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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11시간전

"아빠가 없으면 네가 엄마와 동생을 지켜야 해"

고정관념 말고, '유동'관념 어떤데?

어린 시절, 나는 아빠로부터 "아빠가 없으면 네가 엄마와 동생을 지켜야 해"라는 말을 듣곤 했다. 영웅이 된 듯 "네!"라 답하던 어린 나는 성장할수록 그 책임에 대한 불편함을 느꼈다. 동생은 당연하고 엄마까지 지켜야 한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더구나 장녀라는 자리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과거에는 이런 말이 가족의 결속과 사회적 안정을 위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한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고정된 역할은 오히려 개인의 성장과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 형성을 저해할 수 있다. 아빠는 아마도 자신이 장남으로서 오랜 시간 들어온 이야기를 계승한 것일 테고, 그마저도 내가 '변화한 시대를 사는 여자'라는 이유로 많이 덜어내셨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태어난 순서나 성별과 같이 스스로의 노력과는 상관없는 틀에 갇혀 평가되어 왔고, 이에 대한 무기력과 불평등의 분노 그리고 죄책감을 안고 지내야 했다.

다양한 사회적, 심리적 프레임은 개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문화적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프레임들이 다행히 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능력에 잘 맞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다. 그러므로 잘못된 고정관념이 자신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지 신중히 살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정에서부터 아이의 고유함에 맞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보호"의 역할을 예로 들어보자. 개인적으로 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먼저, 그리고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은 그 이후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이 자신을 돌보느라 동생을 미처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동생의 경우에도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방법이 아닌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먼저 터득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이기적인 형은 장자라는 프레임 없이도 책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도울 힘이 있음에도 돕지 않은 선택을 한 동생도 당연히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힘의 우위를 점한 부모의 역할을 나이와 경험이 많은 형이 앞서 모방하겠지만, 그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을 어떤 상황에서 왜 하는지에 따라 막내가 가정의 리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보호, 협력, 존중, 책임 등을 배우는 과정에 단지 형이라서 혹은 동생이라서 익혀야 하는 특별한 것은 없다. 자신이 가진 힘을 체감하고 그것을 상황에 맞게 잘 사용하는 방법은 모두가 배워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과 서로를 돌보고 유연하게 역할을 분담할 수 있으려면 '라벨링'보다는 부모의 모범적인 '행함'이 더욱 중요하다. 양육자가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자녀를 바르게 책임질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힘을 관리하며 산다고 가정해 보자.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기보다 약자를 아끼며 살고, 사랑의 희생이 필요하다 여겨지면 기꺼이 행하는 용기 있는 어른 옆에 선 아이를 상상해 보라. 그 아이는 이미 그러한 삶의 가치와 태도를 체감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빠가 없으면 네가 엄마와 동생을 지켜야 해", "어디 형한테 까불어"라는 개념이나 말은 사실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것들은 수많은 믿음의 '행위'들로 이미 대체되었을 것이다. 이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성장과 자아실현을 도모하면서도 상호 존중과 협력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가정에서 배우는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자는 것이 단순히 전통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사랑, 존중, 책임감과 같은 핵심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다만 기존의 가치관을 재해석하고 중요 가치를 실현시키는 방법은 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세대가 그래 왔고 그 덕에 지금의 우리가 더 나은 것을 바라게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완벽할 수 없을지라도 느끼고 보이는 만큼 나아간다면 그 애씀은 언제나처럼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2024년 7월 22일, 급변하는 핵개인 시대에서 성장 중인 두 아들을 위한 다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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