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 대 방출... 끝
이런 기억도 있다.
나는 한때 성당활동을 열심히 할 때가 있었고 나의 본당은 명동성당이었다. 주말이나 일요일, 청년회 활동을 끝내면 으레 뒤풀이를 했고 대개는 막차를 타고 집에 오곤 했었다. 그때 명동 성당 앞 골목은 일명 판넬골목이라 하는데(지금은 없어진) 그곳엔 중국집과 후진 어떤 건물 지하에 대폿집이 있었고 그렇게 그 골목은 허름한 술집과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고 판넬집들이 있던 골목이었다. 우리는 매주 그곳에서 술을 마셨다. 돈이 없으니 짬뽕 한 그릇에 소주 댓 병은 기본이고 군만두 하나에도 소주를 서너 병씩 마실 때였다. 사실 그냥 깡소주를 마실 때였고 젊은 몸은 그걸 다 받아낼 정도의 체력은 되었던 때였다. 어떤 날엔 청년회 신부님께서 돈을 내주시고 우릴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지면 집에 갈 수가 없어 대개는 끝까지 남은 주당들은 그 판넬골목안에 있는 여인숙에서 함께 잠을 잤는데 대개는 방 1개에 대여섯 명은 기본이었다. 우리는 집에 못 가면 늘 그 여인숙에서 함께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방문 앞에 어지러이 벗어 놓은 신발들이 뒤엉켜 있는데 가끔 신발이 없어지곤 했다. 그땐 그렇게 신발도둑도 있어 제법 새 신발로 보이면 가져가곤 했는데 어느 날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는데 누군가 복도에서 쓰윽 사라지는데 좀 이상했다. 술에 취한 상태인데도 느낌이 이상해 뒤쫓아가니 그놈(?)은 계단을 다다다 뛰어내려 가는데 그 계단 아래 문은 당겨야 열 수 있는 문이었다. 신발 도둑은 내려가며 가속에 그냥 문을 밀치고 나가려다 문이 딱 막혀 그만 나와 맞닥뜨렸는데... 술이 덜 깨 선지 무슨 용기가 난 건지... 나는 그 도둑의 목덜미를 잡고 말았다. 그리고 큰 소리에 이방 저 방에서 손님들이 나왔고 결국 그 도둑은 딱 잡히고 말았는데 경찰에 넘기지 않고 그냥 보냈던 것 같다. 자세한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도 신발 때문에 경찰에 넘기긴 그놈이 너무 불쌍해서? 아무튼 그의 품 안에서 운동화가 나왔는데 그것만 회수(?)하고 말이다. 그때 그 여인숙에선 별별 일들이 많았는데 한 번은 자다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는데 워낙 여럿이 뒤엉켜 자고 있어 화장실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밟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 나와야 하는데 일어나 옆 자리 누워 있던 놈의 얼굴을 보니 모르는 얼굴인데... 어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일행이 아닌데 천연덕스럽게 나와 내 일행 사이에 잠이 들어 곤히 자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이상한 놈을 깨우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그놈도 이해가 안 간다며 여기가 어디냐고... 반문을 했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놈은 얼마나 마셨길래 남의 방에 와서 잠이 든 건지... 80년대는 참 많은 추억이 있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관용(?)도 있었다.
이건 10대 때 이야기다
그러니까 고삐리 때... 정말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는 녀석들이 술을 마셨는데...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에서 고교야구 대회가 열릴 때였다. 그때 우리 학교 야구부가 전국대회 결승에 올라 준우승인가를 했다 무슨 대회인지는 기억에 없는데 신일고에게 져서 준우승을 했고 단체 응원을 간 우리들은 져서 기분이 안 좋다는 핑계로 술을 마시기로 했고 마침 같이 갔던 우리 반 한 녀석이 하숙을 하는데 그 녀석 하숙방에 몰려가 술을 마셨다. 아마도 그때가 처음 술을 마신 것 같다. 물론 호기심으로 한잔 홀짝 맛을 본다거나 한 적은 있지만 그때가 처음으로 많이 마신 때였다. 기억은 다 난다. 다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해본 것인데... 녀석의 하숙집이 돈암동 부근이었고 한옥집 문간방에서 우리들은 소주, 맥주, 막걸리, 포도주(당시 진로포도주라는 게 있었다)등을 짬뽕으로 마셨고 고삐리들이 그렇게 언제 술을 마셔봤겠으며 그러다 보니 죄다 취해서 비틀거리고 토하고 난리가 났다. 나는 기억은 말짱한데 정말 몸을 못 가누는 신기한 체험을 했는데 하숙집 주인아줌마에게 욕을 먹고 강제로 쫓겨 나왔는데 골목에서 걸을 수가 없었다. 온 세상이 빙빙 돌며 다리는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빙빙 도니 일단 벽을 잡고 있어야 했고 걸음을 떼려니 다리가 훌러덩 거리는 기분? 아무튼 내 다리엔 뼈가 없는 것 같았다. 겨우 버스 정류장까지 와서도 서 있을 수 없어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시간을 보내다 겨우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정신은 말짱하니... 큰일이라는 걱정이 밀려왔고 동네이니 비틀거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겨우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 동안 길이 울렁울렁 거리는 느낌에 어떤 땐 몇 걸음 만에 땅이 푹푹 꺼지는 느낌이 들어 넘어질 뻔하고... 겨우겨우 큰길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와 벽을 짚고 기다시피 집으로 오는데... 동네에서 어른들을 만날까 봐 너무 무서웠고 이게 소문이 나 우리 어머니가 알게 되면 어쩌나... 너무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다. 정신은 멀쩡한 것 같은데 몸만 말을 듣지 않는 거였다. 그리고 집 앞으로 오는데 전봇대가 두 개로 보이고 X자로 되었다 떼어졌다 하듯 보이기도 하고... 정말 걱정이 몰려오는데 내 머리가 어찌 된 건가... 별별 걱정이 다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 앞에 다다르자 자세가 바르게 되었고 일단 옷매무새를 다시 살피고 대문을 두드리자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는데 왜 이리 늦었냐고 물으시길래 말을 하면 냄새도 날 것 같고 해서 화장실이 급하다며 뛰어들어왔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와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게 내 최초의 음주사고(?)였다. 신기하게도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는데 그 후엔 외려 술을 먹고는 기억이 안나는 경우는 많았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아무튼 나는 술만 마시면 졸거나 집에 오다 잠이 들어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는 게 게 내 술버릇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몸을 사리게 되고 무엇보다 다음날 그 빌빌거리는 몸 컨디션이 싫어서 어느 정도 마시면 눈치를 보거나 빼거나 하며 예전에 안 하던 짓(?)을 한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변했네... 변했어~ 하며 놀리지만 술 많이 마시는 게 무슨 자랑도 아니고.... 아무튼 어쩌다 많이 마시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뒷 일 생각 안 하고 마시는 일은 없다. 나이 먹으니 달라지는 게 술이다. 몸 사리고... 내일을 걱정하고... 몸이 약해지니 자동 방어기전이 나오는 건지... 이래서 뒤늦게 철이 드는 건지... 나의 정량은 기분 좋게 마시면 소주 2병이 딱 맞는 것 같다. 다음날 숙취도 없고... 다만 기분 좋다고 더 마시면 기분이 알딸딸해지며 취기가 오르고 그러면 목소리도 커지고 행동도 커지고... 재밌어진다고 하는데... 이러면 난 다음날 숙취 때문에 힘이 들고 그런다. 해서 요즘엔 자주 마시지도 않지만 1차에서 끝내거나 2차를 가도 소주 2병을 지키고 있다. 어쨌든 다행히도 남들은 내가 술 취한 걸 모른다. 나는 자고 일어나면 어제 어찌 헤어졌지? 기억이 안 날 때가 가끔 있는데 헤어질 때 내가 제일 멀쩡했고 제일 싱싱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심지어 은퇴 전, 부서 회식을 하면 내가 일일이 집에 가는 여직원들 택시를 태워 보내고 여자 혼자 늦은 시간 택시를 타는 건 위험하니 번호를 외워둬야 한다며 택시 뒷번호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런 기억이 없고 정말 핸드폰 카메라를 보면 흔들려 찍어 흐릿한 택시 뒷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있었다. 해서 남들은 나는 술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어 불안하기도 하다. 그 블랙아웃동안 내가 어땠을까... 뭐 이런 걱정들... 아직은 남들이 나의 취한 걸 못 봐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마시던 시절, 집에서도 나는 그냥 술 마시고 들어오면 잠이 들어 얼마나 마셨는지 취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집에 와서는 술 냄새는 나지만 멀쩡해 보였고 별 다름없이 씻고 잠든다 하는데... 하지만 내가 취한 걸 아는 친한 사람들은 내가 취하면 안 하던 짓을 한다고 한다. 목소리가 커지고 말할 때 손짓이 커지기도 하고 재밌어진다고. 대체 어떡하길래 재밌다고 하는지... 이게 더 불안하다.
창피한 흑역사는 여기서 끝!
이게 뭐 자랑이라고 글을 쓰나... 하는 자괴감도 들고 무엇보다 창피했다.
그냥 노여워 마시고... 봐주셨길...
대문의 술잔 들고 있는 작자가 마흔 중반 때(였을)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