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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Apr 01. 2021

도망.

잃어버린 용기.

나는 어려서부터 쉽게 포기했고 겁이 나면 도망쳤다.


동급생들의 놀림이 귀찮을 땐 울어버렸고, 수학이 싫어서 나 혼자 수학과 결별했다. 곧잘 한다는 소리를 듣던 드럼도 나보다 훨씬 더 잘 치는 전문가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포기했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기 겁나 미국으로 피했고, 미국에서 대인관계에 상처를 받았을 때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버렸다. 취업의 문턱이 겁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리농장을 했다. 


놀고먹는다는 비난이 받기 싫어서 시작한 글쓰기라는 도피에서는 내 글이 생각보다 인기가 없자 내 열정도 시들해져 버렸다. 무엇이든 꾸준히 끈질기게 하는 것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계를 밀어붙이며 도전하는 것도 내게는 낯선 일이고 어려운 일이었다.


숨이 턱턱 막힐 듯이 뛰면서 한계를 느끼고 그 벽을 깨는 것이 가장 보람차다는 아내를 얻은 것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도전이자,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의 삶이 배움이다. 한번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을 내었고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들을 해내며 고된 일에 불평할지언정 도망치지 않는다. 유일한 걱정은 남편이 이렇게 도전 없이 안주하는 삶을 계속하는 것이다.




상처 받기 싫어서, 싸우기 싫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는 어느 한순간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러다 어느 날 인생을 돌아보니 힘들고 슬프고 어려울 때 쉽게 연락할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래도 진짜 친한 친구 몇은 남은 것이 너무 감사했다.


며칠 전 그 얼마 안 되는 친구들 중 한 녀석이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네 사람이 모였는데 둘은 유부남에 애가 둘, 둘은 아직 총각. 총각의 자유로운 삶을 부러워 하자 친구가 말했다.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해요. 나는 언제 결혼해서 언제 애를 가지고 언제 너네처럼 사냐." 


내가 대답했다. "친구야, 우리는 있는 놈들이 아니고 잃은 놈들이야."


포기할 수 있는 특권을 잃었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아들과 사위로써 잘못하면, 실패하면 도망쳐 버리고 말 기회를 잃은 놈들. 내 손으로 이룬 가정이라는 책임과 무게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도망칠 곳을 잃은 놈이 되어버렸다. 개인적인 시간도, 자유로운 나만의 공간도, 취미와 생활방식 모두 고치고, 포기하고, 양보하고, 바꾸면서 가장이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아도 훌쩍 떠날 수 없고 일이 힘들고 지쳐도 함부로 포기할 수 없다. 나만을, 내 등만을 바라보는 가족이 있기에 더 이상의 도망, 포기, 절망은 사치다. 억울한 것은 아니다. 아내도, 부모님도 그런 나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고, 포기하고, 함께 발을 맞추어주고 있으니까. 다만 이제 정말 내가 시작한 일들은 내손으로 끝을 내야 한다는 게 한순간 부담이 되고, 두렵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 적 없던 내가 그런 일을 하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로 빚어진 경영실적 악화, 그로 인한 구조조정, 뒤이어 터지는 조류독감에 용역업체 외국인 노동자의 코로나 확진, 이제 다 버텨낸 것 같더니 화물노조와의 쟁의까지. 그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아버지는 나에게 서두르지 않으신다. 손주들에게 웃어 보이시고 아들에게 용돈을 쥐어주신다. 유일한 불평은 아들이 함께 있어주지 않는 것이다.


어디까지 좌절했을까, 얼마나 속상할까,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실까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은퇴는 2년이 채 안 남았고, 아들은 준비되지 않았으며 손주들은 자란다.


나보다 인생이 30년을 앞서고 소득이 세 배를 넘으며 자산은 열 배도 넘게 차이나 보이는 아버지도 결국은 나와 다를 바 없는 아버지고 가장이다. 40년을 아등바등 일을 해서 아들에게 당신과는 다른 출발선을 만들어 주었지만 인생이라는 트랙을 달리는 아들은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고되고 똑같이 외롭다. 


오히려 40년 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성실과 신용 하나로 도전했던 용기가 나에게 없고,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내게 없다. 내 간절함은 내 일에 대한 도전이 아닌 아버지의 건강이며 내 절박함은 아버지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무능한 아들이라는 손가락질을 피하는 것이다. 


이 또한 어찌 보면 현실에서의 도망이다. 현실에 맞서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될 때까지 도전하길 포기했다. 나는 지금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휴식이라는 도망을 치고 있다. 희망이 한 줌 피어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해일같이 몰려오고, 가족을 위한 용기는 한 번도 내 손으로 시도해 본 적 없다는 무기력함으로 덮인다. 


온 세계가 질병의 두려움으로 떨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실패해도 좌절해도 실수해도 마냥 도망칠 수 없고 내 손으로 고치고 다시 시도하고 내 손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 도전이라는 과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야 한다.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어떤 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해야 하며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몇 년, 몇십 년 전에 시작한 것을 나는 이제 시작해야 한다. 


무책임한 도망이 되지 않게, 피난이 또 다른 출발이 될 수 있게, 무능이 휴식이 되고 휴식이 기회가 되며 기회가 성공이 되도록 끊임없이, 꾸준하게, 성실하게 주변을 살피고 상황을 읽으며, 멀리 내다보고, 앞서 생각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창밖에 햇빛이 쨍하다고 해서 반드시 따뜻한 건 아니다. 거센 바람이 불 수도 있고 한겨울이라 공기가 찰 수도 있다. 안개인 줄 알았던 뿌연 공기가 미세먼지일 수도 있고 오히려 바깥이 건물 안보다 더 따뜻할 수도 있다. 비 예보가 있지만 비가 안 올 수도 있고, 비 예보가 없는데 비가 올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문을 열고 나가야지만 느낄 수 있다.


인생에 도전도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지금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내가 잘 이겨낼 수도 있다. 혹여나 실패가 절망으로 다가오더라도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더 이상 도망칠 필요도 없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될 때까지 다시 하면 된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나는 잃는 놈이 아니고 다 가진 놈이다. 내가 다 누리지도 못할 만큼 축복받았고, 외롭고 지루한 유학도, 군생활도 이겨냈으며, 남들이 쉽게 해 보지도 못할 농장을 했고, 망하지 않고 끝까지 수익을 냈으며, 세상에서 가장 날 이해해주는 아내와 날 똑 닮은 두 아이들까지 둔 가장이다. 언제나 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맞은편에서 내 뒤를 봐주며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으며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는 선물을 주는 사람들과 선물이 되어주는 사람들도 많다.


조금만 다시 생각해보면 세상은 포기하고 도망칠 곳이 아니라 충분히 도전하고 이겨낼 수 있는 곳이다. 나 스스로에게 믿음만 있다면, 또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갈 아주 작은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오늘 당신의 좌절의 끝에서 그래도 열심히 살아볼 만한 인생이라는 아주 작은 희망의 불꽃을 보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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