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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Dec 16. 2022

시작하는 용기

어쨌든 쿠키는 완성된다.

"시작이 반이다."

이 말은 겁 많고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아주 훌륭한 마법의 주문 같은 말이다.

어찌 되었건 시작만 하면 한 것이라는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시작을 한다. 일단 시작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건의 발단 유튜브이다.

무엇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복곰', '자도르', '호주 가이버'영상 들에서 베이킹을 하는 영상을 보다 보니

'이거 나도 할 수 있겠는데’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르뱅 쿠키가 뭐야 맛있어 보이네 어디 보자 오, 버터 있어있어, 설탕 있고 박력분은 사 오면 되지’

그렇게 누덕누덕 재료가 모아졌고 오늘 쿠키를 구워 보마 하고 큰 소리를 떵떵 쳐놓았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자신감은 풀 충전되어 있었다.



재료를 꺼내 놓았다. 음, 버터가 부족하네

필요한 버터 양은 100g,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버터의 양은 63g이었다,

버터야 사 오면 되지 근처 롯데슈퍼로 씩씩하게 걸어갔다, 『금일 휴업』 오늘을 둘째 주 일요일이었다.

낭패다. 다른 곳으로 가기엔 너무 멀리 나왔다.

그렇게 도전은 예상치 못 한 곳에서 배움을 얻는다.

작은 롯데 슈퍼도 대형마트와 같이 둘째, 넷째 주에는 문을 닫는다는 것.

기운이 조금 빠졌다, 자신감 90%.


첫 단추부터 삐걱거리니 의욕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냥 하지 말까.

하지만 밖에서 녹아가는 버터를 보고 있자니 방법이 없었다. 대충 하자 버터 양에 맞추어 양을 줄이면 되겠지

40% 정도 줄었으니 전부 40%씩 줄이자. 음식은 비율이 중요하 댔다.



베이킹 주걱 그런거 없고 그냥 숟가락


버터와 설탕을 섞는다. 그런데 백설탕과 황설탕 두 종류가 필요하단다.

아니 누가 설탕을 두 종류씩 사다가 먹어 복잡하게. 

레시피 개발자의 의도를 의심하며 백설탕 자리에 황설탕을 채워 넣었다. 


천천히 레시피를 보았다. 베이킹 소다 5g

베이킹파우더만 있는데 둘이 무슨 차이지 이름이 비슷하니 성분도 비슷하겠지 5g 넣어주었다.

비율대로라면 3g정도만 넣어주어야 하는데, 에고 다 넣었네.

괜찮을 거야, 흐린 눈 하며 넘어간다. 

슬슬 괜히 한다 그랬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자신감 60%.


아, 옥수수 전분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이쯤 되니 있는 뭘 보고 재료가 다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옥수수 전분은 쫄깃한 식감을 위해 넣는 것이라는데 그런 거면 감자전분도 되지 않을까, 망하면 어떻게 하지, 하다 문득 겨우 쿠키 하나에 유난이란 생각이 들었다. 될 대로 되라지 쿠키가 망해도 내 인생은 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감자전분을 꺼내다 양념 칸에 있는 미원이 눈에 들어왔다.

망한 음식에도 미원만 넣음 살아나는데 한번 넣어볼까. 

아니다. 모험은 한두 번이면 될 것 같다. 미련을 버리고 감자전분만 넣어주었다.


뭐하나 제대로 된 부분은 없었지만 어찌어찌 구워진 쿠키는 전문가의 르뱅 쿠키처럼은 안됐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제법 그럴듯한 쿠키

실패는 했다는 증거이다.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그러셨다. 삶을 지나와 보니 미리 겁을 먹고 시작도 안 했던 일들이 후회되신다고 

책을 한 권 읽으려 해도 사람들이 추천한 책들 리뷰만 읽다 지쳐 포기한 게 수십 권 될 테고, 정보만 알아보다 따지 못한 자격증들이 산을 이루는 사람으로서 뜨끔한 말이었다.

뭐라도 했으면 실패라도 남았을 텐데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얼레벌레 시작하자라고 생각했다. 얼렁뚱땅 하다가 실패하면 말지 뭐. 하다 포기하더라도 부스러기는 남으니까


되든 안되든 일단 시작하는 용기

시작했다면 밀고 가는 용기가 절실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일단 시작하면 르뱅 쿠키는 안돼도 초콜릿 쿠키는 먹을 수 있었던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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