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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Oct 28. 2020

수직적 공간을 너머(영화 '설국열차')

(영화 속의 클래식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영화 ‘설국열차’ (2013)

주연 :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등/ 감독: 봉준호

아카데미 작품상? 우리나라 영화가?” 죽기 전, 이러한 순간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에 오랜만에 시상식을 지켜보던 중 감독상을 받는 순간 혹시나 했다. 그리고 드디어 수상의 순간, 시상식을 중계하던 전문가는 탄성을 질렀으며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작년 아카데미 작품상의 영예는 멕시코 감독, ‘델 토로’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가 차지했었다. 그는 시상식 소감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나에겐 외국어 영화였다’며 그동안 아카데미의 편협성을 비판했었다. 그리고 2020년, 아카데미는 그들의 과거를 반성하듯 감독 봉준호가 만들어 낸 신랄한 계급 비판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살펴보면 이미 이미 봉준호는 이러한 계급사회를 스크린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비판하고 조롱하였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과 더불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바로 그의 2013년 작 ‘설국열차’다.


- '기생충' 이전 수직적 사회구조를 은유로 담아내었던 영화 '설국열차'


기후 변화를 해결하려다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세상이 종말하고 남아 있는 인류는 대륙을 끊임없이 횡단하는 기차에 탑승한 자들이 전부다. 이러한 곳에도 계급이 있어 기차를 지배하는 윌포드, 그리고 마지막 칸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곳의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이러한 상황을 부수고자 앞칸을 행해 한 칸씩 발걸음을 옮긴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보여주는 인류 진화의 은유적 표현이며 마침내 현대 체제가 지닌 모순과 문제점을 보여주며 기차는 그러한 것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실현한 공간적 장치인 것이다. 커티스는 이러한 혁명적 발걸음을 위하여 기차의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와 그의 딸 요나(고아성)를 깨우고 그렇게 그들은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간다. 각 칸마다 모든 것이 은유로 가득한 장면이 지나고 그렇게 도착한 윌포드의 자리, 하지만 여기엔 윌포드가 마련한 놀라운 반전과 잔인한 현실이 숨어 있고 이제 커티스에게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어렵게 앞으로 나아가던 커티스와 그 일행들은 유명한 양갱 장면을 지나 어느 평화로운 칸에 도착한다. 회색과 금속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푸르른 공간, 이곳에는 각종 식물들이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고 그곳을 지키는 여인은 한없이 평화로운 표정이다. 그리고 이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으니 바로 작곡가 ‘바흐’(J.S. Bach)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이며 여기서도 바흐의 음악은 모든 인류 역사의 시작이며 모든 생물은 질서를 바탕으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남긴 건반악기를 위한 마지막 작품으로 총 연주 시간이 무려 50여분에 이르는 대작이자 변주 양식의 작품에 있어 최고의 위치에 자리한 걸작이다. 하지만 이토록 경이로운 작품의 탄생에 얽힌 일화는 정겹고도 인간적이다.


- 모순적 평화가 흐르던 공간,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대한 작곡가의 역작이 흐른다.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저링크’ 백작, 그는 이전 바흐가 작센 공작의 궁정 음악가가 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로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의 연주자를 고용하여 그의 연주를 통해 잠자기를 시도해 보지만 허사였고 결국 바흐에게 수면을 위한 곡을 의뢰, 바흐는 그에 대한 감 사의 마음을 실어 이 곡을 작곡하게 되니 은인을 위한 자장가였던 셈이 다. 백작은 이 곡을 자신을 위한 것이라며 좋아했다곤 하지만 실제 불면 증 치료에 효과를 보였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이렇듯 소소하면서도 흐뭇 한 일화를 지닌 <골드베르크 변주곡>, 하지만 바흐가 누구인가? 이처럼 사소한 작곡 배경에도 불구하고 음악사에 남을 명곡을 탄생시키니 과연 음악의 아버지인 것이다.

곡을 좀 더 들여다보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첫 곡 '아리아'로 문을 열고는 30개의 변주를 지나 다시 한번 같은 선율의 ‘아리아’로 그 문을 닫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마치 어느 인생의 시작과 끝을 음악으로 지나온 듯 지닌 구조의 신묘함이 놀랍다.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는 듯 하지만 사실 30개의 변주가 각기 엄격한 틀 속에서 한치의 어긋남 없이 음악을 쌓아간다는 뜻이다. 곡은 16번 변주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1부와 2부가 나뉘었고, 모두 10차례에 걸쳐 같은 조로 구성된 3개의 곡이 단순한 나열이 아닌 화성적 치밀함을 바탕으로 배열되어 있는 등 단순한 자장가로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을 만큼 과학적이며 엄격하다. 그러다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듯 견고하던 구조는 갑자기 마지 막 30번 변주에 이르러 ‘자유롭게’(쿼드리 베트 quodlubet)가 놓이며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리는 파격을 선물하는데 이는 바흐가 던지는 음악적 농담이자 “아, 뭐 꼭 지킬 필요는 없어, 아름다우면 되지” 하며 건네는 다독임이며 그의 인간적인 따스함이다. 


- 바흐가 인류에게 남긴 따뜻한 위로,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해 낸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결국 영화는 벗어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 속 잔인하면서도 힘겨운 과정은 사실은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모순을 타파하려던 주인공도 그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한 인간일 뿐이다. 하여 그는 시험에 들었고 지배자가 원하던 것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이러한 그의 선택은 지금까지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던 모두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다른 관점을 불러온다. 앞과 뒤라는 편협함만이 존재하던 곳에서 이제는 열차 밖이라는 다른 공간에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눈이 멀어버린 인류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좀 더 시야를 확대한다면 계급이나 진화, 그리고 발전이라는 것을 넘어 선 어떠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피력하는 것이다. 앞만 보며 내달리던 열차는 전복되어 그 속에 속하던 인류의 역사는 이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새로운 인류를 상징하는 요나는 모든 것이 하얀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벗어나면 죽을 것만 같은 그곳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는 ‘하얀 곰’을 보여주며 새로운 시대와 신 인류를 알린다. 


- 뒤집힌 열차, 앞과 뒤만 존재하던 시선이 새로운 세상을 향한다. 벗어나면 살 수 없을 것만 같던 그곳, 새로운 인류의 첫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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