력이었고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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