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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Feb 23. 2023

노는 게 제일 좋아

한량을 꿈꾼다


"이것만 놀고 공부할게."

"방학인데 조금만 더 놀면 안 돼?"

매일매일 놀아도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이 제일 행복하고 학교랑 학원을 가야 하는 월요일이 제일 싫고, 그보다 더 싫은 건 일요일 저녁이라는 아이의 말에서 묘하게 공감하고 있는 날 발견한다.


 놀고 싶니, 나도 놀고 싶다


  아이들과 다르게 어른들이 '논다'에는 아무 일을 하지 않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친구에게 근황을 물었을 때 "나 요즘 놀아"라고 하는 것은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인 것처럼


 어린 시절 아빠도 노는 것을 참 좋아했다.

"징글징글해, 허구한 날 일도 안 하고 집에서 놀고 있으니 속이 안 터지겠니"

 '빈둥빈둥 놀기 좋아하는 사람'아빠에 대한 엄마의 평가였다.

  아득히 먼 기억 속에서도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엄마의 평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일은 했지만 돈은 못 벌었다. 그래도 성실하게 일했으면 운이 없었다 위로라도 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드문 드문 일을 나가고 일이 없으면 놀았다. 그렇다고 집안 살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 누워 티브이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아니면 술을 마셨다.

보통 그렇게 지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한량'이라고 부른다.

 한량: ‘관직이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
역사적으로 일정한 직사(職事)가 없이 놀고먹던 말단 양반 계층을 뜻함
김홍도 벼타작

한량을 남편으로 둔 죄로 엄마는 젊은 시절 꽤나 고생을 했었고 그 삶을 보고 자라 다짐한 것은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무조건 성실한 사람 해야지였다.

그 다짐 중에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한량의 피는 유전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걸 몰랐다.


가장 오래 일했던 회사가 삼 년이었던가.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는 것이 힘들고 규칙적으로 일하는 것이 고통이었다.

커리어와 꿈을 위해 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일의 목적은 오로지 돈, 돈만 아니었음 때려치운다는 마음을 일을 했다.

그랬다. 그 징글징글한 한량의 싹이 바로 나였다.



아무것도 하고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놀고먹는 삶을 꿈꾸는 한량 꿈나무, 진짜 한량이 적성에 딱 맞는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 같은 사람이 유배를 갔어야 했어 그럼 한양 갈 생각 안 하고 조용히 잘 살았을 텐데, 정신없는 아침 커피 한잔 편히 마실 수 없는 상황에 바삐 움직이는 몸과는 달리 머릿속은 저 멀리 떠나 있는 상상에 빠져있었다.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유유자적 살고 싶다, 친구야"

"우리 남편이랑 똑같은 말 하네, 나는 자연인이다 애청자다 나중에 산에 들어가서 살거래"

"와 나도 나도, 어디 시골에 들어가서 조용하게 텃밭 일구면서"

"놀고 있다. 텃밭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굴러간대니, 그거 중노동이야"


삼시세끼 애청자였다. 지금은 아이들 때문에 못하지만 나중에 나이 들면 저렇게 조용한 곳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적한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글을 쓰고 차를 마시는 삶, 평화로움 그 자체


"아침에 일어나면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앞에서 커피를 내려마시는 거야, 아침산책을 하고 내가 키운 작물로 밥을 해 먹는 거지 그러고 나서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하며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돈은 어디서 나서"

"돈은 음.. 로또?"


그렇게 누가 봐도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지금은 한량과는 거리가 한참 먼 노비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난 한량을 꿈꾼다. 먼 훗날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지겠지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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