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도윤이가 아픈 몸을 누이고 낮잠이 들었다. 나만의 시간이 생기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AI 챗봇들을 소환해 말을 건 것이었다. "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하찮은 진심이 손끝으로 새어 나왔다.
ChatGPT의 친절한 답변에 긴 사연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오늘 새벽 둘째의 울음소리가겨우 잠든 나를 깨웠어. 그게 다였냐고? 아니, 오늘따라 두 아이가 번갈아 가며 화장실 가고 싶다, 악몽을 꾸었다 여러 번 일어나서 엄마를 찾더니 끝내 첫째가 목이 아프다며 쉰 목소리로 울며 일어났어. 목감기에 걸린 것 같았어. "오늘은 유치원 대신 병원에 가야겠구나" 했지. "나으려면 푹 자야 해. 아직 이르니 좀 더 자-"라며 겨우 달래고 나니 다섯 시에 맞춘 핸드폰 알람이 울리더라. 왜 평소보다 이른 다섯 시냐구? 오늘은 둘째 도하의 생애 첫 소풍이자, 내가 생애 첫 김밥 도시락 만들기에 도전하는 날이었거든.
일곱 시쯤 되었나, 첫째가 일어나 주방에 있는 내 옆에 와서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기 시작했어. 목만 좀 아픈 건가 했더니 온몸이 감기 기운으로 처지나 보더라고. 나도 모르게 피어나는 '아파도 하필 왜 오늘 아프니'라는 생각을 애써 훠이~지우고, 안고 업고 어르고 달래고, 그러면서도 마음은 온통 도시락에 가 있었지.
처음으로 만들어 본 김밥 도시락
'아마추어티가 나면 안 될 텐데.. 맛없으면 어쩌나? 크기는 적당한가? 괜찮은 것 같은데 사진 좀 찍어둘까? 애 아픈 와중에 이러고 있다~ 좀 넉넉히 싸서 하성이네도 나눠주려 했더니만 겨우 이 도시락만 채우겠네.. 남은 재료는 어쩌지.. 아이고 허리야!'분주했던 아침... 둘째 도하를 무사히 기분 좋게 어린이집 버스에 태우고 나서야 첫째에게 온전히 신경을 쓸 수 있었어.
첫째의 유치원에 연락하고 병원에 갔어. 의사 선생님말씀이 도윤이가 한참 바이러스와 싸우는 중이라며 푹 쉬라고 하시더라. 가벼운 목감기려나 했는데, 위장에 가스도 차고 염증 수치도 꽤 높더라고. 잘못하면 폐렴을 겪을 수도 있다고, 약을 먹고 쉬어도 호전이 되지 않으면 바로 내원하라는 말도 덧붙이셨어. 그렇게 병원에서 한 시간?두 시간?보냈나? 우리는 드디어 첫 끼니 아점으로 죽을 먹었어. 아이가 '텐텐'이라는 사탕을 먹고 싶다고 여러 번 얘기하길래 혹시나 힘이 좀 되려나 싶어 호기롭게 사주고 후식으로 여러 개 먹을 수 있게 허락해 주었지.
'오늘과 내일은 도윤이와 집에서 보내야 하는데 무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미술 재료를 사기로 했어. 내가 생각한 예산을 좀 넘겼지만, 아픈 아이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구입했지. 아이가 너그러운 엄마를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회복하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구매 한 미술재료로 작품 제작 중인 첫째
첫째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텐텐' 사탕을 더 먹고 싶다고 했어.엄마의 너그러움을 시험하는 애처럼.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했던 내 말을 무시하는 아이에게 실망하여짜증을 부렸지. 그건 바른 '훈육'이 아니었어. 말 그대로 짜.증.이었지. 졸린 아이는 시무룩해하다 잠들었고, 나는 주차 후아이와 무거운 가방을 이쪽 저쪽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왔어.
오늘 후회되는 것이 너무 많다. 하나하나 겨우 넘기고 있는 것 같아. 오늘 하루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유난스러워. '소풍 도시락을 더 잘 싸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 '하필 왜 오늘 아프니'라는 음침한 생각을 들키지 않으려 했던 조바심... 아! 혹시 그래서 첫째에게 필요 이상 너그러웠던 것은 아닐까? 텐텐이 뭐라고. 애초에 오늘은 두 개만 먹자고 이유를 설명하면 알겠다고 할만한 애한테 그게 뭐라고 불순종이네 뭐네 짜증을 부려 부리긴.
내 애씀을 세상이 몰라주는 것 같았나 봐. 알아달라 외친단 게, 어쩌다 첫째한테 난리부르스였네. 그 속상함이 왜 하필 아픈 첫째 아들 앞에서 터진 건지. 내가 미쳤지."
모범적인 위로에 왈칵 눈물이 나왔다. 그래 사는 게 다 그렇지, 암 이 다음이 중요한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