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순미 Sep 23. 2024

백일홍 꽃밭에서

이번 주 이틀이나 백일홍 꽃밭에 갔다. 한동안  누워서 쉬고 싶던 시간이 지나가니 밖으로 나가고 싶다. 몸은 여전히 피곤하지만 나들이를 하면 누워 있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나가는 게 내 건강을 위해 좋을 것 같다.


강원도 평창에서 백일홍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계속 올라온다. 가고 싶지만 9월이 들어서도 계속되는 습도 머금은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니 몸이 더 무거워 외출을 하지 못했다. 예전보다 훨씬 간편해졌지만 가볍게라도 해야 할 일이 있고 손님은 치워야 하니 명절 연휴도 편하지 않다.  명절이 지나니  비까지 내렸다, 올해도 백일홍은 보지 못하겠구나, 생각했었다. 햇살이 보이던 날 아침, 남편이 백일홍 축제를 가잖다. 따라나섰다. 강원도 평창의 평창강변에 백일홍이 가득하다. 전날 많은 비가 내렸음에도 백일홍은 줄기를 굽히지 않았고 절정을 맞은 듯이 활짝 피어있다. 빨간 꽃잎으로 활짝 웃으며 핀 꽃이 평창강 둔치를 가득 메우고 있다, 꽃길을 걸으며 행복하다. 스미트 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꽃길을 걷다 보니, 백일홍이 이렇게 예쁜 꽃이었나 싶다.


이미 몇 십 년이 지나버린 어린 시절, 고향집 화단에 백일홍이 있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임에도, 우리 것은 촌스럽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도시에 대란 동경이었는지  외국에 대한 동경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름도 외우기 힘든 외래종 꽃이 더 예쁘게 느껴지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늘 보아온 흔한 재래종보다는  낯설어서 새롭게 보이는 외래종을 더 좋아하던 시절 말이다. 따지고 보면 백일홍도 원산지가 멕시코이나 외래종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향 마당에 있던 꽃이니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채송화, 복숭아, 접시꽃, 나팔꽃, 분꽃,  백일홍.... 고향 마당의 화단에 피던 꽃을 무시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이었지만 엄마는 화단을 잘 가꾸었다. 아니, 그냥 씨만 뿌리면 잘 자라는 줄 알았다. 그렇게 우리 집 마당 화단의 꽃들은 잘 자랐고, 계절 따라 꽃을 피웠다. 도시의 친구들 집에서처럼 새로운 꽃을 심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결혼을 하고, 셋방에서 아파트로 옮겨 다니다가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온 건 20년 전이다. 상가지역이 끝나는 부근의 집에는 마당이 없다. 없는 마당이지만 현관에서 길로 나가는 자투리 공간에 작은 화단을 만들고 화분을 놓았다. 지금 그곳에는 분꽃이 예쁘게 자란다.  


어느 날, 엄마가 있는 고향집에 갔다가 접시꽃과 분꽃 씨앗을 받아다가 화단에 뿌렸다. 그리고 해마다 다시 씨앗을 받아 화분에 뿌린다. 10년도 넘었다. 손바닥만 한 화단에 분꽃이 가득하다. 예쁘다. 비록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지고 말아 낮시간은 꽃을 볼 수 없지만, 내게 그 꽃은 엄마의 웃음으로 생각된다. 몇 해 피고 지던 접시꽃은 잠시 방심한 틈을 타 겨우 한 두 줄기가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간다. 올해는 한 줄기가 남아 몇 송이 피운 접시꽃에서 씨앗을 받아 뿌려 두었으니 내년에는 다시 피어나길 기다려 본다.


접시꽃과 분꽃은 아직 내 화단에서 자라고 있지만 백일홍은 없다. 몇 해전 누군가가 백일홍에 예브다고 했을 때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백일홍 꽃이 필 때면 이렇게 구경을 다닌다. 우리 고장에서 가을꽃 축제를 하고 그 주인공이 백일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도 따가운 햇살을 견디며 백일홍 꽃밭에 다녀왔다. 이틀을 연속해서 백일홍 꽃밭에 서는데, 꽃 잎을 활짝 펴고 빨갛게 핀 꽃이 참 예쁘다.


이건, 그리움일까? 엄마에 대한, 고향에 대한 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젊어서 들었던 대중가요를 아주 오랜만에 들었을 때 느끼는 향수처럼,  촌스런 옛날 꽃으로 생각했던 백일홍 꽃밭에 앉아 그 예쁨에 반해서, 또 엄마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백일홍 꽃밭을 찾아다니는 9월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9월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