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눈이 떠졌다.
AM 3:12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새벽
아직 새벽이네. 베개에 얼굴을 비비며 다시 잠들려고 하는데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속이 울렁거린다.
아 나 어제 술 마셨지
순간 차르르르 끊겼던 필름이 드문드문 이어지며 어젯밤의 추태가 조각조각 떠올랐다.
"으악!! 미쳤어 정말"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던 만취를 겪었던 적이 딱 두 번 있다.
첫 번째 만취는 사회초년생 때.
마침 복날이라 점심 회식으로 근처 능이버섯백숙집을 갔었다.
모락모락 먹음직 스런 능이버섯 백숙을 앞에 두고 몸보신에 좋다는 인삼주를 한잔씩 마시라며 주었다. 그게 그렇게 향긋하고 달달해 한입에 털어 넣었던 게 상사의 눈에 인상이 깊었었는지,
"오~신입 잘 마시는데 한잔 더 시켜줄까?" 했더랬다.
그렇게 한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한주전자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좋다 좋다, 알딸딸하니 참~좋다 피식피식 웃으며 비틀비틀 회사로 복귀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땐 몰랐지 낮술은 어미아비도 못 알아본다는 것을
그렇게 겁 없이 부어마신 인삼주는 대낮에 사무실에서 구토파티를 열었고 화장실까지 갈 힘도 없어 책상에 엎드려 게워내는 사상 초유의 추태를 부리고 말았다.
하아.
미쳤지 정말
각 잡고 조심해도 모자란 신입주제에 몸도 가누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는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같이 사무실에 일했던 사람들과 이제는 길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 정도로 가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런 흑역사는 그날로 끝인 줄 알았고 그것으로 끝이 났어야 했는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었던가, 술만 들어갔다 하면 통제가 안 되는 얄팍한 자제력을 가진 나는 또 하나의 흑역사를 쓰게 되었으니,
"우리 한잔해야지"
일이 끝난 후 같이 일하는 동료와 가볍게, 정말 가볍게 한잔 할 생각으로 근처 횟집으로 갔다.
그날따라 바빴고 그날따라 입맛도 없었기에 대충 때운 점심식사 이후 빈속이 문제였다.
차라리 뭐라도 집어먹고 갔음 나았을까 후회해 봤자 이미 벌어진 일
빈속에 짠 하고 한잔 안주 하나 먹고 마셔 마셔하고 짠 하고 두 잔 두 잔이 한 병이 되고 한 병이 두병이 되고 그렇게 나는 한 마리에 개가 돼 갔다.
"정신 차려봐, 갑자기 왜 그래"
"우웨엑"
"집이 어디야. 아휴 쫌 똑바로 좀 서"
"아이고 나 죽네"
철퍼덕
"집이 어디냐고!!"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죽어버릴까.
멍하니 생각했다.
그냥 죽자. 죽는 게 낫겠다.
아침까지 깨지 않는 숙취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수치심은 몰려왔다.
그 와중에 살겠다고 숙취해소제를 주섬주섬 챙겨 먹으며 또 한 번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미쳤지
머리를 쥐어뜯어 봤자 해는 떠올랐고 내가 싸지른 추태를 수습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살아있었네 속은 괜찮아?"
"네.. 어제 제가 좀 진상이었죠"
"쌤 가다가 넘어지는 거 잡다가 나도 넘어져서 다리 멍든 거 빼곤 괜찮아. 가게에서 토한 건 기억나고?"
"미쳤었네요 제가"
"그거 치우느라 내가 죽는 줄 알았잖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술 안 먹으려고요. 앞으로 커피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내가 술을 또마시면 개야 개
소주에 시옷자만 나와도 울렁거린다니까
이제 진짜 끊을 거야
비웃는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 다짐했다.
"진짜라니까? 아 믿으라고"
술은 해로운 거야 나 진짜 반성했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
냉장고에 있는 맥주 한 캔을 따며 생각했다.
밖에서만 마시지 말자
퇴근 후 맥주 한잔은 정말 인간적으로 봐줘야 한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