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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통 Apr 05. 2022

보수는 탐욕으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무너진다

work in progress


얼마 전, 볕 좋은 봄날에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다.

대선이 끝난 직후라 자연스레 정치 얘기가 나왔다. 우린 지난 조국 사태 때 함께 조국을 비난했던 추억이 있다.

서로 본인의 정치 성향을 노골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친구는 오랜 서초구민이었으므로 그 동네 특성상 우클릭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나는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스윙 보터 … 이제는 보수로 핸들을 틀어버린 안철수 씨가 추구했던 극중을 표방하려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선거 직후. 선택을 했고 나의 선택이 유효하기를 바랐다. 나는 미세하게 왼쪽으로 떨었다.


 “나는 원래 민주당이었거든? 근데 민주당은 내로남불 쩔잖아. 그렇게 김건희 욕을 하더니 이번에 김정숙 여사도 2억짜리 브로치 특활비로 사고.”

 

 “아, 진짜? 첨 듣는데. 진짜 특활비로 샀대?”


 “뻔하지, 뭐. 내역 공개하라고 재판에서 판결 났는데 안 한다고 했대. 그거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하면 15년 동안 공개도 못한다며? 치사해.”


나의 한 표가 사표가 된 후 허탈한 기분에 뉴스도 잘 보지 않았다.

김정숙 여사라…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여기서 ‘그렇게 안 보였다’는 말은 김정숙 여사가 실제로 매우 청렴하여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 대해 내가 뭘 알겠는가.

다만 평소 매스컴에 봉사 활동 다니는 모습을 자주 비추고, ‘털털한 정숙 씨’라고 이미지 마케팅을 했던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대놓고 사치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렇게 금방 발각될 일을 저지를 만큼 바보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가 나의 감상이 되겠다.

역시나 그 뒤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 브로치는 2억짜리가 아니었다. TMI일지도 모르지만 그 브로치는 3개에 한 세트로 세트 가격이 50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 가격이 영부인의 브로치 가격으로 적당한 지에 대한 판단은 또 각자가 다르겠으나…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로(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거짓이라고 알면서도) 보도한 일부 언론은 구제할 길이 없는 사회악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공직자든 영부인이든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다 경비로 처리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본인이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업무의 일부일 뿐인데… 애초에 경비로 처리하고 내역을 기록해서 공개한다면 이런 쓸모없는 논란에

감정과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역만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2억짜리를 하든 20억짜리를 하든 또 무슨 상관인가.

오히려 꾀죄죄한 꼴로 해외 매스컴에 비치는 쪽이 더 부끄러울 것 같은데…

왜 김정숙 여사는 고무장갑 끼고 김치를 담그는 시골 아줌마의 모습일 때 찬사를 받을까.


질문을 더 발전시켜 보자면… 왜 진보는 가난해야 마땅할까.


여기서 나의 아이덴티티를 한번 더 정확히 해 두자면, 나는 이슈에 따라 생각이 바뀌며 부유하는 이른바 부동층이다.

본가에 가면 TV에서 24시간 종편 방송이 흘러나오고 집에서는 남편이 소위 진보 스피커라고 하는 김어준, 이동형 씨의 유튜브 방송을 시청한다.

뭘 보든 나의 반응은 한결같다.


 “이런 나쁜 xx들을 봤나!”


그 대상이 매번 달라질 뿐.

귀가 얇아서 금방 설득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지조가 없거나 생각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한 최선을 찾고 있는 것이다. 누가 나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줄 것인가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현명한 유권자일 뿐이다.


보수, 保지킬 보에 守지킬 수.

기막힌 네이밍이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보수당을 선택해야 한다. 그들은 가진 것을 지켜준다.

진보는 없는 것을 채워줄 것이다. 근데 어디에 뭘 채워줄지는 쏘 랜덤이라…

그래서 관점에 따라 진보는 없는 자들에게도 비난을 받는다.

강남 3구의 투표율이 80%를 웃돈다. 그들은 보수가 그리도 싫어하는 북한 사람이 나와도 보수당이라면 몰표다.

누구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은 그들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는 가진 것을 지켜주고, 지킬 것이 있는 자들이라면 보수당에 투표하는 것이 맞다.


이에 나는 고민했다. 나는 지킬 것이 많은지, 채워야 할 것이 많은지.

나의 삶은 여백의 미를 좇았던 우리 선조들을 닮아 채워야 할 곳 투성이였다.

그래서 진보를 선택하기로 했건만… 내가 가진 민들레 홀씨 같은 무엇이라도 건드릴라 치면 그리도 썽이 났다.

분명 내가 얻은 혜택도 없지는 않았을 텐데… 나에게 입힌 손해만 크게 다가왔다.


손실 회피 편향 : 얻은 것의 가치보다 잃어버린 가치를 크게 평가하는 것


또한 상기 언급했듯 무엇을 어디에 채워줄지는 쏘 랜덤이었다.

취약 계층을 돕는답시고 돈을 막 풀긴 하는데…

어린 시절 풍문으로만 들어본 그 전설의 가녀린 여인 ‘비사이로 막가’ 처럼 나는 그 쏟아지는 복지 사이를 잘도 피해 다닌다.

그러던 와중에 자산이 10억이 넘고 나보다 수입도 많은 동료가 코로나 재난 지원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동료와 나는 아이폰 신형을 사려고 계획 중이었는데 그녀는 얄미롭게도… 내 앞에서 재난 지원금으로 아이폰을 사겠다는 이야길 했고

그 때 나는 (지금은 존경해마지않으나) 문재앙이라는 말을 입에 처음 담았다…


5천만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일이니 당연히 구멍은 있을 테고, 코로나 재난 지원금이 가뭄의 단비였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돈이 땅을 산건 정말 배가 아팠고… 그 하나의 에피소드로 인해 민주당의 복지 정책은 모두 좌파의 포퓰리즘이 되었다.


재난 지원금 이전에 나를 앵그리버드로 만든 한 사건이 또 있었으니 그 이름 하야

이 글 첫머리에 언급한 조국 사태였는데… 사실 분노에 가득 차서 조국을 욕할 때조차 그가 범법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종편과 진보 유튜브를 열심히 보며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조국 전 장관의 딸이 의전에 들어간 방법이 매우 치사하긴 하나

우리 사회 시스템이 원래 그렇게 되어 있었고, 비단 저렇게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이 조민 씨 하나는 아닐 것이다,였다.

그리고 내가 조국 전 장관이나 그 부인 정경심 씨나 그의 딸 조민 씨였다 한들, 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을까? 자문하면 답은 노,였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은 그래서는 안됐다…! 조국 전 장관은 내가 아니지 않은가!

왜 그는 그래서는 안될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왜 진보는 가난해야만 할까.


방송인 김어준 씨도 늘 푸념한다. 진보만 왜 가난해야 하느냐고. 우리도 부자가 되어보자고.

(이미 부자인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짜증만 가중시키는 일이기는 하다… )


나는 어느 날 TV에 나온 유시민 선생을 보다가 문득 그 답을 찾게 된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에 대해 설명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수는요, 빨리 가자는 거예요. 빨리 갈 수 있는 사람만 태워서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진보는 좀 느려도 모두 다 같이 가자는 거예요. 약한 사람, 다친 사람, 모두 다 태워서 천천히 가자는 거죠.”


이 이타적인 발언을 듣고 일빠로 내 머리를 강타한 감정은 ‘짜증’이었다.


 “아니, 오만 사람들 다 태워서 어느 세월에 가? 왜 준비된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해?”


쥐뿔도 가진 것이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스스로를 ‘가진 쪽’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설사 내가 ‘못 가진 쪽’이더라도 구차하게 가진 자들 발목을 잡으며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진정 낙오될 뻔한 장면에 처해본 적이 없어서 쉽게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나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우리 가족이 사지로 내몰릴 때 의연하게 ‘먼저 가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렇게 가진 것 없는 흙수저인 나 조차도 어려운 사람들(그게 나일지도 모름) 태워서 천천히 가자는 게 이렇게 별로인데

조금이라도 가진 것 있는, 준비된 사람들이 유 선생의 저 말을 들으면 얼마나 동의하기 힘들까 싶다.

그들은 설득하는 입장인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 조금 나눠요. 우리 사회의 이웃들하고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살아요’가 아니라 ‘조금 나눠요’다.

우리는 손실 회피 편향이 강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아요에 동의하기 이전에 조금 나눠요에 저항감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어찌 문명인으로서 ‘같이 있어 가치 있는 사회’,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 등의 도덕 교육을 받아

꾸역꾸역 그들에게 동조해주려고 했는데… 나를 설득했던 그 사람이 사실은 부자였다! 나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내 가진 걸 나누자고 했다! 심지어 자기 딸은 야비를 써서 대학에 갔다! 참을 수 없어! … 이런 생각의 흐름을 따라오지 않았을까.


더 큰 관점에서 보자면 줄줄이 무죄가 나올 죄목으로 기소를 해서 무리하게 수사를 한 검찰이나…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으로 보도를 일삼은 언론이나…

진짜 악행을 저지른 기득권들이 존재함에도 진보의 티끌에 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으로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조국 전 장관은 야속하다.


이것이 이성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 나온 결과물인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래서 다시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면…


진보는 왜 가난해야만 할까?


그들이 우리를 설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의 가진 것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설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위해서 나누자는 말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공감을 얻어내기까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진보는 가난해야만 한다.



정치인은 성직자가 아니건만…

리더의 한 선택이 수많은 사람들의 배를 곯릴 수도,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반대로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는데.

성직자처럼 청렴하고 능력도 출중하고

무엇보다 최강의 레거시 미디어들의 공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줄 진보 리더가

채워줘야 할 것이 많은 우리 서민들을 위해

기적처럼 나타나 주길 바랄 뿐이다.


진보는 분열로 인해 무너졌다.

이제 탐욕으로 보수가 망할 차례인가.


새 대통령 취임도 전부터 불거진 영부인의 브로치 논란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를 연상시킨다.

떨어진 지지율은 선정으로 끌어올리시길.


이렇게 무너지고 망하면서도 우리의 삶은 어제보다 나아져 있기를 바라본다.


work in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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