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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중재 May 18. 2024

<파묘>

오컬트와 장재현 감독

24.02.23 #파묘


1.

꾸준히 하나의 장르를 우직하게 개척해나가는 이야기꾼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전작들의 흥행과 평가가 괜찮은 편이었기에, 

기대가 되는 감독이니까.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이기 힘든 이때, 

극장에 갈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드는 건 무척 힘든 일이지만

그런 면에서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극장에 가고 싶은 기대감을 준다.


2. 

오컬트의 핵심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다루는 것’.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들에 고통받는 인간이 등장하고, 

숨겨져 있던 진실들이 밝혀지는 것.

쉽게 말해서 걍 엄청 무서우면 장땡, 서스펜스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파묘>는 ‘묘를 파낸다는 뜻’으로 장르와 맞물려 

상당히 의미심장한 제목이다. 


하지만 정작 <파묘>는 오컬트가 아닌 영웅 서사가 결합된 

호러와 미스터리의 색이 더 짙었다.

계속해서 사건이 벌어지며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되지만

결국 관객들 마음 속에 무언가를 던지지 못한다.


국내에서 가장 흥행한 오컬트 영화 <곡성>은 그런 미덕을 잘 갖추었다.

<곡성>은 마을에 외지인이 오고부터 앞뒤가 안 맞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며 아버지가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야기다. 

오컬트에서 진정한 공포는 무서운 장면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 그래서 결국 인간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이다.

기이한 사건의 앞뒤가 풀리고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 설명될 때 그것은 힘을 잃는다.

<곡성>은 진실처럼 보이는 여러 일들을 뒤섞으며 결국 무기력한 공포에 관객을 몰아넣는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은 <곡성>의 해석을 찾아보며 그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도 영웅 서사의 흐름이 있지만 오컬트의 미덕을 제법 갖춘다.

아무도 믿지 않는 악마의 존재, 심지어 신부들도 그것이 거짓이라 말한다.

주인공 강동원은 첩자가 되어 그 진실을 확인하러 사건 속에 뛰어든다. 

박소담 안에 있는 악마의 존재를 관객이 눈으로 확인할 때 우리는 목격자가 된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그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둘을 방해한다.

그런 아이러니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눈으로 보게 만들고 그 공포에 동조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야기가 말끔히 정리되는 결말이어도 둘의 이야기를 관객만 알고 있으니 

찝찝한 느낌이 남아 있는 것.


<사바하>는 어땠을까. 

애초에 신흥 종교를 쫓는 종교 연구가의 이야기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바하>는 오컬트라기 보다는 미스터리, 스릴러에 더 가깝지만 

설명되지 않는 존재, 그것을 보고 인간들이 행하는 행동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이야기의 실마리들이 얽혀있는 작품이었다.

그런 면에서 <사바하>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파고들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밝힌다. 

인간의 시점에서는 선한 존재도 악하게 보이며 

결국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인간들에 의해 서로가 서로를 이용했다는 진실이 밝혀진다.

이성적인 연결들이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있기에 역시 찝찝한 무언가를 남긴다.


하지만 <파묘>는 너무나 깔끔하다.

처음으로 오컬트와 한국의 특수한 이데올로기가 만나 모든 것이 파면 팔수록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명확하게 이어진다.

초자연적인 기이한 존재, 무서운 장면이 무색해지는 지점은 거기서 발생한다.

애초에 능력들이 출중한 주인공들이어서 그들이 모여 사건을 해결하는 기대감은 생기지만,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주어지는 아이러니가 없다. 

우리는 오컬트를 보며 공포를 원한다. 

이해할 수 없는 공포를.

하지만 <파묘>는 모든 걸 해결한다. 찝찝함이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대중적이다. 


3.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살벌하다. 

그거 하나만 보고 가도 충분히 볼만한 작품인 것 같다.

오프닝 스코어를 보니 충분히 흥행할 것 같다는 생각.

그런데 자꾸만 감독님한테 일본 소년 만화의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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