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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통 Oct 27. 2022

‘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읽고

정글의 경쟁에서 지친 당신에게 건네는 따뜻한 차 한잔과 같은 책

태어나서 과제가 아닌 서평을 써보는 것은 처음이다… 긴장된다…! 게다가 책을 남편이 가져간 건지 보이질 않는다. 기억에 의존해서 잘 써 내려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올해 읽었던 책 중에 제일 좋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었는데… 호흡을 가다듬고 영업을 시작해보겠다.


[아버지의 해방 일지]


세일즈 포인트 1 : 유시민이 추천했다.

나도 다스뵈이다에서 유시민 작가가 추천하는 것을 보고 주문했다. 유시민 작가 픽이 늘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짧은 책 소개를 들었을 때 매력적으로 느껴졌기에 책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을 완료했다.


세일즈 포인트 2 : 문재인이 추천했다.

얼마 전에 SNS에서 문프가 추천한 것을 보았다. (내가 그보다 빨리 읽었다. 뿌듯…!) 문프 픽은 조금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노잼인 책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이 책은 재미있다.


지금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어 대형 서점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와 관련 없는 책이니 오해 마시고. 묵직한 내용이나 가볍게 읽기에도 부담 없는 가독성 좋고 재미있는 내용이니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분들께도 추천이다.




‘빨치산’의 뜻을 알고 있는가? 나는 책을 펼치면서 ‘빨치산’의 뜻을 검색했다. 아예 모른다기에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빨갱이 아닌가…? 그렇다면 빨갱이와 빨치산의 차이가 뭘까…?


빨치산 : 러시아어로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와 가까운 의미이다.


대박사꽁…! 빨치산은 우리말이 아니었다. 빨갱이가 빨치산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다시 네이버 지식백과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이 이념 분쟁 과정을 통하여 좌익 계통을 통틀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표현된 것이 빨갱이다”. 그러니까 촛불 집회에서 나에게 ‘빨갱이’라고 외치던 노인은 나를 비하하는 것이 맞았던 것이었다… 차라리 빨치산이라고 해줘… 아무튼 이 빨치산의 삶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다들 나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는데 ‘빨치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과격하고 극단적이고 막무가내에 … 미친 사람? IS 같은 느낌이랄까… 혹시라도 빨치산을 옹호했다가는 잡혀갈 것 같은 느낌도 있어서 아예 입에도 올리고 싶지 않은 단어였다. 빨치산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그들의 삶이 궁금한 적도 없었다.


이야기는 한 ‘빨치산’ 또는 ‘전직 빨치산’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소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장례식장이다. 라디오 사연을 읽어주듯 장례식장을 찾는 조문객들의 고 빨치산과의 인연, 그리고 에피소드 들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도 좋았고, 작가가 워낙 글을 잘 써서 가독성도 좋았다.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지만 위트 있게 풀어나가기 때문에 중간중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포인트도 많았는데 어쩐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울고 있었다. 책의 첫 문장에서 말하듯 ‘전직 빨치산’인 책 속 ‘나’의 아버지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사망했다. 탄압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도 아니고 요절은커녕 구순까지 살다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그의 죽음이 슬퍼서 눈물이 난 것은 아니다. 그의 삶이 슬퍼서…? 라기보다는 너무 마음을 울려서, 내게 결핍된 부분을 심하게 건드려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책을 읽다 보면 느끼겠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처음에는 ‘정지아 작가는 어떻게 빨치산에 대해 이리 정통할까…?’ 생각했지만 책의 중반부에 접어들자 ‘아, 이건 경험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이야기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전작이 ‘빨치산의 딸’이다. 극 중 ‘나’는 정지아 작가 본인이었다. 잘 쓴 허구도 충분한 몰입감을 주지만 실제 경험담만이 줄 수 있는 감정도 있는 것 같다. 이미 떠나고 없는 그녀의 아버지,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관조해보았다. 빨치산… 그게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빨치산이 궁금해본 적이 없는 나를 반성했다. 그리고 딱히 역사 지식이 없어도 책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내가 얼마나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해 무지한지도 깨달았다. 우리가 모두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웠다면 빨치산에 대한 생각도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 것 같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모두가 화가 나있다.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다. 한 눈 팔면 경쟁자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사회, 눈 깜빡이는 동안 코 베이는 세상. 모두가 나를 등쳐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다.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늘 주변을 살피고 모든 감각의 안테나를 켰다. 항상 에너지가 고갈되고 피로했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 외에 없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노량진에서 집에 오는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꾸중했지만 나는 그 마음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다음 날 중요한 일이 예정되어 있어 초 예민할 때 윗집 아이가 쿵쿵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층간 소음 문제로 불화가 있었기에 그동안 쌓인 분노도 컸겠지만 순간적으로 ‘아… 저 애 xx, 밤에 잠도 안 자고 뛰어다니고 몹쓸 병에나 걸려버려라…’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무슨 죄라고… 하지만 하루 종일 얻어터지고 내 밥그릇 지키려 허리 굽히느라 지친 나에게 남의 아이까지 배려해 줄 여유는 정말 조금도 없었다. 요즘에는 대학 도서관에 ‘삼색펜 쓰지 말라’는 쪽지가 붙어있다고 한다. 펜 컬러를 바꾸는 소리가 거슬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고 먹고 살기가 나아졌다는데 어째 그 안의 사람들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자비가 사라지는 것 같다.


우리는 잘 살게 된 만큼 행복해진 걸까…? 나는 일이 많아지고 급여가 많아지고 좋은 식당에 가고 호텔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우울했다.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태어난 목숨 스스로 끊을 수는 없어도 아이에게 굳이 이런 세상 보여주고 싶지 않아 딩크족이 되었다. 모두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세상… 정글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정글 속에도 바보같이 이타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아버지의 해방 일지’의 빨치산은 민중이 가장 귀하고 소중하다. 그 민중에는 나도 포함이 된다. 못되고 이기적이고 남을 등쳐먹는 사람도 민중으로 쳐준다. 민중들이 배고프고 힘든데 본인이 편하게 두 다리 뻗고 잘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늘 가난하고 바쁘고 분주했다. 그리고 남에게 속고 이용당했다. 물론 그의 진심을 알아봐 준 ‘동지’나 ‘후원자’들도 있었지만… 그 부분도 나에게 인류애를 다시 되찾아준 대목이었다. 내가 다시 세상에서 희망을 보려면 이 책은 꼭 실화여야만 했다. 실화여서 다행이다.


다시 말하지만 ‘빨치산’이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원래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하니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패자인 빨치산은 틀린 것이 맞다. 하지만 모두가 나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요즘 세상을 보면 ‘민중’을 생각했던 빨치산의 마음이 그립다. 끼리끼리 사이언스라고 이기적인 내 주변에는 약삭빠른 사람들밖에 없는데 … 책은 우물 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가장 편하고 쉬운 수단인 것 같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지치고 우울했던 당신에게, ‘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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