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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Mar 05. 2021

안다는 것.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상태.

그 간 코로나로 오랫동안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또 만나지 않으니 연락도 뜸해졌다. 그래도 생일이라고 카톡이나 문자, 전화를 주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 고맙고 괜히 미안했다. 그래서 어제는 날을 잡고 몇몇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 정말 카톡도, SNS으로도 왕래가 없어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모르던 사람들에게.


역시 그 사람들 모두는 내가 작년 7월부터 농장을 정리하고 집에서 지내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대부분 자녀들이 둘째까지 있는데, 첫째는 6-7살, 둘째는 2-4살이다. 애초에 아이들 덕분에 알게 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근황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도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아이들 나이 덕분에 "지금은 유치원에 들어갔겠네요, 지금은 한창 떼를 쓰겠네요, 지금은 어린이집에 다니겠네요, 사립이에요 병설이에요?" 등과 같은 육아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은 잘 갔다.


그중에 한 지인이 연락이 뜸해지기 전 온라인으로 미국의 한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던 것이 생각이 나서 안부를 물었다. 이미 진작에 학위 수여까지 끝났단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봐주었다. 나도 농장을 정리했다고 하니, 그럼 이제 뭐하며 지내냐고 묻길에 차 (TEA)를 공부한다고 했다.


"재밌어요?"




사실 재미는 있다. 아내나 부모님에게도 티 공부가 너무너무 재밌다고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 순간에는 대답이 망설여졌다.


몇 번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그동안 티 블렌딩 수업을 듣고 있었다. 티 블렌딩 2급 과정을 무사히 수료한 뒤 얼마 전부터 1급 심화과정을 듣고 있다. 처음 접해보는 분야의 공부는 매우 재미있었다. 특히 2급 과정은 주로 홍자 위주의 수업이었다. 전 세계 티 소비의 대부분은 홍차이니까 홍차가 기본이었다. 인터넷 조금 서핑을 해도 홍자는 블렌딩 제품도, 싱글 오리진 제품도 차고 넘쳤다. 그래서 참고가 많이 되었고 제품 서치만으로도 배우는 점이 많았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 일본 사람들,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마시는 차는 녹차이기 때문에, 차를 즐기는 인구는 녹차를 더 많은 사람이 즐긴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1급 과정은 녹차와 백차부터 시작을 했다. 물론 역시 인터넷에는 참고할 만한 제품도 있지만, 정말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백차, 청차 등의 블렌딩은 벽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지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엄청 재밌었는데,

이제 뭔가를 조금 알게 되니 많이 어렵네요."


그러자 박사 진학은 당분간 포기했다던 그 지인이 공감하며 대답해 주었다.


"맞아요 공부라는 게 그런 거 같아요."




"알면 알 수록 모르겠다, "

"알면 알 수록 어렵다, "

"알면 알수록 궁금하다."

등등 이런 표현이 매우 많고, 우리 삶에서 흔하게 쓰인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안다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도, 지식도, 정보도 아는 만큼 그 너머의 것이 보이기도 하고, 정보는 유행이나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뀌기도 한다. 한번 안 것이 영원이 같은 앎이 될 수 없으며 내 지식만을 고집하다가는 시대에 뒤쳐지고 말 것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도 끊임없는 앎을 위한 탐구가 없다면 결 뒤쳐지고 도태되고 말 것이다.


그 지인과의 통화 후 과연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 학자들이 고민해 보았던 그 문제를 백수인 나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저명한 고대 철학자들이나 중세 철학자들이 지금까지 읽히는 저술 활동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금 나와 별반 다르지는 않은 취급을 당했을 것 같기도 했다.


* 이 글을 준비하면서 브런치에서 똑같은 생각의 글을 읽게 되었다. 조던JD부자연구소소장 작가님이 무려 2018년에 쓴 글이다. "알면 알수록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https://brunch.co.kr/@jordan777/1854


오히려 알아야지, 알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주 작은 지식의 습득에도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비록 현대에서 내 손 안의 스마트 폰과 그것으로 접속할 수 있는 그 너머의 세상에 온 세상의 지식이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아는 것의 차이는 경험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적절한 검색어를 입력할 수 없고,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모국어 외의 지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결국 세상의 모든 지식이 스마트 폰과 구글에 있다고 해도 내가 아는 만큼만 찾아볼 수 있으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알아들을 수 있고, 내가 해본 만큼만 적용할 수 있다.


인터넷 유머에 이런 글이 있다.


학사 : 내가 뭘 아는지 알겠다.

석사 : 내가 뭘 모르는지 알겠다.

박사 : 내가 뭘 아는지 모르겠다.


나는 비록 석사나 박사학위가 없기 때문에 진짜 이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네이버에 "알면 알수록"이라는 검색어를 쳐 본 결과 오늘 나와 같은 말을 하는 게시물 수십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당시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 사실 공차의 밀크티 외에는 카멜리아 시넨시스의 찻잎으로 만든 6대 다류 차인 차를 전혀 마셔본 적 없던 나는 모든 것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중국 고대 신농씨의 차나무의 발견부터 시작해서 실크로드, 동인도 회사를 통한 국제 무역의 역사, 보스턴 티 사건으로 인한 미국의 독립전쟁 등 중세, 근대 세계사와 밀접하게 연관 있는 차라는 음료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백차, 녹차를 "제대로" 알고 나니, 나는 역시 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특히 티 블렌더는 티 소믈리에와는 달리 굳이 차의 역사나 떼루아, 품종을 알기보다는, 차의 향미의 조화, 차와 허브 특성의 결합, 차와 허브의 효능별 분류, 맛의 특징, 함께 우릴 때 찻빛의 색, 농도, 맛, 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제 내가 웬만한 향을 분류해 낸다는 것에 심취했던 2급 때와 달리, 내가 모르는 향이 더 많다는 현실 마주하면서 가능한 다양한 풍미를 느끼기위해 요즘은 카페를 가거나, 마트에 갈 때마다 블렌딩 티, 베리에이션 티, 또는 티잰 음료 위주로 마시곤 한다. 문제는 시판용 제품들은 호불호를 줄이기 위해 당분을 많이 넣다 보니 기껏 다이어트로 줄여놓은 몸무게가 다시 슬쩍 돌아갈 기미를 보인다는 점이다.




몇십 년 함께 살았던 가족에게서도 내가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과연 진짜 몰랐던 것일까, 알아볼 생각 없이 나의 선입견에 그 사람을 가둬두었던 것일까. 요즘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고, 집에서도 책을 끼고 살고, 생일을 축하한다며 나보다 스무 살, 서른 살 정도 연배가 높으신 어른들에게도 축하 전화를 받는 나를 보며 부모님도 의외라는 시선을 보내시고는 한다.


부모님 눈에야 아직도 철없는 막둥이 아들일 테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것과 실제 내가 아는 것, 그리고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대상의 실제 모습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내가 겪는 모든 현상과 경험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그 일의 배경이나 내용의 차이, 깊이의 차이가 그 경험을 전혀 다른 경험으로 바꿀 수 있기도 하다. 여행을 가거나 맛집을 찾을 때 "현지인"들의 장소와 맛집을 찾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알고 있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원하기 때문이다.


**우에하라 센로쿠 교수의 "안다는 것은 그것에 의해 자신이 달라진다는 것." **야마구치 슈의 "우리의 배움은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정체된고 만다." 매리언 라이트 에델만의 "You can't be what you can't see." 소크라테스의 "True knowledge is knowing what you don't know" 등은 모두 내가 "배움"에 관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용구이다.


우리는 "아는 만큼" 될 수 있으며, 그만큼 볼 수 있고 그래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변하고 싶다면 배움에 힘쓰고 배움의 적용에 힘쓰고 그 변화에 긍정적인 자극을 얻어 더 노력하는 게 진정한 배움의 자세가 아닐까.


내가 아내에게 늘 강조하는 가치는 "아이들의 교육 (배움)에 관심과 영향을 주기 위해서 우리가 항상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이다. 내가 모르는 길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도, 조언해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길만 고집하지 않기 위해서 더더욱 내가 아는 만큼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욱더 지식의 발견과 채움에 힘써야겠다.




"변화"는 "안 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안 다"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가 무엇을 모르는지 "앎"을 통해 끊임없이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오늘 나는 새로운 발견과,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가는 흥미진진함, 그리고 모르는 것을 또다시 배워가는 즐거움을 즐기며, 지식에 대한 자기만족이나 자랑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다.





**출처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2020,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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