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크리에이터
MZ세대 : 1980년대 초~ 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
얼마 전 버스에 사람이 많아 맨 뒷자리에 앉았던 적이 있다. 학창 시절 소위 ‘일진 자리’라고 불렸던 그 자리 말이다. 급정거 시 앞으로 튕겨나가기 딱 좋은 자리인데 불량 학생들은 왜 그렇게 이 자리를 선호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자리가 있으면 앉지 않는 자리인데 그날은 선택지가 없었다. 정 중앙 자리를 피해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리가 높아 앞 좌석 사람들의 뒤통수가 쪼르륵 보였다. 그리고 마치 지령이라도 내려진 듯 모두가 같은 포즈로 쳐다보고 있는 스마트폰도 보였다. 바로 앞 좌석과 앞 앞 좌석 까지는 그들이 조작하는 휴대폰 화면의 글씨까지도 보였다. 메신저를 하고 있다면 주고받는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빅 브라더가 된 기분도 들었다, 지금까지 내 휴대폰 화면이 버스에서 누군가에게 검열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80년대 생인 나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추억도 있고, 피처폰의 경험도 있다. 분명 어린 시절의 내가 기억하는 버스 안의 풍경은 이렇지 않았는데…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 다는 말이 진리로 와닿는다. 그리고 이 변화는 사람이 일으킨 것이 아닌가… 잡스여, 당신은 갔지만 아이폰은 영원하도다…
앗, 이 모든 변혁의 공을 잡스에게 돌려도 괜찮은가. 스마트폰 시장은 대략 삼성과 애플이 반씩 나눠먹고 있지 않나.
갑자기 사람들의 휴대폰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들고 있는 휴대폰을 살펴봤다. 하지만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다 똑같았다.
예전에는 아이폰과 갤럭시를 홈 버튼으로 구분했는데 이제 홈 버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 같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아이폰을 꺼내서 비교해보았다. 화면 구성이 나의 폰과 다들 같았다. 정말 이토록 차이가 없는 것인가. 그럼 왜 비싼 돈을 내고 아이폰을 사는 거지?
혹시나 해서 인터넷으로 갤럭시를 검색해봤다. 화면을 켰을 때 화면 아랫부분의 구성이 미묘하게 달랐다. 이 버스 안의 사람들은 거의 다(앞 좌석 사람들의 휴대폰까지는 정확하게 확인 못했다)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적어도 내 앞으로 10명은 모두 아이폰이었다.
이렇게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고? 이토록 적은 차이에 큰돈을 내고 아이폰을 구입한다고?
그제야 휴대폰이 아닌 사람들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이 버스에는 나이 든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뒤통수만 보고 판단했기에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복장이나 헤어스타일은 직장인 초년생, 또는 대학생처럼 보였다. 원래 이 버스가 종점 경희대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대학생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원이 경희대에서 탑승한 것이 아닌데 조금 신기한 느낌도 들었다. 평소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지만 아이 동반 승객이나 고령층 승객도 종종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오전이라는 시간대가 영향을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승객은 없었고, 어린이나 중고교생도 없어 보였다(외관으로만 판단했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다). 이 구역의 꼰대는 아무래도 나인 것 같았다. 나는 MZ세대의 고령층이다. 애초에 MZ세대라는 20년이나 아우르는 구분이 의미가 있나 싶지만, 대략 이 버스에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외관 상으로 구분하자면 MZ세대인 듯하다. MZ세대는 아이폰을 선호하는 것일까. 그래서 갤럭시에 ‘아재폰’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일까. (80년대 생인 내 나이도 아재가 되기에 충분한 나이지만, 나와 내 주변인들은 본인이 아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주변인들을 생각해봤다. COVID-19 팬데믹 이후, 인간관계가 급격히 쪼그라들었지만, 그 적은 모수나마 열심히 떠올려 보았다. MZ세대에 속한 이들 중 한 명, 두 명 정도가 갤럭시 유저였다. 한 명은 동생이고, 또 한 명은 직장 동료다. 둘 다 경제적으로는 꽤 풍요로운 고소득 직종이지만, 알뜰하고 실용적인 성격으로 갤럭시를 구입했다. 동생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아이폰을 구입한 적이 없고, 직장 동료는 아이폰을 사용하다 갤럭시로 갈아탔다. 쓸 줄도 모르는 맥북, 디자이너한테도 고 스펙이라는 아이패드 프로를 들고 다니는 소위 ‘앱등이’인 나는 어땠더라. 나는 아이폰 최초 모델을 구입했다.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애지중지하던 아이폰에 주스를 쏟아 침수됐다. 그저 액정에 얼룩이 생겼을 뿐 잘 작동하는데 아예 새 핸드폰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리퍼 정책’이 나에게는 사기처럼 느껴졌다. 다음 휴대폰은 갤럭시 노트로 선택했다. 국내 기업 제품이니 AS가 좋을 것 같았다. 처음 출시된 대형 스크린이라 그랬는지 살짝 떨어뜨리기만 하면 바로 액정이 파손됐다. 생각보다 액정 교환 비용도 비쌌다. AS가 대단히 친절하지도 않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도 걸렸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기에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안드로이드에서도 ‘팟캐스트’를 여러 경로를 통해 이용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iOS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외국어 학습자 입장에서 ‘팟캐스트’를 포기하기도 아쉬웠다. 그러한 이유로 아이폰을 선택했고, 비슷한 아이패드를 구입했다. 애플에서 나오는 전용 키보드를 사용하면 호환성이 좋고 짐도 줄어들 것 같아서 아이패드 프로를 골랐다. 그렇게 애플 제품에 포위되고 나니 iOS에 익숙해졌고 다른 선택지는 아예 생각도 못해봤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이 귀찮았다. 아이폰을 쓰는 동안 내가 나이를 먹고, 꼰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에게 큰 심경의 변화가 있거나, 애플이 OS를 다 갈아엎지 않는 한 나는 평생 앱등이로 살 것 같다.
다른 MZ세대들은 왜 아이폰을 사용할까. 갤럭시도 신형은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다들 알다시피 갤럭시는 새 모델이 나오면 구형 모델 가격이 빠르게 떨어진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은 처음에 아이폰이 나왔을 때 구입해서 사용했고 iOS에 익숙해져서 갈아탈 생각이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더 어린 친구들은 분명 맨 처음 스마트폰을 선택했을 때 갤럭시와 아이폰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아이폰을 선택했다. 얼마 전에 이남자에서 삼남자가 되어버린 내 막냇동생을 떠올렸다. 고등학생, 대학생 때는 용돈을 받아 쓰는 처지였고, 부모님이 아이폰을 사주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아이폰을 갖고 싶어 했기에, 대학교 4학년 생일 선물로 큰 누나인 내가 아이폰을 선물해줬다. 그 이후에는 작은 누나를 졸라 에어팟도 구입했다. 막내 동생은 그 이후로 쭉 아이폰 유저다. 다들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리해서 아이폰을 구입한다. 처음에는 동그라미 홈버튼에 그 매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홈버튼도 사라지고 앞면으로는 구분도 가지 않는다. 뒷면도 케이스를 씌우고 나면 잘 구분되지 않는다. MZ세대는 왜 그렇게 아이폰에 매력을 느낄까.
개발자인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요즘엔 삼성폰도 괜찮다고, 스펙으로는 절대 아이폰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하고 사전 예약도 치열하지 않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한 번도 갤럭시를 사용한 적이 없다. 너는 왜 그 좋은 삼성폰을 쓰지 않냐고 물었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아이폰이 보안이 더 좋을 것 같아서란다. 진심일 수도 있다. 급하게 만들어 낸 이유인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MZ세대들은 아이폰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요즘 출시되는 아이폰과 갤럭시를 보면… 솔직히 말하면 디자인도 스펙도 큰 차이를 모르겠다. 관심 갖고 보지 않으면 다들 잘 구분도 못할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비싼 돈을 내고 아이폰을 구입한다. 그것은 ‘또래 문화’일까. 주변인들의 생각에 동조하여 맹목적으로 아이폰에 충성하는 것일까. 아니면 최근 베스트셀러인 ‘김부장 이야기’에서 권 대리가 말했던 것처럼 갤럭시에는 ‘영혼’이 없는 것일까. 그 영혼이 처음에는 감성이 깃든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폰의 소울이 MZ세대의 높은 감수성에 울림을 주는 것일까.
새삼 영혼을 창조해낸 잡스가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