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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타 Nov 22. 2022

어느날 강남에 뚝 떨어진 퀴어

어느 저소득 저탄소 프리랜서, 퀴어 지식 노동자의 생존 전략

8월 24일

동생이 자기 집에서 지내게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이 동네에 살 일이 없었을 것 같다. 이곳은 한강의 이남, 강남구의 옆에 붙어있는 서초구. 양재천을 끼고 있는 양재동. ‘강남’에 살기로 한 것은 나로서는 모험이다. 이제껏 나에게 강남은 말하자면 ‘천박한 졸부들의 땅,’ 불과 수십년 전에는 논밭이었던, 축적된 역사와 문화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 너무 혼잡하고 물가가 비싼 곳이어서 정이 주지 않았던 것도 있다.


이런 시니컬한 평가에는 묘한 콤플렉스도 작용하고 있다.

나는 한강 이북에서도 가장 변두리, 북동쪽인 노원구에서 나고 자랐는데, 거기에는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모방한 ‘중계동 은행사거리’라는 게 형성되어 있다. 은행사거리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자식교육에 대한 열성은 대치동 부모들에 뒤지지 않지만, 그들이 실제로 가진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한참 낮기 때문에 “우리가 대치동에 못 살지만 꼭 성공해서…” 같은 자격지심을 물려줬다. 특목고 진학을 위해 나도 중학교 시절 몇 년 동안 은행사거리에 처박혀 지냈다. 이래저래 강남권 거주는 의외의 전개. 좀 얼떨떨하게 시작했다.


하루이틀 누룽지와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나는 머릿속에 정리했다. 강남권에 대한 나의 선입견들이, 적어도 내가 살 집 근처에서는 반전 됐다는 것을. 동생의 집(신축 빌라 3층에 3세대 중 하나로, 전용면적이 30제곱미터 정도 된다)이 위치한 양재 2동은 상업 시설, 주거 지역, 공공 시설이나 녹지가 적절히 섞여 있다. ‘서민’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도 과반수 살고 있는 그럭저럭 평범한 동네이다.


이곳에서 나는 ‘저소득 저탄소 프리랜서 지식 노동자’로서 생활 전략을 세웠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


오래된 토박이 가게들을 이용하며 상인들과 안면을 튼다. 철물점, 수선집, 문구점, 할인마트, 미용실 등.

서초구에 도서관들이 많지만, 일일이 찾아다니면 그 때마다 돈과 체력이 낭비되니까, 집 앞 근린공원에 있는 무인 대출 부스 ‘스마트 도서관’을 활용한다. 원하는 책을 거기로 다 배달시켜서 한꺼번에 대출-반납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나올 법한 가게들은 가격이 너무 부풀려져 있어서 사먹기 억울하므로, 친구들이 놀러오면 양재천이나 시민의 숲에서 만나고 집에 데려와서 먹인다. 동생이 ‘회식의 메카’라고 부르는, 온갖 음식점 골목들이 우리집을 둘러싸고 있지만 채식 지향인 나에겐 어차피 안 먹는 것들이 대부분. 맛살과 햄을 뺀 야채 김밥을 자주 사먹는다.

매헌 초등학교 운동장 앞에 공용기구를 활용해서 운동하고 근린공원 옆에 언남문화체육센터 헬스장에 등록한다. 센터 지하에는 매일 백반 메뉴를 바꾸어 내는 ‘마음식당’이 있는데 통유리 너머로 실내 수영장이 내려다보여서 특이한 분위기를 낸다. 밥값은 시세 9000원보다 싼 7500원이다. 나는 그냥 이런게 편하다. 


하루는 무심코 산책하다가,

독일 소도시 같은 차분함과 조용함이 필요할 때 가기 좋은 곳을 발견했다. 바로 종교시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포이동 성당과 구룡사가 있다. 그야말로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데, 금으로 도금된 거대한 불상을 들여놓은 구룡사가 돈이 더 많아 보였고, 포이동 성당은 각종 봉사조직들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조직도에서 ‘글로리아 청년 성가대’ 이름표를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곧바로 엉뚱한 상상이 안에서 솔솔 피어났다. 나는 성가대에 들어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한다. 누군가 연애나 결혼 여부를 물어오자 태연자약하게 답한다. 결혼은 안했고 연애에는 관심이 지대하다고. 성적 지향이 팬 섹슈얼이고, 오랫동안 만나고 있는 네스팅 파트너가 있다고. 나는 생글거리며 말하고, 사람들은 당황해서 내 눈을 피한다. 조용한 소동이 일어난다. 그야말로 엉뚱한 상상인데, 나는 단번에 즐거워져서 마스크 뒤에서 킥킥거렸다. ‘그렇게 사람들을 골탕먹이면 재밌겠군.’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상당이 이상해진(queer) 채로 서울에 돌아왔다는 것을.

8년 전 독일로 떠나기 전에 실제로 일년쯤 청년 성가대 단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었지만, 한 남성 단원이 고백해 왔을 때 커밍아웃을 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아예 선택지에 없었다. 이중 생활은 당연했고 익숙했다. 지금 나는 망설임없이 알려줄 것이다. 커밍아웃도 아니다. 그냥 캐쥬얼한 자기 소개를 할 것이다.


나는 정말 변했구나. 꼭 섹슈얼리티뿐 만이 아니고 그냥 전반적으로 이상해졌고 느슨해졌다. 특정한 규범 체계에 맞추는 조심성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이 특정한 아비투스에 속해 있다는 관념도 없어졌다.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는 단독 행동이 편하다. 나에게 편안한 것이 우선이고, 어디서든 나답게 행동하는 것이 편안하다. 편안해졌다.

'경로석' 표지판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뛰노는 아이들. 왼쪽 배경에는 '코딩놀이터' 부스가 있다. 가만보면 세상은 꽤나 퀴어하다. 이상하다.  


그렇담, 퀴어가 퀴어함을 감추지 않고 살아가기에 

강남은 퀴어한가? 강남권에는 탁월한 상업 공간들이 많다. 자본력을 집중한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 실험이나, 기술과 예술을 엮어보이려는 플래그십 스토어, 가장 최신 기술을 도입한 병원 같은 곳들. 탁월함다름이 될 수 있는가? 세수가 상대적으로 풍성해서 구민들을 위한 공공 서비스가 안온하다. 안온함똘레랑스로 나아가는가? 


최근에  강남역 근처에서 열린 기술 융합 아트 그룹의 밋업에 갔을 때 거기 모인 스무명 남짓의 사람들이 꽤나 컬러풀해서 즐거웠다.  한달동안 SNS 채널로만 소통하던 멤버들은 주로 web 3.0 분야에서 일하는 개발자나 디자이너, NFT콜렉터나 투자자들이어서  은연 중에 ‘나와 다른 버블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실물로 만나보니 다들 제각각이었다. 

동성  애인과 함께 살게되어 너무 행복하다며 그걸 소재로 작업을 한다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었고, 분홍색 테니스 유니폼을 쫙 빼 입고  나타난 사람은 오타쿠와 퀴어의 어떤 전형처럼 보였다.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길 주저하거나 배제하는 분위기도, 혐오발언도 없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강남권에서 먹고 모이는 것은 익숙한 일로 보였다. 자신과 다른 성별의 아바타를 내세워 메타버스에서 노는 일종의 퀴어링에도 마찬가지로 익숙할 것이다. 

얼마전  애인과 자금을 합쳐 수도권에 주택을 짓고 개, 고양이와 함께 살며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먹는다는 레즈비언 친구 M도 생각났다. 중산층 퀴어의 성공 모델 같은 그녀라면 자신의 테슬라 전기차를 몰고 주말마다 강남권에 놀러나올 수도 있겠다. 그 그림이 크게  어색하지 않다. 


나는 그날 밤 열한시쯤 밋업 장소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기본 요금에서 조금 더 나왔고, 이 지역에 살면 이런게 편하군, 이라고 중얼거렸다. 



*이 글은 베를린 공대 CRC 1265 연구단의 의뢰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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