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 생일을 하루 앞두고 언니, 동생, 조카랑 형부가 집들이 겸 집에 놀러왔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깨끗하게 잘 꾸며진 집을 짜잔,하고 보여주고 싶어서 일요일인데도 아주 일찍 일어나 청소와 정리를 서둘렀다.
30대에 들어선 이래 내게 '무조건적 사랑'을 교환하는 원가족 멤버는 언니와 동생인 듯 하다.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긴장감이 있다. 무언갈 더 증명해야할 것만 같은. 내가 능력에 비해 잘 풀리지 않았다고 여전히 속상해 하고 당신들 보기에 걱정스러운 것들은 여전히 고치려 들고, 지금의 내 삶을 임시방편 취급하신다.
내 새로운 공간 속에서 자매들의 행동거지를 바라보며 사랑받는 기분을 여러 번 느꼈다. 언니는 주방일을 잘 안하는 사람인데 수박을 자기 집에서 두 가지 버전으로 미리 잘라왔고, 동생은 내가 생크림케이크를 최고로 친다는 것을 기억했다가 사왔다. 무심코 한 말, 설거지할 때마다 사는 게 참 고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듣고 점심 먹은 설거지를 해주거나 작은 식기세척기는 당근에도 매물로 많이 나온다며 하나 사도 되겠다고 위치를 봐준다.
찻길에 널린 흔하디 흔한 스파크, 그것도 10년된 구형 모델을 내 첫 차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볼거리인 양 우르르 지하주차장까지 보러 내려가는 모습을 볼 때도 내 안에서 사랑이 흘러나왔다. 차 문을 열어주었더니 올라타보고 빙 둘러 살펴본다. 언니와 조카는 운전석에 겹쳐앉아 공연히 경적도 몇 번 울려보면서 그 요란한 소리에 자기들이 제일 자지러지고.
모든 기념일에 가장 핵심적인 선물은 손편지이건만 아무도 써오지 않았다. 어른들에게 억지로 시키긴 좀 그렇고, 교육적인 활동 삼아 조카에게 편지지를 꺼내주며 쓰게 했다. 내용이 일품. 집들이에 걸맞게 집에 대한 나름의 인상을 적고 생일 축하 문구도 서두와 말미에 잘 썼다. 맞춤법 틀린 곳이 하나도 없다.
특히 "누룽지도 이모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구절이 내겐 너무나 뭉클한데,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정곡을 건드리는 말이다.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힘겨운 어른, 이제 서른 다섯살 먹은 큰이모에게 "행복해"도 아니고 행복하게 "살면" 자기에게도 "좋겠다"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냉장고에 편지를 턱 붙였다.
어제 모임에 엄마 아빠가 없어서 신경이 쓰였는데, 사실 내가 일부러 초대하지 않은 것이다. 얼마전에 엄마가 나를 너무 세게 할퀴는 무례하고 못된 언행을 해서 불쾌감도 야속함도 남았다. 내 집에 와서 그렇게 굴면 아무리 엄마라도 또 올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 내가 차로 30분 거리에 살게 되었어도 못 온다고, 본때를 보여주려 했다. 운전할 줄 몰라서 지하철로 90분 걸려 오는 아빠는 그냥 엄마가 못 오니까 덩달아 못 온 것이고.
천만다행히도 두 사람은 어제 아빠의 큰누님 생일파티가서 더 잘 얻어드셨다.
그러나 애써 초대하지 않은 것이 무색하게 엄마는 여전히 이 모임에서 존재감을 떨친 것만 같고, 나는 내가 손님 대접하는 모양새조차 엄마를 똑 닮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토속적인 메뉴를 선정하고 고명에 신경을 쓰는 것도 (도토리묵국수에 고명을 다섯가지 얹었다), 정성을 발휘해 놓고도 미진함을 복기하며 후회하는 것도 똑같다. 김치부침개라도 사다가 차릴 걸. 비록 저칼로리 비건이지만 과자도 있는데 아이에게 꺼내줄 걸, 옥수수 강냉이, 쌀로별, 아이비.
엄마 아빠에 대한 미안함은 다음날까지도 가시지 않아, 오늘 나는 일어나자마자 서랍을 뒤져 두 사람이 나온 사진을 찾아 냉장고에 붙인다. 다국적 다문화의 온갖 친구들 사진은 다 있으면서도 부모님 사진은 한 장도 안 붙였던 것도 지난번 일에 앙금이 남아서였을까. 아니면 나는 그냥 그런 딸일까.
동생이 어제 거실등에 붙여놓은 금박이 풍선들이 아직은 빵빵하다. 이게 다 쪼그라들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또 한 바퀴 돌아, 나는 이제 서른 다섯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