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RIMI Mar 22. 2024

관계의 아이러니

Projekt 1

luuv Cafe, Dunckerstraße 72, 10437 Berlin


몇 년 만에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친한 동생을 만났다. 꽤나 핫한 동베를린의 수플레 전문 카페를 방문했고, 우리는 못다 한 수다를 떨어댔다.


베를린에 오래도록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지만, 보다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관계의 허무함’ 때문인지, ‘베를린’이라는 특정한 환경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에게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 이제는 무척 조심스럽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곧 잘 받는다. ‘나는 뒤끝은 없어.’라는 말은 종종 무례한 언행을 정당화시키는 얄팍한 당위성이 되기도 한다.

좁디좁은 베를린 한인 사회에서의 ‘관계’에 지쳐버린 나는, 이제는 더 이상 내 찐 마음과 진솔한 생각을 잘 이야기하지 않을뿐더러

누군가를 온전히 신뢰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또 몇 시간의 깊은 대화가 허전하고 외로웠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을 보니, 결국 내 곁엔 ‘사람’이 필요하구나를 느낀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상투적인 말이 있다.

사랑이 이러하듯, 사람에게 받은 상처 역시 또 다른 사람의 공감과 격려로 잊혀진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관계’의 아이러니는 영원히 숙제처럼 남아있겠지만, 너무 집착하지도 혹은 포기하지도 말고

서로 간에 적당히 팽팽한 끈을 마주한 채, 너무 애쓰지 않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으로는 결코 본연의 외로움이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작가의 이전글 오전 열한 시든, 오후 열한 시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