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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혜정 May 17. 2024

잔치 국숫집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을 확률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나" 
자칭 '나 연구 학자', 본업은 16년 차 윤리 교사입니다.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글로 씁니다. 
이 글의 끝에는 [오글오글(오늘도 글을 쓰고, 오래오래 글을 씁니다) 질문]이 주어집니다. 
함께 쓰며 '나 공부' 같이 해요.




 



비 오는 날, 작은 기차역을 품은 잔치국수 집에서 인생 곡을 듣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인생 곡이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라면? 아마도 그 확률은 0에 수렴하지 않을까.




나는 무덥고 열정적인 날씨를 좋아해 동남아 여행을 즐긴다. 그리고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라이브 밴드가 있는 클럽에 가는 것이다. 자칭 록 덕후인 나는 EDM과 힙합이 판치는 카오산로드에서도, 꾸따의 줄지어선 라이브 클럽에서도, 은퇴한 노년의 주 무대인 끄라비와 라일레이에서도 용케 멋진 라이브 클럽을 찾아내곤 했다. 



이제는 구시대 유물 취급을 받는 록이지만 나도 유물이 되어가는 것인지, 언제 들어도 록 음악은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라이브 클럽에 가면 평소 마시지 않는 위스키를 언더록으로 마신다. 큼지막한 위스키 잔을 손에 들고 신나게 몸을 흔드노라면 잔 속의 얼음들도 신나서 달그락거리는 게 느껴진다.



자정이 넘어가면 라이브 클럽의 분위기는 절정을 향하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무대 앞으로 나가 함께 뛰논다.이때 양손을 높이 들어 올려 앞뒤로 크게 흔드는 건 기본값이다. 여기에 조금 더하자면 기타 리프와 드럼 비트에 맞춰 제 자리에서 방방 뛰기, 머리로 상모돌리기까지 하면 중수가 될 수 있다. 중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결국 흥 많은 누구가에 의해 모든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원을 그리며 뛰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바탕 뛰놀고 나면 앙코르 요청이 이어진다. 무대 앞 팁 박스에는 지폐가 두둑하게 쌓이고, 통 크고 흥 많은 손님들이 밴드 멤버들에게 선물한 술잔도 덩달아 쌓인다. 노래하는 이, 춤추는 이, 서빙하는 이 구분 없이 즐기는 이가 되어 어울리다 보면 어느덧 끝을 알리는 노래가 시작된다. 마치 이 노래를 들으려고 모든 에너지를 불태운 것처럼 모두가 고요해지는 순간, 보컬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어느덧 대전 하이웨이~"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가게 안은 후덥지근하고 습한 공기와 할머니 집 같은 냄새가 났으며, 동네 친구인 듯 보이는 아저씨 세 분이 4번째 소주를 시키던 참이었다. 우리가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도 구석 테이블에 자리 잡고 오천 원짜리 만두 찜과 소주 한 병을 시킨 참이었다.



옆 자리에 홀로 앉은 덩치 큰 남성은 비빔국수와 만두 사진을 열심히 찍던 순간이었다. 작은 가게 안에 네 팀이 들어차자 앉을 자리를 잃은 사장님이 리모컨으로 글자를 이리저리 조합해 무언가 써 내려갔다. '호텔 캘리포니아' 언제 들어도 우수수 소름 돋는 전주가 흘러나오고 둔탁한 타악기 소리와 함께 보컬의 노래가 시작됐다.



"어느덧 대전 하이웨이~"



순간 연천의 작은 마을 대광리에 위치한 '대광리 국수'는 '대광리 라이브 클럽'이 돼있었다.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숨죽여 음악을 듣는 것이 느껴졌다. 사장님은 주방 앞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발을 까딱거렸다. 까딱 거리는 발의 리듬에 맞춰 내 손가락 끝도 움직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MTB를 타며 스포츠를 즐기는 남 사장님과 벙거지 모자에 양 갈래머리를 한 소녀 같은 여사장님은 왜 이 조그만 마을에서 국숫집을 할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니 낭만을 간직한 방랑자 부부처럼 보였다. 거칠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던 취기 가득한 아저씨들도 휴일 낮에 술 한 잔 기울일 친구가 있는낭만적인 삶으로 보였다. 평일에는 해가 쨍하고, 휴일에는 비가 내려 하늘도 참 짓궂다 생각했는데 대광리 라이브 클럽에선 내리는 비마저 운치 있게 느껴졌다.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노래 선곡은 술꾼 아저씨들의 신청곡으로 이어졌다. '가슴 한 켠에 낭만 하나 품지 않은 사람 없다'더니 프레디 아길라의 'Anak'이 비처럼 공간을 적셨다. 



우연히 찾은 시골 국숫집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을 수 있는 확률은 몇이나 될까. 동네 아저씨들의 애달픈 신청곡이 흘러나오는 낭만적인 국숫집을 만날 확률은? 새빨간 김치를 국물에 담가 후루룩 마시며,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낭만적인 이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생각했다. 



호텔 캘리포니아가 흐르는 '대성리 국수' 아니 '대성리 라이브 클럽'



어느덧 대전 하이웨이~
나도 가슴 한 켠에 낭만 한 스푼 있다아이가~!








[오글오글 질문] 
당신의 인생 곡은 무엇인가요? 그 노래와 얽힌 사연을 글로 써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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