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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Oct 10. 2023

손톱 먹은 쥐

일 하기 싫은 날

딱, 딱 손끝에 걸리는 손톱의 느낌이 영 껄끄럽다.

분명 얼마 전에 다듬은 것 같은데 그새 손톱이 좀 자라 있었다.

좀 잘라야겠네

밥만 먹고 손톱만 자라나 귀찮게 시리 구시렁거리며 서랍 안에 있는 손톱깎이를 꺼낸다.

딸깍 딸깍

손톱을 깎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피식하고 웃는다.


그거 알아?

옛날 얘기 중에 그거 있잖아 쥐가 손톱을 먹어서 사람으로 변하는 얘기

아, 옛날얘기 알지, 그게 왜?

그냥 그 쥐가 내 손톱 좀 먹어줬으면 해서 그럼 난 그 쥐가 내 행세하고 다녀도 모른 척할 수 있는데

난 집에 숨어서 뒹굴 뒹굴 책이나 읽고 말이야, 그럼 참 좋겠다 그렇지

네가 그 쥐라는 생각은 안 들어?


'사실은 네가 쥐였다' 이제는 밈처럼 사용되는 실없는 대답에 낄낄 거리며 남은 손톱을 마저 깎았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 퇴근하고 와서도 하는 남은 집안일 하는 나날들

매일매일 정신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팔십억 세계인구 중에 게으름 순위 1246번째쯤 되는 나에게 극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 그냥 다 그만두고 떠나고 싶다. 아이의 곱셈문제지를  점하다 한숨처럼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채점 결과가 만점이었다면 즐겁게 저녁을 준비했겠지만 불행히도 결과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야 사달이 안 날 성적이었으므로 가방하나 달랑 매고 집을 나섰다.

당장에 어딜 떠날 수 있는 여행지는 없지만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나가면 적당히 뭉갤 수 있는 중고서점이 하나 있었다.

안 읽는 책도 팔 겸, 뭐 겸사겸사 구경도 하고

딱히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 팔 수 있는 책이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는 돼주었다.

책장도 비우고 머리도 비우고 오는 거야, 비록 두권뿐이지만

야심 찬 다짐은 서점 안에 들어서자마자 희미해졌다.

책을 판돈 10,800원을 쥐고 홀린 듯 영어학습코너를 기웃거렸다.

사람에게는 하나씩 콤플렉스가 있다.

나에게 영어는 그중 하나였고 언젠가는 정복해야 할 산이었으므로 마치 식후 커피믹스를 마시듯 자연스럽게 영어책 쪽으로 걸어갔다.

책제목만 봐도 영어가 늘 것처럼 정신없이 구경했다.

그러다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비우기로 했으면서 주섬주섬 책을 고르고 있는 내 모습에 저리가 났다.


하마터면 일을 만들 뻔했어

부지런해질 뻔한 행동을 반성하며 서둘러 책을 꽂아 넣고 서점을 나왔다.



주말 번화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거리를 촘촘하게 채운 사람들, 복잡한 도로, 시끄러운 경적소리, 어깨를 치고 가도 미안하다는 사과를 할 수 없을 만큼 바쁘게 거는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시장에서 산 저녁 반찬거리를 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가 손톱 먹은 쥐가 맞는 것 같다고

그게 아니면 이럴 수 없었다. 일 또 만들다니

기껏 먼 곳까지 나와서 일거리를 만들어 돌아가는 내 모습에 기가 찼다.

손톱을 훔쳐먹어서 까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쥐부지런한 본능인 건지 모처럼 혼자 나왔으면 카페라도 갈 것이지 기껏 시장에서 반찬거리 쇼핑이라니


그렇게 그날외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럴 거면 영어책 한 권 사 올걸 그랬나 보다 후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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