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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Jan 22. 2021

하루의 시간.

매일 주어지는 똑같은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요즘 뭐하고 지내?"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질문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내가 농장을 정리한 걸 아는 부류. 이 부류의 사람들은 보통 내가 농장을 정리했다는 걸 알만큼 가까운 사람들이라 내가 애도 둘이고, 애들 나이도 어떻게 되는지 거의 다 안다.


"애들 키우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해요."


두 번째는 원래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부류. 보통 나에게 또는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거나, 그냥 예의상 물어보는 질문들. 어떤 이들은 내가 결혼을 했는지도 모르거나, 애가 둘이란 사실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사업 준비하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어보는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이 알고 있는 나의 정보에 따라 나의 대답도 바뀐다. 매번 똑같은 대답을 했더니, "어? 네가 왜 그런 걸 해?"라는 식의 대답을 종종 들었더니, 질문자 별로 대처하는 방법이 생겼다고나 할까.




집에서 책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사회 현상을 "공부"하는 것이 자꾸만 누군가에게 (아버지라고 이야기했던가?) 노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 어머니와 삼촌의 추천으로 "티(tea)"에 대한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주로 서울에 있는 그런 수업들에 대한 참여가 부담되었는데, 마침 "티 블렌딩 과정"이 코로나로 인해 시범적으로 줌 수업을 통한 온라인 과정이 생겼다고 해서 들어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미각에 대한 감각이 둔한 편이라, 딱히 음식의 맛과 향을 따지면서 먹는 편이 아니다. 그리고 주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인 데다가, 커피를 포함한 음료는 무조건 달아야 한다는 주의의 사람이다. 또 얼. 죽. 아 이기도 한데, 혀와 입천장, 목구멍이 유난히 여려서 잘 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유약한 몸을 두고 부모님은 항상 "늘 찬 거를 즐겨먹어서 네가 배가 아픈 것이다"며 핀잔을 주신다.


배가 자주 아픈 것도, 입안이 잘 데이는 것도 다 내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날 그렇게 "낳아준"사람들이 가장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또 어머니는 그럼 따뜻한 음료를 식혀서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이번에 수업을 들어보니 음료는 "뜨겁게, 차갑게" 설계되어 만들어지는 만큼, 만들어져 나온 그 상태일 때 즐겨야 최고의 맛과 향미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뜨거운 것은 즐길 수 없으니, 차가운 것을 즐기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늘 가는 곳, 늘 먹는 것만 즐기는 습관도 있어서 다양한 향신료나, 향미에 대한 경험이 많이 없다 보니, 수업 시작 일주일 만에 큰 고비가 왔다.


매주 주제에 맞추어 스스로 목표를 설계한 후 티를 블렌딩 한 다음 내가 이름 지은 티의 이름, 레시피와 함께 맛, 향, 색, 티의 캐릭터와 질감 등을 발표하거나 메일로 보내는 숙제가 있다. 그리고 블렌딩에 도움이 되라고 여러 부재료들이 함께 따라오거나 추천 부재료들을 맛보거나 향을 알아둘 것을 권한다.


후각 자체가 둔한 편은 아니라 향을 맡는 것은 크게 어렵지는 않다. 문제는 분명히 "아는 냄새"인데 그 냄새의 이름을 모르겠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마치 길을 가다가 잘 아는 얼굴을 만나 서로 정말 반갑게 인사하고 근황도 묻고 헤어졌는데, 저 사람 이름이 뭔지 어디서 만난 사람인지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은 상황이랄까.


매주 수요일에 무려 4시간 반 정도 이어지는 (그나마 현장 수업이면 테이스팅 등을 직접 해보는데, 온라인 강의라 "짧은"거라고 한다.) 수업을 앞두고 예습을 한답시고 다음 강 부재료를 우려서 맛보았다. 분명히 내가 아는 아리고 "매운"향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맛을 보고 고민을 해도, 이 친숙한 매운 향의 "이름"을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해당 부재료를 블렌딩 했다는 티백이나 티 캔 상품 수십여 종의 상품설명서를 읽어보았다. 하나같이 "톡 쏘는 향"이라고만 쓰여있었다.  


그런식으로 고민을 하다 보니 부재료 하나로 마른 재료의 향을 맡고 뜨거운 물에 우리고 다시 향을 맡고 맛을 느끼고 노트하고 테이스팅 컵을 설거지하고 말리고 하는 게 하나당 최소 30분, 부재료는 14가지. 내가 왜 이걸 하루에 다하려고 했는지. 8시간이 걸린 테이스팅과 숙제를 하면서 결국 밤을 꼴딱 새워버렸다.


사실 변명을 해보자면 아이들 때문에 오후 시간은 테이스팅이 아예 불가능하기는 하다. 80도에서 95도의 물을 계속 데우는 데다가, 좁은 집에서 후루룩 거리고 있으면 아빠 뭐하냐, 나도 마셔보겠다, 색이 예쁘다, 왜 난 안돼냐, 등으로 실랑이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매일 조금씩 나눠서 하면 되는데 첫 주부터 벼락치기를 했다. 역시 공부는 벼락치기를 해봐야 반성하게 된다.




셀프 블렌딩 숙제까지 모두 마치니 아침 6시 반. 이제는 내가 느끼는 맛이 그 맛이 맞는 건지, 내가 꿈을 꾸는 건지도 모르겠는 정신상태가 되었다. 오전 10시에 수업이 시작하니, 얼른 조금 자두 었다. 대학생 이후로 십수 년 만에 "공부"하다가 밤새운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이틀을 헤롱 거리느라 브런치에 글도 못썼지만.


다행히 9시 반에 벌떡 일어나 늦지 않게 수업을 듣다가, 날 그렇게 애태운 매운 향은 "진저(생강)"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게 엄마가 주말에 내려가면 생강을 옅게 우린 물을 주셨더랬는데, 이게 뭐냐고 물으면 안 마실까 봐 그런지 꼭 재료명을 비밀로 하셔 가지고는, 이렇게 날 괴롭히시다니.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책상에 앉아 밀린 일기를 썼다.


"시간은 항상 간절히 필요할수록

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느낌이다.


매일,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이

왜 어제는 남을 때도 있고

오늘은 이렇게 부족할 수 있을까.


내가 앞일을 모르니

무엇이든 미리미리 해둘 수 없기에,

또 그러기에는

내가 내키기 않아서 자꾸 미루다 보니.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도 이런같다

오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일은 어색한 사람이 된다.


나에게 닥친일에 집중하느라

미리미리 잘 다져두지 않고

상대가 나에게 보이는 호의

가볍게 받고만 넘어가기 때문은 아닐까


매일 주어지는 하루의 시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얼마 전에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 첫째 아이가 새로 옮긴  유치원에서 적어오라고 보낸 원아 기본 정보란에 있는 "부모 직업"란. 내가 없는 사이 아내 혼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냥  습관처럼 "축산업"이라고 써 보냈다고 한다.


우리 딸은 아마 질문 세례를 받을지도 모른다. 축종은 무엇이냐, 농장의 크기는 얼마만 하냐 (축종을 몇 마리 정도 키우냐 등), 혹시 다른 직원들도 있느냐 등의 유도질문으로 경제력을 파악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아내가 괜히 그랬나 보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우리 애가 "무시"당하면 어쩌냐며.


"아니, 우리 돈으로 애를 보내는데 왜 무시를 해. 그리고 축산업이 왜 무시당하는 직업이야."

"그래도 사람들한테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애들은 그러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주도록 노력해야지."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알아?"

"어렵지, 바로 자기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으니까."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부모는 직업이 미천한 부모가 아니라 꿈이 없는 부모가 돼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애초에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부모가 부끄러운 부모가 아닌가? 그리고 축산업으로 일반 직장인보다 많이 벌 때도 있었는데 소득과 상관없이 직업이 부끄러울 수 있는 것인가? 무슨 사채업이나, 주식사기나, 피싱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40년의 성실의 결과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성실하지 않은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으신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직접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이든 인정해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나의 꿈, 목표를 명확히 알고, 즐기면서도 풍요롭게 사는 그런 방법은 절대 없는 것인가.




요즘 부쩍 차만 타면 지루해하는 아이들은 차에 탄지 5분만 지나도 물어본다.


"다 왔어?"


하루는 첫째가 유난히 신나서 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질문도 하고 퀴즈도 내고 노래도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벌써 다 왔어?"


그래서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시간은 상대적인 거야, 네가 즐겁거나 절박할 때일수록 빨리 가지. 그러니까 우리 딸이 지루하거나 하기 싫은일 수록 즐기려고 해 봐 그러면 시간도 금방 가고, 즐기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잘하게 되어있어."




오늘을 나는 즐기고 있나요. 아니면 절박한가요.

혹시 여유롭지는 않요.


나의 시간이 모자라서 아쉬운가요, 걱정인가요.

여유로워서 남는 시간이 있다면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에 도전해보세요.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을 즐겨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너무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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