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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Nov 20. 2024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라는 거짓말

매일 아이 공부 봐주며 친자 확인 중

오늘도 아이 학원 숙제를 채점하며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도대체 왜 이 문제를 틀리는 거지?

어머, 중간에 왜 이 한 문제는 빠트리고 안 풀고 넘어간 거야?

360-296이 74라고? 왜 이런 쉬운 뺄셈도 틀리게 계산하지?

지름을 구하라는 걸 반지름 값을 써놨네..

받아 올림을 안 해서 또 계산을 틀렸네..

숫자를 대충 써서 계산과정에서 자기가 쓴 수를 잘못 보고 답을 틀리다니...

모두 몇 개인가를 물었는데 들어갈 수를 다 나열해 놨군...

이런 쉬운 문제도 못 풀겠다고 별표를 해놨네..


아이의 수학 학원 숙제 몇 페이지를 채점하면서

이렇게 여러 의문이 생기고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나도 어렸을 때 수학을 안 좋아하긴 했지만 초등학교 3학년때는 이러진 않았는데 나보다 훨씬 수학을 못하다니.. 덜렁대고 사칙연산 실수가 잦다니.. 나보다 자식이 더 나았으면 하는데 나보다 못하는 거 같아서 마음이 초조해지고 속상한 마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화가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다.


사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나는 몇 년 전까지 교사로 근무했었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내 자식 교육 정도는 내가 거뜬히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오히려 더 어렵고 내가 가르칠수록 아이에게 거는 기대감만큼이나 아이를 주눅 들게 하는 거 같았다. 그래서 작년부터 수학학원에 이른 나이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학학원에서 매일 일정 분량의 숙제를 내주고 엄마가 채점을 해 오게 하고 거기다가 오답을 다시 풀어오게 하는 것이다. 즉 엄마가 채점과 틀린 문제 푸는 것은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는 것.


아이가 풀고 난 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문제집을 채점할 때마다 빨간색 비가 내릴 때는 후~~ 한숨이 나고 답답해졌다. 엄마가 채점 안 하는 학원, 숙제 없는 학원은 없나? 이런 푸념을 하면서 채점을 하곤 한다. 사칙연산을 자꾸 틀리는 건 아이의 집중력이 약하고 덜렁거리는 문제인 건지 뭐가 문제일까를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채점을 다 하고 아이를 불러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게 하고,, 문제를 제대로 안 읽어 틀린 문제나 사칙 연산 실수를 한 것은 정신 집중해야 한다며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아이는 자기가 틀린 것에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내 눈치를 보며 엄마가 얼마나 화낼까를 힐긋힐긋 보는데 그게 더 화가 나기도 하고.. 내가 왜 자꾸 틀리냐고 잔소리를 많이 해서 얘가 이런 걸까.. 아니면 그냥 아이가 눈치 보는 성향인 걸까? 그 와중에 궁금하기도 하다..

우스갯소리로 자기 자녀를 가르치면 언제나 친자확인을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건 자식에게 객관적일 수가 없고,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겨서 가르치다가 화를 내게 된다는 말이다. 화가 나면 자기 자식이라는 뜻.

난 오늘도 수학 숙제를 채점하다가 친자확인을 했다.

갓 태어났을 때는 눈, 코, 입 다 제대로 태어나고 그냥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 해도 감사했고, 엄마 아빠는 다른 욕심 없고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 라며 기도했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건강하게 잘 자라 엄마 아빠의 기도를 잘 들어준 착한 딸에게 수학 숙제 오답이 왜 이리 많을까 하면서 화가 끓어오른다. 어떤 땐 너는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해? 이런 쉬운 문제도 틀리면 어떡하니라고 야단을 치며 아이를 주눅 들 게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 방에 가서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새근새근 잠든 아이 얼굴에서 애기 때 얼굴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빌었는데 엄마는 거짓말쟁이구나! 낮버밤반의 전형이다.


나야말로 이제 진짜 다이어트한다고 해놓고

오늘만 먹자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맘만 먹으면 잘할 거 같은 일도 어려워서 매일 반성하고 다시 시작하고 그러는데 말이지..

내 아이도 아직 어린데 부족하면 계속 노력해서 잘하게 만들면 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데 나는 답답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큰 게 아니었나 반성해 본다. 그리고 한 번에 잘하기를 바라는 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르치다가 서로 사이 안 좋아질 거 같아서 학원 외주를 주었는데 그래도 숙제 채점의 늪은 피할 수가 없어서 매일 밤 번뇌에 드는 요즘..

나같이 자기 아이 가르치다가 앵그리버드가 되는 엄마 아빠가 나뿐만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그래도 아이가 잠든 밤, 내일은 좀 더 믿어주고 앞으론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좀 더 잘해보자고 너도 나도 그러자고 셀프격려해 본다.

아이 공부 봐주며 매일 도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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