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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Jul 11. 2024

힘든 거랑 미안한 거랑 퉁-치자

나의 부모보다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둘째가 오늘 아침에도 울었다. 이거 달라, 저거 달라, 모자라다, 많다... 요지는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엄마가 싫다는 거였다. 더 이상 설득은 필요 없었다. 약속을 스스로 못 지키니 도와주겠다 말하고 번쩍 들어 화장실로 갔다. 씻겨준다고 하는 내게 몸을 맡기나 싶더니 어느새 진정하고 또박또박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이 언제나 더 나았고 오늘도 성공이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난 쓸데없이 말이 길고 성급하게 샤우팅을 발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가르침의 지혜는 없고, 상한 기분을 앞세워 어린 아이를 이기려 드는 어리석음만 가득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언제나 좋은 엄마일 수는 없다. 그리고 미생의 두 아들이 서툴다는 사실은 이보다 더 당연하다. 이 당연한 것을 잊으면 성장의 순간을 한숨과 샤우팅으로 채우게 된다. 그렇게 또 난 완벽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진 엄마가 된다. '너도 나도 크느라 애쓴다'하고 가볍게 퉁- 치면 입안의 불씨가 잘 꺼지련만, 그 타이밍을 놓치고 커다란 불덩이로 키워 뿜어대는 일이 잦다. 이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내 안에 쌓여 나의 일부가 된 나쁜 것은 잘난 것보다 눈에 띈다. 이제 이 나이쯤 되면 스스로 책임질 만도 한데 나도 모르게 원가정 탓도 하게 된다. '어머, 지금 이 말 우리 엄마 잔소리랑 똑같다', '아빠가 이렇게 화내던 거 싫었는데 내가 이러고 있네' 하고 흠칫하곤 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같이 나 또한 우리 부모보다 더 나은 부모가 되겠다 다짐하는데, 간혹 당연한 욕구 이상의 탄식과 울음인 경우가 있다. 하면 할수록 무용함을 느끼게 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자식으로서도 가볍게 퉁 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우리네 부모도 언제나 완벽할 수 없고 우리도 그들에게 완벽한 자식일 수 없다. 이것을 당연히 여기고 가볍게 퉁 칠 수 있어야 더 나은 다음이 있는 것 아닐까. 탓하고 원하고 실망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거두고, 그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감사하고 변화하는 데 쓰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완벽의 상에 가까워지는 지름길일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속도대로, 나름의 애씀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래야 한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우리도,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부모도 모두 그렇다. 가족에 대한 아쉬움은 나의 부족으로 퉁-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나 집중하련다.


2024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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