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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Feb 19. 2021

아빠의 책상.

다람쥐 같은 아이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책상은 아이들에게 절대 접근금지구역이었다.


일단 바퀴가 달려있어 굴러가면서 또 빙글 돌아가는 의자가 위험했다. 또 힘들게 모아 온 수십 자루의 연필은, 그 형형색색의 색깔 때문인지 아니면 끝에 달린 지우개 때문인지 아이들이 꼭 만져보고 싶어 하는데, 아이들이 호기심에 만져보기에는 연필심이 너무 연약했다.


그리고 사실 난 누군가 내 물건을 건드리는 것 자체를 매우 싫어한다. 자발적으로 빌려주기도 하지만 허락 없이 손대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데, 어제 첫째 아이도 유치원에서 친구가 편지를 써서 자기 가방에 넣어주려는 걸, 자기 가방에 손대는 줄 알고 소리를 질러서 싸웠단다. 왜 그런 것만 아비를 닮는지. 아내는 물건 소유의 개념에 정말 관대한데, 그래서 그렇게 어디엔가 뭔가를 두고 오거나 빠트리고 다닌다.




어느 날부터인가 압수한 아이들 물건들 (누나를 위협하는 막대기라던지, 끊임없이 먹으려 드는 젤리 같은)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면서 내 책상은 아이들이 아빠 몰래 꼭 들러가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첫째가 둘째에게, 둘째가 첫째에게 빼앗기기 싫고 혼자 몰래 가지고 놀거나 먹고 싶은 것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요즘에는 첫째는 어디에선가 리본 줄이나, 고장 난 머리핀 같은 것을 주워 와서 내 책상에 올려둔다. 고쳐달라거나 새로 만들어 달라는 뜻이다. 아빠의 역할도 군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너무 할 줄 아는 일이 많거나 맡긴 일을 잘하기 시작하면 일이 끝도 없이 생긴다. 다만 집안에서는 보상으로 아이들에게 뽀뽀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엊그제도 첫째 아이에게 사준 슬링키(칼라링, 무지개 링)를 둘째가 밧줄처럼 끌고 다니다가 다 엉켜 버렸다.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자 나는 구시렁거리기 시작했고 아내는 내 손에서 빼앗으며 "내버려 두어 내가 할게." 하더니 그대로 두고는 아이들에게 "이제 고장 나서 못 가지고 놀아." 해버리는 게 아닌가.


그렇게 쉽게 포기를 가르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장난감에 따라서는 각각 물건을 다루는 자세를 익힐 필요도 있다는 점을 교육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갈한 뒤 다시 가져와 풀어냈다.


분명 나는 어떤 교육적인 방법과 모범을 위해서 더 열심히 한 것이지만, 아빠가 또 화를 낼 것이라는 걱정 때문인지 그 장난감은 없어져 버렸다. 의도와 행동, 말투가 일치해야 교육이든, 조언이든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려 했건만 늘 배우는 것은 나다.


둘째는 언제부턴가 공룡 한 두 마리를 가져다가 올려둔다. "아빠 이거 좋아하지?" 하면서 내가 독서 중일 때 가져다 두는 적도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으면 언제 올려두었는지 모를 공룡이 하나씩 있기도 하다. 그 외에도 어디선가 무언가를 자꾸 주워와서 올려둔다. 끈 뭉치, 머리띠, 젤리, 장난감 등등.


처음에 몇 번 공룡을 가져다줄 때는 그거로 같이 놀아달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읽던 책을 잘 표시해서 덮고 공룡을 집어 들고일어나면 아이는 정작 다른 것을 하고 놀거나 엄마 품에 안겨있었다. 게다가 어디에 쓰는 것인지도 모를 물건들을 올려둘 때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둘째 성격상 그냥 뭔가를 자꾸 올려두는 누나를 따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어쩌면 설날에 받은 세뱃돈을 엄마에게 맡겨두는 심리는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나의 어머니는 정말로 내가 받고 기억에서 잊었던 모든 용돈을 모아 통장에 넣어서 내가 귀국했을 때 주셨다. 2008년 5월에 귀국했던 나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으로 전 세계 주가가 떨어졌을 때 그 돈의 일부를 주식에 투자한 뒤 2009년 4월에 입대를 했고, 전역을 했을 때 주식가치는 3배가 되어있었다.


명절에 세뱃돈을 받으면 당장은 사촌들과 놀고 싶고, 입고 있는 한복에는 주머니도 없고, 어디에 두어도 나는 잊어버릴 것 같고, 또 그 가치도 제대로 모를 때, 엄마에게 맡겨두면 언젠가 반드시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잊어버리기 싫을 물건이나, 아빠에게 맡기면 반드시 고쳐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도 책상에는 젤리 한 봉지, 공룡 두 마리, 형광 실뭉치, 그리고 쓰라고 주었지만 행동으로 실천은 하지 않는 첫째 아이 표 "효도쿠폰"이 있다.



어느 날은 둘째가 자기가 아끼는 공룡이 없어졌다며 한참을 애타게 찾았더랬다. 결국 어린이집에 가져가고 싶었던 그 공룡은 못 가져가고 말았는데, 그날 외출했다가 내 코트 주머니를 보니 거기 들어있었다. 제 녀석이 언젠가 옷방에 들어와 넣어둔 것 같은데 잊어버린 모양이다.


다람쥐는 겨울잠을 앞두고 도토리를 열심히 모아다가 여기저기 파묻어두고는 대부분 잊어버리는데 그래서 도토리나무 숲이 유지된다는 글을 읽었다. 아빠 옷, 책상에 넣어두고 올려두고는 아끼는 장난감을 잃어버렸다고 서럽게 우는 아들을 보니 다쥐 같기도 한 게 너무 귀엽고 하루 종일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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